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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으로 한일 갈등의 불똥이 한미 관계로 튀었다.
애초 한국 정부가 검토했던 지소미아 종료 카드는 미국을 중재자로 끌어내기 위한 지렛대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국내의 반일 여론과 일본의 비타협적 태도가 맞물리며 결국 '시위를 떠난 화살'이 되고 말았다. 한국의 결정을 미국 정부도 이해하고 있다는 청와대 관계자의 설명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실망스럽다"는 발언으로 하루 만에 뒤집혔다. 청와대는 한미 동맹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항변하고 있지만 워싱턴 조야의 분위기는 사뭇 다른 듯하다.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물론 워싱턴의 한국 전문가들은 대체로 한국 정부가 미국의 안보 이익에 역행하는 결정을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가 '뒤통수'를 맞았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23일(현지시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자"며 일단 관망하는 자세를 보였지만, 한미 간에 흐르는 미묘한 긴장감이 어디로 향해 갈지 쉽게 예측하기 힘든 상태다. 매일경제는 미국 조야의 반응을 살펴보기 위해 조지프 윤 전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에번스 리비어 전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 해리 카지아니스 미국 국익연구소 한국 국장 등을 24일 각각 인터뷰했다.
조지프 윤 전 대표는 "이번 지소미아 종료 결정은 한일 관계를 수십 년 만에 최악의 상태로 만들었다"며 "동북아시아에 심각한 정치적·안보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하게 우려했다. 그는 이번 결정이 한미 관계에 미칠 영향을 묻자 "확실히 부정적인 충격을 불러올 것으로 본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동맹에 대한 의지는 더 약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일 양국이 안보 문제에서 상호 협력하지 않는다면 양국에 주둔하는 미군의 역할과 비용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더 큰 의문을 가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리비어 전 수석부차관보는 "의문의 여지 없이 청와대의 결정은 중대한 오산(miscalculation)이자 한국의 안보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조치였다"며 "서울의 놀라운 결정은 미국 정부와 전문가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이 자국의 안보적 필요성을 이해하는 역량이 있는지 의문을 일으킨 것"이라며 "역내 동맹이자 안보 파트너인 한국에 대한 미국 정부의 신뢰를 흔들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리비어 전 수석부차관보는 미 국무부와 국방부 등이 이례적으로 높은 수위로 불만을 표시한 배경을 묻자 "청와대는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들의 조언을 거부했다"며 "한·미·일 3각 안보 협력이 동북아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안보 아키텍처'의 기둥이라는 미국의 주의를 무시하는 쪽을 택했다"고 답했다.
반면 카지아니스 국장은 "한국은 가장 강력한 무기로 일본에 대응한 것이며 미국 관료들도 이 같은 움직임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봤다"며 "한국은 일본과의 긴장을 풀기 위한 몇 주간의 노력이 실패하자 대응한 것이며 즉흥적 결정은 아니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미국 정부 관료들은 가장 중요한 두 동맹국 간 관계가 최저점을 찍은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으나 이번 조치가 한미 동맹을 해칠 만한 이유는 없다"며 "특히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을 고려할 때 미국은 한국과 더욱 긴밀히 접촉하고 함께 계획을 세워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들이고 있는 미·북 비핵화 협상이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따른 한미 관계 악화를 피할 수 있는 완충재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예상이다.
지소미아의 실질적 가치에 관해서도 청와대 설명과 미국 내 전문가들의 인식에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청와대 관계자는 일본으로부터 실효적 정보를 얻지 못하고 있다며 안보 공백에 대한 우려는 없다고 못 박았다. 리비어 전 수석부차관보는 "최소한으로 봐도 정보 흐름을 느리게 만들고 (한·미·일 3국이) 공유하는 정보의 민감도를 낮추게 된다"며 "결국 군사적 위협의 최전선에 서 있는 한국이 가장 큰 패배자(loser)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지프 윤 전 대표도 "3국 간 정보 공유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카지아니스 국장은 "워싱턴이 서울, 도쿄와 각각 긴밀히 협력한다면 어느 쪽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다"며 "미국이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정보 교환소 역할을 한다면 (정보 공유가) 느려질 수는 있지만 실질적 위협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미국의 역할 확대를 주문했다.
중국 러시아 북한 등이 한·미·일 3각 공조의 틈새를 이용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됐다. 조지프 윤 전 대표는 "한일 간 외교 붕괴는 동북아에서 미국 주도의 질서를 약화시키고 중국은 이를 신속하게 이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리비어 전 수석부차관보도 "베이징·모스크바·평양은 이번 조치에 대해 적절한 판단을 내린 뒤 한국을 시험하려고 들 것"이라고 말했다.
빅터 차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도 '비욘드 패럴렐'을 통해 배포한 뉴스레터에서 "지소미아를 갱신하지 않겠다는 것은 일본을 겨냥한 조치지만 한·미·일 3국 협력을 약화시켜 미국과 일본 사이의 동맹도 약화시킬 것"이라며 "이번 결정은 미국의 동아시아 동맹 체제를 반기지 않는 북한·중국·러시아 같은 나라들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 상황에서 한·미·일 3국 정부에 문제 해결을 위한 조언을 해달라는 요청에 조지프 윤 전 대표와 카지아니스 국장은 백악관의 즉각적 관여를 주문했다.
조지프 윤 전 대표는 "사태의 추가적인 악화를 피하기 위한 부담은 일단 한일 양국이 져야 한다"면서도 "미국은 지금까지 개입을 강하게 거부했지만 한일 사이에 약간의 질서와 규율을 가져오기 위해 지금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카지아니스 국장도 "한일 양국은 현재의 대치를 지속할 각자의 타당한 이유가 있겠지만 갈등이 오래 지속되면 양측이 잃을 것이 너무 많다"며 "트럼프 정부는 현재 상황이 한·미·일 3국에 외교적 재난이 되지 않도록 관리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리비어 전 수석부차관보는 "미국의 국무장관, 국방장관, 국가안보보좌관, 주한 대사 등이 했던 조언보다 더 권위 있고 중요한 조언은 없다"며 "청와대가 그 조언을 무시하기로 선택한 것은 유감"이라고 꼬집었다.
[워싱턴 = 신헌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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