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홍콩섬 홍콩 정부청사 주변을 둘러싼 바리케이드 앞 길바닥에 시위대가 쓴 ‘‘우리가 불타면 너희도 우리와 함께 불타 죽을 것이다(If we burn, you'll burn down with us)’란 문구가 남아 있다. /홍콩=베이징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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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벽, 바닥, 바리케이드에는 시위대가 쓴 시위 구호와 홍콩 정부·경찰 비판 문구들을 홍콩 당국이 완전히 지워내지 못한 흔적이 역력했다. 경찰이 설치한 흰색 바리케이드엔 시위대가 검은색 페인트로 쓴 ‘파이트 포 프리덤(Fight for freedom·자유를 위해 싸운다)’ ‘광복홍콩 시대혁명(光復香港 时代革命)’ 등의 글씨가 채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애드미럴티역으로 연결되는 육교엔 ‘거우관(狗官·부패 관리)’ ‘거우우(狗屋·개집)’ 등 홍콩 정부와 경찰을 중국 정부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개(狗)에 빗대 조롱하는 글자들이 벽면을 가득 채웠다. 길바닥엔 영어로 ‘우리가 불타면 너희도 우리와 함께 불타 죽을 것이다(If we burn, you'll burn down with us)’라는 문구가 써 있기도 했다. 중국 정부가 시위대와 홍콩 시위의 배후로 지목된 미국을 향해 ‘불장난을 하는 자는 반드시 스스로 불타 죽는다’고 경고한 데 대한 저항으로 읽힌다.
5일 홍콩섬 홍콩 정부청사 근처 육교 벽면에 홍콩 정부와 경찰을 조롱하는 표현인 ‘거우관(狗官·부패 관리)’이란 글자가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홍콩=김남희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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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정부청사와 입법회(의회), 중앙인민정부 홍콩특구 연락판공실, 중국 인민해방군 홍콩 주둔 부대가 모여 있는 이 지역은 반(反)정부·반중 시위가 14주째로 접어든 이번 주말 또다시 시위대와 경찰 간 충돌이 예상되는 곳이다. 홍콩 행정수반인 람 장관이 4일 저녁 범죄인 중국 인도법 개정안을 정식 철회한다고 발표했지만 시위 주도 단체들은 시위를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람 장관이 발표한 범죄인 인도법안 철회는 시위대가 요구해 온 5개 요구사항, △범죄인 인도법안 완전 철폐 △경찰의 강경 진압에 대한 조사와 처벌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자 석방과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중 하나일 뿐이다. 람 장관은 시위대의 나머지 네 개 요구는 거부했다. 시위대는 홍콩 정부가 5개 요구를 모두 받아들일 때까지 투쟁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6일 저녁 카오룽반도 침사추이역 근처에서 만난 홍콩 중문대생 우씨는 "람 장관이 발표한 범죄인 인도법안 철회는 홍콩인의 5대 요구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것일 뿐"이라며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많기 때문에 앞으로도 시위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번 홍콩 시위를 힘의 균형이 깨진 데 대한 홍콩인의 반발로 정의했다. 홍콩에 대한 중국 중앙정부의 영향력 확대로 힘의 균형이 중국으로 기운 것에 상당수 홍콩인들이 반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8월 31일 13주째 맞은 홍콩 시위에 중국 오성홍기와 독일 나치 상징을 합성한 ‘차이나치(CHINAZI)’ 천이 등장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
이날 밤 9시쯤 카오룽반도 항하우역에선 100명이 넘는 시위대가 모여 집회를 하다 경찰과 충돌했다. 시위대는 홍콩 지하철공사(MTR)가 최근 모든 MTR역에 추가 경찰병력을 배치할 것을 정부에 요구한 것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전했다. 이들은 ‘5대 요구,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된다’는 구호를 외쳤다.
대규모 집회와 시위를 주도해 온 홍콩 야권 단체 연합 민간인권진선은 5일 "우리의 5대 요구를 이뤄낼 때까지 멈추지 않겠다"고 했다. 시위 참여 단체들은 14주째 주말 시위가 예정된 7일과 8일 쇼핑몰과 홍콩 주재 미국 총영사관, 홍콩국제공항 주변 등에서 시위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주말 대규모 집회를 열어 수백만 홍콩 시민을 거리로 나오게 한 민간인권진선은 이달 2일 시작된 학생들의 동맹 휴학이 끝나는 15일 대규모 주말 시위를 예고한 상태다.
[홍콩=김남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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