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인 인도 조례’(송환법)가 공식 철회된 이후에도 홍콩 시위 열기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송환법 반대로 촉발된 시위는 4개월째 이어지면서 행정수반 직선제 등 민주화 요구와 반중국 운동으로 확대됐다. 홍콩 곳곳에서 반정부 시위대와 친중국 시위대의 물리적 충돌도 빚어졌다. 경찰이 반중국 시위대만 체포해 편파 대응 논란도 일고 있다.

15일 성도일보, 명보 등 홍콩 언론을 종합하면 이날 오후 2시쯤 쇼핑몰이 밀집된 코즈웨이베이 일대에 최소 수만명의 시민들이 모여 “5대 요구, 하나도 빠져선 안돼” “자유를 위해 싸우자, 홍콩과 함께” 구호를 외쳤다.

그간 대규모 집회를 주도해온 재야단체 민간인권전선(민전)은 이날 캐리 람 행정장관이 지난 4일 송환법 완전 철회를 발표한 후 처음으로 집회를 주도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홍콩 경찰 측이 안전과 공공질서 위협을 이유로 집회를 금지했고, 민전은 시위 취소를 공지했다.

그럼에도 홍콩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거리로 나왔다. 시위에 참여한 앨런 찬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행진에 정부의 홍콩 경찰 측이 안전과 공공질서 위협을 이유로 집회를 금지하고, 민전은 시위 취소를 공지했지만 허가가 필요하지 않다”며 “시위의 권리는 인간의 기본권”이라고 했다. 이날은 집회 최다 인원(200만명)에는 못 미쳤지만 6차선 도로가 우산을 든 시민들로 채워졌다.

시민들은 송환법 철회뿐 아니라 행정수반인 행정장관과 입법회 의원(국회의원 격)의 직선제 선출을 요구하고, 경찰의 시위대 폭력 진압에 항의하며 센트럴까지 행진했다. 대부분은 행진 후 귀가했지만 일부 시위대는 애드미럴티, 완차이 등 도로를 점거하고 인근 지하철역 출구에 불을 질렀다. 센트럴 허치슨 하우스에 걸린 중국 건국일(10월1일) 경축 현수막을 훼손하고, 하얏트 호텔 입구에 게양된 오성홍기를 불태우며 중국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경찰은 이날 오후 5시22분쯤 정부 청사와 애드미럴티에서 최루탄과 물대포 등으로 강제 해산을 시도했고, 시위대는 화염병을 던지며 저항했다. 시위대가 던진 화염병으로 물대포차에 화재가 나는 등 이날 홍콩 시내는 하루 종일 몸살을 앓았다.

시위현장에는 배우 김의성씨도 모습을 드러냈다. 김씨는 “홍콩 시위에 참여한 것은 처음으로 큰 감동을 받았다”며 “홍콩인들이 자유를 위해 싸우는 것은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한 방송사 시사 프로그램 촬영차 현장을 찾았다.

전날 오후에는 친중국 시위대인 ‘오성홍기 부대’와 반중국 진영인 ‘검은 옷 시위대’ 간의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다. 주로 하늘색 옷 차림의 중장년층이 다수인 친중국 시위대 500여명은 오후 2시 카오룽베이에 위치한 아모이플라자(淘大商場)에 모여 오성홍기를 흔들고 국가(國歌)인 ‘의용군행진곡’을 불렀다. 인근에선 검은 옷과 검은 마스크 차림의 시위대가 “광복 홍콩” 구호를 외치고 시위 주제가인 ‘홍콩에 영광을’을 부르면서 맞섰다.

친중국 시위대가 반정부 시위대에 마스크를 벗으라고 요구하면서 양측 간 시비가 붙었다. 시비는 100명 가까이 가세한 몸싸움으로 번졌고, 25명이 다쳐서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러자 오후 3시10분쯤 경찰이 아모이플라자로 출동해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경찰은 친중국 시위대는 아무도 체포하지 않은 채 반중국 시위대의 주류를 이룬 젊은이들만 20명 가까이 체포해 편파 대응 논란을 빚었다.

명보는 친중 시위대가 검은색 옷을 입은 사람을 가리키자 경찰이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친중국 매체인 동방일보도 “푸른색 옷 군단의 시민 구타에도 경찰은 아무도 끌고 가지 않았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또 체포 과정에서 경찰이 젊은이들에게 과도한 폭력을 행사하자 한 여성이 무릎을 꿇고 경찰에게 “제발 때리지 말라”고 애원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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