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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슬픔 자빠뜨리고 사소하게 바라보는 시 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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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젊은 시인들의 목울대로 침을 꿀꺽 삼키게 만드는 김수영문학상이 2017년 서른여섯 번째 수상자를 발표했을 때 문단에선 탄성이 나왔다. "이것은 사건(事件)"이라는 비유도 잇따랐다. 1992년 태어나 고려대를 졸업하고 직전연도인 2016년 갓 등단한 '2년차 신예'가 수상자로 뽑혀서였다. 주인공은 문보영(27), 당시 스물다섯이었다.

문보영 시인의 첫 시집 '책기둥'을 읽고 사람들은 대개 고개를 끄덕였다. '기기묘묘 나라의 명랑 스토리텔러'란 수사가 붙은 그의 3년간 행보는 요즘 말로 '힙'했다. 크리에이터 활동에 이어 자전적 연애 이야기를 에세이로 펴냈고, 독자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편지로 발송하는 '일기 딜리버리'로 유통망을 구축했다. 두 번째 시집 '배틀그라운드'(현대문학 펴냄)를 출간하고 잠시 제주에 체류 중이던 문보영 시인과 지난 15일 이메일로 만났다.

서바이벌 슈터 게임 '배틀그라운드'는 시집의 원형(原形)을 이룬다. 무작위로 생겼다가 크기가 작아지고 결국 사라지는 원(圓) 안에 들어가야 생존한다는 설정인데, 시집 안의 인물들이 섬 안에서 펼치는 이야기는 연극 같다. 하나의 시만 봐선 윤곽이 드러나지 않고, 전체를 하나의 서사로 이해해야 독해된다. 전위(前衛)의 내면을 문 시인은 "오묘한 공포"로 압축했다.

"섬에 커다란 원이 생겨요. 원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원이 점차 줄어드는 데다가 한 명만 살아남을 때까지 게임이 끝나지 않아요. 원과 싸우면서 타인과도 싸워야 하죠. 원이라는 '부조리한 무생물체'가 환기하는 오묘한 공포를 담고자 했어요."

게임에 참여하듯 읽는 1인칭 체험 시집이란 명명이 가능할까. 치밀한 상상력이 첫 장부터 눈에 띈다. '추락으로 시작한다. 추락하지 않은 인간은 게임 참여 의사가 없는 것으로 취급한다'(17쪽, 시 '사막맵' 일부)란 첫 문장부터 그렇다. 추락해본 자만이 방황의 자유를 얻고, 정체된 자는 불안한 일상에 갇히리란 은유 같다. "추락을 해야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지니까요. 세상이 있고 그곳에서 추락이 발생하는 게 아니라, 추락했기에 세상을 만나는 구조인 거예요. 화장실도 가지 말고 졸지도 말고 정신을 똑바로 차린 채 '추락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죠."

'슬픔마저 사소하다'란 그의 전언처럼, 시집은 내내 명랑하다. '지구가 한 바퀴 돌 때마다 할부로 죽고 있다는 가치관'(42쪽, 시 '겹친 3년·1' 일부)이라거나 '별들은 다른 존재의 주위를 돌면서 본인도 돈다 누군가의 주위를 잘 돌려면 본인도 돌아버려야 하기 때문에'(56쪽, 시 '극단의 원' 일부)에선 짙은 웃음기가 감지된다. "로마서 11장 12절에서 이런 구절을 읽었어요.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시도 그래요. 시에서 자주 넘어질 때마다, 몸 개그를 칠 때마다 누군가의 세상은 풍성해지니까요. 웃음으로만 전달되는 슬픔이 있거든요. 방심하고 웃는 순간에는 숨통이 트이니, 웃음은 망각과 관련이 있나 봐요."

그래서인지 '웃픈 시'는 문보영 시의 정체성이다. 웃기고도 슬픈 시를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슬픔으로 주름잡지 않는 것, 자신의 슬픔으로 타인을 기죽이지 않는 것, 슬픔을 자빠뜨리는 것…. 그다음에 슬픔을 사소하게 바라보는 것이죠."

슬픔을 '자빠뜨린' 자리에서 시(詩)와의 몸개그를 실천 중인 문보영 시인에게도 골방은 있을 터. 그곳의 풍경은 환할까.

"저의 골방요? 저의 돼지 인형은 제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인데, 하늘을 볼 수 없는 동물인 돼지는 슬픈 동물이에요. 땅에서 먹이를 먹느라 목 근육이 땅만 보도록 굳어졌거든요. 반려돈(豚)과 바깥으로 나가 하늘을 자주 보여줍니다. 지붕 없는 곳에서 하늘을 보여주기, 그게 제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골방이에요. 그런 곳에선 글이 '술술' 써질 것 같아요."

■ 문보영 시인 서면 인터뷰 전문(全文)

1. ‘배틀그라운드‘라는 게임을 알고 있습니다. 제목의 차용은 차치하고, 약속된 섬에서의 원(圓)에 관함 게임이란 시집 설정이 독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유저들이 싸우는 원‘이란 게임을 상상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요. 또 원은 어떤 의미인지, 원이 줄어든다는 건 또 어떤 의미일까요. 해석은 누구나의 몫이겠지만 시인의 문장으로 들어보고자 첫 질문 드립니다.


저는 사실 한 번도 배틀그라운드를 해본 적이 없는데요. 허허. 친오빠가 배틀그라운드 헤비 유저에요. 제가 힘든 날을 보낼 때 오빠가 심리 상담을 해주곤 했는데요. 별게 아니라 그냥 게임할 때 뒤통수를 빌려주는 거였어요. 게임 중인 오빠 뒤통수에 대고 말을 쏟아내는 거예요. 그러다가 게임에서 전사하면 오빠가 뒤돌아서 이런저런 말을 들어주고 ‘이만 난 다시 전쟁터로...’하며 다시 게임을 하고, 저는 또 떠들고 ‘나 이제 죽었어...’하고 뒤돌면 또 얘기하고요. 그 시간이 제 불안을 많이 잠재워줬기 때문에 자주 오빠 방에 가서 뒤에 앉아 있었는데요, 어느 날부터인가, 오빠의 뒤통수 너머로 어떤 세계가 보였어요. 지도가 보이고, 섬이 보이고, 그 섬에 원이 있는데, 인간들이 번거롭게 그 원 안으로 들어가려고 용쓰는 이상한 세계요. 오... 저 원이 뭔지는 몰라도 몹시 열받게 생겼는데 왠지 아름답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잘 아시겠지만 배틀그라운드는 어떤 섬에 관한 게임인데요, 섬에 커다란 원이 생겨요. 그리고 그 원 안으로 들어가야 해요. 그런데 원으로 들어가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이유는, 원이 점차 줄어드는 데다가 한 명만 살아남을 때까지 게임이 끝나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원이랑도 싸우고 타인과도 싸워야 해요.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건 사람뿐인데 또 사람 찾는 것에만 혈안인 상황과 그리고 원이라는 부조리한 무생물체가 환기하는 오묘한 공포가 흥미로웠어요.

2. ‘추락으로 시작한다. 추락하지 않는 인간은 게임 참여 의사가 없는 것으로 취급한다‘는 시집의 첫 문장부터 눈길을 끌었습니다. 추락한 자의 자유란 뭘까요. 또 추락하기 전의 불안이란 뭘까요. 그 불안과 자유 사이 어디쯤에 인간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만.

사실 제가 배틀그라운드는 안 해본 이유는, 이 게임을 안 해본 사람도 읽을 수 있는 시집을 쓰려면 제가 안 해야 할 것 같아서였어요. 언급하신 부분은 게임을 알고 읽으면 더 재미있는 부분이지만 몰라도 상관은 없어요. 배틀그라운드는 비행기에서 추락하면서 시작해요. 비행기가 섬을 가로지르는데 유저들은 낙하산과 함께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떨어질 수 있거든요. 그런데 게임을 켜놓고 화장실에 가거나 잠드는 바람에, 비행기에서 추락하지 않아서 게임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니까 추락을 해야 성립되는 게임, 시작되는 게임인 거예요. 그래서 화장실도 가지 말고 졸지도 말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추락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추락을 해야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지니까요. 세상이 있고 그곳에서 추락이 발생하는 게 아니라 추락을 했기 때문에 세상을 만나는 구조인 거예요.

3. 명랑하고 또 명랑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부분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지 너무 자세히 말하진 마‘(26~27쪽), ‘지구가 한 바퀴 돌 때마다 할부로 죽고 있다는 가치관‘(42쪽), ‘별들은 다른 존재의 주위를 돌면서 본인도 돈다 누군가의 주위를 잘 돌려면 본인도 돌아버려야 하기 때문에‘(56쪽) 등이 아마 ‘문보영 시의 명랑함‘을 드러내는 문장이 아닐까 싶어요. 웃음짓게 만들면서도 단지 ‘웃긴‘ 게 아니라 이형적이어서 슬프다는 감정도 듭니다. 문보영 시의 명랑함에는 어떤 슬픔이 깃들어 있을까요.

오. 감사합니다. 마침 어제 로마서에서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라는 구절을 읽었는데요. 시에서 자주 넘어질 때마다, 몸 개그를 칠 때마다 누군가의 세상은 풍성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오직 웃음으로만 전달될 수 있는 슬픔이 있는 것 같거든요. 어떤 거북이는 엉덩이로 숨을 쉰다고 합니다. 저도 가끔은 숨구멍이 모자라다는 생각을 해요. 숨구멍이 하나 더 있으면 좋겠어요. 발바닥 아래나 겨드랑이 아니면 손바닥 정중앙에요. 웃을 때 열리는 숨구멍이면 좋겠어요. 방심하고 웃는 순간에는 숨통이 트는 것 같지 않나요? 그 순간에는 다 까먹어버리지 않나요? 웃음은 망각과 관련이 있나 봐요.

4. 이번 시집에 그림(!)이 자주 나옵니다. 특히 85쪽의 심전도 기계의 심장 그래프 앞에 선 ‘작은 사람‘을 보고 개인적으로 많이 웃었습니다. 그림은 직접 그리신 건지요. 아울러 이런 상상력은 억지로 짜내는 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는데, 이런 기발함과 명랑함은 저절로 떠오르는 감정일까요.

호호. 직접 그렸어요. 가끔 어떤 사람을 보면서 “정말 저 사람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무슨 마음인지 모르겠다. 단 하루라도 저 사람의 심장을 걸어보고 싶다. 혹은 저 인간의 뇌가 되어보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잠들곤 하는데요. 의학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를 보고 있는데 문득 심전도 그래프가 어떤 땅처럼 보였어요. 죽어 있는 자의 땅은 평평했어요. ‘저 땅은 걷기에 좋겠다. 산책하기에 좋은 땅일 거야’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살아 있는 사람의 땅은 매 순간 요동치고, 화를 내고 있는 것 같았어요. 게다가 너무 많은 산과 계곡으로 이루어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사는 게 힘든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5. 위 질문과 연관되는 질문일 텐데, 사람 문보영은 시인 문보영을 ‘농담으로 인생으로 표현하는 사람‘(98쪽)이자 ‘슬픈 사람보다는 기분이 안 좋은 사람‘(109쪽)이라고 생각할까요.

너무 좋아요. 몰랐는데 이 질문을 읽고 나니 정말 그런 것 같아요!

6. 두 권의 시집은 희곡이면서 서사성이 짙은 시집이라고 생각됩니다. ‘배틀그라운드‘의 서사성도 그렇고, 첫 시집 ‘책기둥‘도 앙뚜안, 지말, 스트라인스, 그리고 알파벳으로 표현된 수많은 인물이 모였기에 연극적 요소가 강하다고 봤습니다. 저만의 생각은 아니겠죠. ‘시집의 연극성‘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사실 연극도 잘 안 보고 희곡도 잘 안 읽는 편이에요. 그런데 인물이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좋아해요. 인물들이 황당한 일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엽기적인 시들을 쓰고 싶어요. 좋은 작가가 되려면 사람들을 많이 알고 탐구해야 한다는 말을 듣곤 하는데요, 사실 사람 만나는 걸 무척 안 좋아해요. 사람을 많이 만나봐야 사람이 다양하다는 걸 아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을 파다 보니 그 한 사람이 다양해서 사람은 다양하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에게 시는 인간에 관한 모든 걸 연구할 수 있는 골방 같은 건데, 그래서 인물들을 소환하다 보니 연극적인 요소 (인물들의 대화)가 가미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7. 위 질문과 또 연관되는데 ‘시‘와 ‘시집‘은 서로 다른 물성을 가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시집의 개별 시는 최근에 발표된 시들의 모음인데요. 사실 독자로서 어떤 의미인지 처음에는 쉽게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시집으로 모아서 보니 관통하는 지점이 선명해 비로소 이해가 됐습니다다. 시와 시집은 얼마나 다를까요. 또 얼마나 같을까요.

무척 흥미로운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배틀그라운드‘ 경우에는 특히나, 이 시들을 단편적으로 발표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작은 드라마 같은 시집이어서, 파편적으로 읽으면, 어떤 사람은 드라마의 3편을, 어떤 사람은 17편을 어떤 이는 5편을 본 식이니까요. 그래서 이제는 마음가짐이 좀 바뀐 것 같아요. 예전에는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할 때 ‘나의 시를 무대에 올린다’라는 기분이었는데, 이제는 ‘이건 제 연습장인데요... 한번 구경해보시렵니까...?’하는 마음으로, 그러니까 그냥 연습장의 한 장을 펼쳐놓고 사람들이 구경한다는 느낌으로 발표를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아직 성에 안 차요. 다음 시집은 더 연결되었으면 좋겠어요. 시집 속 시들이 더 첨예하게 연결되고 공명하는 구조물로서의 시집을 쓰고 싶고 그런 작업이 무척 재미있어요.

8. 처음 시를 쓰겠다고 생각한 계기를 떠올려 보다면. 왜 소설이 아닌, 시를 써야 했는지요. 처음 시를 쓰려던 마음을 회상해본다면.

문장과 문장, 단어와 단어 사이에 터무니없는 것을 집어넣는 게 시의 용기인 것 같거든요? 그래서 용기는 어느 정도의 무책임을 동반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걸 소설에서 할 때 소설한테 미안해요. 미안...이건 시에서나 할게...이런 식으로요. 무심코 말도 안 되는 말을 지껄였는데 그 말이 너무나 정확해서 당황스러운 순간들이 소중했던 것 같아요. 그런 시의 매력이 소설을 앞질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소설 쓰는 것도 좋아해요. 천천히 한 편씩 묶고 있는데, 내년쯤에 책으로 나올 것 같아요.

9. ‘웃픈 시‘를 쓰고 싶다고 하셨죠. 문보영 시인이 생각하는 ‘웃픈 시‘의 정의란 뭘까요.

슬픔으로 주름잡지 않는 것, 자신의 슬픔으로 타인을 기죽이지 않는 것, 슬픔을 무기나 방패로 사용하지 않는 것, 슬픔을 자빠뜨리는 것. 그다음에 슬픔을 사소하게 바라보는 것이요.

10 다소, 관념적인 질문을 두 가지 드리겠습니다. 두 번째 시집이 출간됐고 이제 왕밍밍과 송경련이 ‘연두색 집‘을 갖게 됐네요. 왕밍밍과 송경련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없는지요.

안녕? 왕밍밍과 송경련아. 잘 살아. 서로를 아껴줘.

11. 다시, 관념적인 질문입니다. 글 쓰는 사람에겐 ‘골방‘으로 비유되는 곳이 있죠. 공간성을 가진 장소가 아니라, 쓰는 순간에 펼쳐진 풍경이랄까요. 문보영 시인의 ‘골방의 풍경‘을 표현해주실 수 있을까요.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A소설가는 ‘내 골방엔 밀이 자라고 양귀비가 자라는 거대한 밭이 있다‘고 하셨고, B소설가는 ‘아주 기다란 길이 있고 한 지점을 밟았더니 빠져나올 수 없는 하나의 점으로 나는 추락하고 있다‘고 하셨고, C소설가는 ‘방이 하나 있고 커다란 창문만 있다. 나는 바깥을 보며 글을 쓰는데 사실 밖으로 나가고 싶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곳에 갇혀 쓴다‘고 하셨습니다. 문보영이 가진 ‘골방의 풍경‘을 설명해주신다면.

제 골방은 지붕이 없는 곳입니다. 지붕이나 천장을 안 좋아해요. 제 머리 위에 뭐가 있는 게 기분이 영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깥을 좋아해요. 저는 하늘을 보는 걸 좋아합니다. 제가 사랑하는 존재는 제 돼지 인형인데요. 돼지는 슬픈 동물이에요. 하늘을 볼 수 없거든요. 땅에서 먹이를 먹기 때문에 목뼈와 목 근육이 땅을 보도록 굳어진 거예요. 고개가 수평에 가까운 높이로밖에 들리지 않아서 평생 하늘을 보지 못하고 죽어요. 너무 슬픕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서 돼지 인형에게 하늘을 자주 보여줍니다. 배를 내놓고 풀밭에 눕히면 반려 돈이 하늘을 쳐다봅니다. 그게 제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골방입니다. 돼지와 누웠는데 막힌 천장 대신 하늘이 보이는 공간이요. 그런 곳에서는 글이 술술 써질 것 같아요.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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