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눈이 날 때부터 보이지 않았던 피아니스트 김두민. 현재 프랑스에서 석사과정 중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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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 피아니스트 김두민은 성실한 고등학생 같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짧은 머리에 반바지, 운동화, 안경. 몸동작은 타고난 듯 쾌활했다. “제가 지난주에 비행기를 26시간 타고 한국에 왔거든요. 진짜 힘들었어요.” 고생스러웠지만 웃는 얼굴의 소년은 그동안 뭘 했냐고 묻자 대뜸 휴대전화를 꺼내든다. “제가 보여드릴게요. 여기 앞으로 몇 년 동안 뭘 하고 그다음엔 뭘해야 하는지 다 적어봤어요.” 거기엔 앞으로 3년, 5년의 계획이 들어있다. 베토벤 협주곡 5곡은 3년 안에, 소나타 전곡은 5년 안에 모두 공부해 보겠다는 결심이다.
이 똘똘한 피아니스트의 소식은 3년 전 처음 들렸다. 2016년 13세에 프랑스의 에콜 노르말 음악학교에 입학했고 학사를 끝낸 후 지금은 석사 과정 중이다. 이듬해엔 세계적 음반사인 워너뮤직 본사에 발탁돼 전세계로 발매하는 데뷔 앨범을 냈다. 워너뮤직이 베토벤 250주년을 기념해 발매하는 음반에도 참여했다.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시작한 건 초등학교 4학년 때였어요.” 프랑스의 명문 학교에 입학하는 데 불과 3년이 걸렸다. 충청북도 청주의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피아노 학원을 찾았지만 부모는 전공을 반대했다. 김두민은 선천성 백내장으로 왼쪽 눈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때 제가 어려서 직접 말씀하시진 않았지만 아마 눈 때문에 반대하셨던 것 같아요. 말씀은 남자가 피아노 치면 밥 먹고 살기 힘들다, 장가도 못 간다 그러셨죠.”
초등학교에 입학하며 측정한 아이큐는 158이었고, 수학 경시대회에서는 충청도 전체 1등상을 받았다. “어른들은 공부하라고 하셨지만 저는 굶어 죽어도 피아노만 있으면 좋겠고, 그러면 노숙을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11세에 만난 선생님은 그가 연주하는 걸 듣고 “어머님, 두민이 피아노 치면 밥벌이 하겠어요”라고 설득해줬다고 한다.
패기 있게 시작했지만 쉽지 않았다. “서울 친구들은 참 대단해요. 네살부터 피아노 시작하고 8살인데 저보다 테크닉이 더 좋은 친구도 있더라고요. 저는 초등학교 4학년인데 모차르트 소나타 한 악장 겨우 쳤어요.”
2007년 백건우의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를 듣고 피아니스트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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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장애도 발전을 느리게 했다. 그가 피아노 건반 앞에 앉아 한가운데 도를 누른다. “이렇게 누르면 오른쪽으로는 건반이 끝까지 보이는데 왼쪽으론 한 대여섯개 밖에 안 보여요. 실질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시야는 한 옥타브(흰 건반 8개)에요.”
시야가 좁으니 소화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었다. “쇼팽이었나, 제가 잘 안 되는 패턴이 나와서 말썽을 부린 적이 있어요. 그럴 때는 할 수 없어요. 될 때까지 우직하게 반복 연습하는 거죠.” 나중에는 두 눈을 아예 감고 감각으로 동선을 외워버리는 방법을 터득했다. 건반을 천으로 덮고 치며 간격을 예민하게 익혀보기도 했다. “요새는 이렇게는 안 해요. 어렸을 때 뭐라도 해봐야 돼서 한 거죠.”
김두민에게는 스스로 개발한 연습 방법이 많다. 악보를 외울 때는 한 소절을 잘게 떼어서 외우고 다음 조각으로 넘어간다. 건반 뚜껑을 덮고 악보만 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하는 상상만 하는 것도 반드시 거치는 연습 단계다. “문제가 안 풀리면 이것저것 해보는 거죠. 연습도 결국엔 음악적인 완성을 위해서 하는 거고요.”
행보 또한 영리하다. 데뷔 앨범은 전부 멘델스존의 작품만 골랐다. “베토벤을 하고 싶긴 한데 경험이 부족하니 공부는 할 수 있을지언정 앨범을 남기기엔 많이 이르다고 생각했어요. 어릴 때부터 작곡을 시작한 멘델스존이 저한테 맞을 것 같았고요. 아무래도 지금 제가 순수할 때인 것 같기도 하고요.(웃음)”
멘델스존 앨범에서 그의 피아노 소리는 밝고 선명했다. 몇 군데의 덜컹거림도 개의치 않은 채 음악은 당차게 달려나갔다. “실수한 부분들을 고칠 수도 있었지만 그냥 두는 편이 음악의 호흡 면에서 더 좋았다”고 했다.
쾌활하고 밝은 16세 피아니스트 김두민.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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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야는 그의 음악만큼 환하다. “눈 때문에 불편함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보이다 안 보였어야 불편할 텐데 아예 안 보였기 때문에 모르겠다”고 했다. “시각 장애를 가진 피아니스트로 자꾸 거론되는 것이 싫지 않나”고 묻자 깔깔대며 이런 답을 내놓는다. “뭐, 양심에 좀 찔리긴 해요. 전 그렇게까지 불편하진 않거든요!” 김두민은 20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데뷔 독주회를 연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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