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경고를 울리지 못했다."
지난 1일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Derivative Linked Funds) 중간검사 결과 브리핑에서 김동성 금융감독원 부원장보가 한 말이다. 그는 "투자자 측면에서 보면 누군가는 위험에 대해 경고했어야 했다"며 "하지만 증권사, 자산운용사, 은행 아무도 경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금감원의 검사 결과를 보면 금융사에는 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는 '경고장치'가 있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우리은행 상품선정위원회와 하나은행 상품위원회는 총 1133건의 금리연계 DLF 중 단 7건(0.7%)만 심의했다. 나머지 상품은 기초자산이 같다는 이유로 심의를 생략했다. 특히 우리은행 상품선정위원회는 일부 위원이 평가표 작성을 거부하자 찬성 의견으로 조작하고 위원을 교체했다.
우리은행의 상품선정위원회는 WM(자산관리)추진부장이 의장을 맡고 WM추진부 2명, 리스크총괄부 2명, 개인영업전략부 1명, 트레이딩부 1명, 본점영업부 1명 등 9명으로 구성된다. 작년 10월 금감원의 현장 점검 때 지적사항을 반영해 금융소비자보호센터 직원 1명을 위원으로 추가했다. 그 전까지 상품 심의 때 소비자보호는 반영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부행장 등 임원 5명과 실무부서장 3명 등 8명으로 구성된 하나은행의 상품위원회는 우리은행보다 위원 '급'은 높지만 '경고등'이 제때 작동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두 은행 중 한 관계자는 "통상 동일한 구조로 만들어진 상품은 처음에 한번만 심의하고 이후엔 중복되다보니 심사를 생략한다"며 "일부러 심사를 누락한 것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시장이 변하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해외금리에 연동된 DLF도 마찬가지다. 기초자산인 독일 국채금리와 영국CMS(Constant Maturity Swap)금리가 하락했을 때 상품위원회에서 경고를 울려야했다.
상품위원회에서 리스크가 크다는 이유로 DLF 판매를 거절한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DLF는 손실 구간은 크고 만기는 짧고 원금 손실 하방이 너무 뚫려있었다"고 말했다. 은행이 팔기엔 너무 위험한 상품이었단 얘기다.
경고장치가 작동하지 않은 것은 금융회사뿐만이 아니다. 금융당국도 위기를 알려준 신호를 무시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금감원에 DLF 민원이 처음 제기된 것은 지난 4월이다. 당시 기초자산인 해외금리가 하락해 펀드 수익률이 마이너스 구간으로 진입하기 시작했지만 한달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은 827억원어치 DLF를 더 팔았다.
브리핑에서 정성웅 부원장보는 "민원에서 이 문제가 발견된 것은 사실이지만 (민원이 접수된) 금융소비자보호처도 금감원의 부처"라며 "상시감시의 시스템으로 봐도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민원은 접수했지만 감독으로 이어지진 못한 셈이다. 당시 우리은행은 독일 국채금리가 하락하자 만기를 2개월 줄이고 손실배수는 200배에서 333배로 늘리며 위험을 키우고 있었다.
금감원이 경고등을 울릴 기회는 한번 더 있었다.
작년 10월 금감원은 파생 금융상품 암행 감사에서 DLF를 판매한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이 고령 투자자 보호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중간검사 결과, 개인투자자 중 60대 이상이 고령자 비중이 48.4%(1462명)에 이른다. 고령자 투자금은 3464억원에 달한다. 한 피해자 가족은 은행이 치매 노인에게도 DLF를 팔았다고 울먹이고 있다.
금감원이 DLF 사태를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최소한 두번은 있었던 셈이다.
김동성 부원장보는 "(금감원이 책임져야 한다는) 비판에 대해 감수하고 유감을 표한다"며 "적은 검사 인력으로 시장에 깔린 모든 상품을 보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런 변명은 통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문제가 생기면 미리 경고를 울리지 못했느냐는 비판은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암행검사와 민원접수를 통해서 문제를 인지하고도 경고등을 울리지 못한 것은 금감원 내부 문제일 수도 있다. 시장의 위험을 파악할 시스템은 갖춰져 있지만 그 시스템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부서간 차이니즈월(정보교류 차단)이 강한 금감원 내부 소통 문제일 수도 있고 강력한 컨트롤타워의 부재로 볼 수도 있다.
금융사나 금융당국이 고장난 경고등을 고치지 않으면 제 2의 DLF 사태는 또 터질 수밖에 없다. 그때 피해는 또 소비자가 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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