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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한국은 여전히 황새가 살 수 없는 땅…새들에게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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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학자 박시룡 명예교수, 화집 ‘황새가 있는 풍경’ 펴내

경향신문

박시룡 교수는 황새들에게 필요한 서식지가 회복되지 않는 현실에 참회의 심정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는 “건강한 땅을 되돌리기 위해 농민들이 농약이나 제초제를 뿌리지 않고도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강제성 있는 정책이나 정부의 보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상훈 선임기자


“황새서식지가 복원된다는 것은 황새들이 우리 땅에서 쉽게 먹이를 찾을 수 있다는 뜻으로 그만큼 우리 땅이 건강해진다는 의미입니다. 황새뿐만 아니라 시민들 삶의 질도 그만큼 건강해지는 것이죠. 정치권, 정부에서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20년 넘게 황새 복원에 앞장

“나무 훼손과 농약 사용 급증에

황새들 한때 한반도서 사라져

정부, 생태복원 더 적극 나서야”


박시룡 한국교원대 명예교수(67)는 20년 넘게 멸종됐던 국내 황새 복원에 앞장서온 조류학자다. 러시아와 독일에서 들여온 황새를 국내에서 인공증식시킨 뒤 개체수를 늘려 2015년 9월 8마리를 충남 예산에 방사하는 ‘야생복귀작업’을 주도하기도 했다. 독일 유학시절부터 화가로도 활동한 박 교수는 최근 <황새가 있는 풍경>(지성사)을 펴냈다. 한지에 황새 관련 수채화와 함께 글을 적은 화집(畵集)으로, 황새서식지 복원 염원 등을 담고 있다.

지난 2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박 명예교수는 “한국은 여전히 황새가 살 수 없는 땅”이라고 말했다. 황새는 우리나라에서 천연기념물 제199호로 지정돼 있으며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 보호종이다. 박 명예교수는 “한반도에서 한때 황새가 사라진 것은 한국전쟁 이후 나무들이 훼손되면서 번식할 곳이 사라지고, 산업화 이후에는 농약 사용이 급증하며 급격히 토양이 황폐해진 탓”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학자로서 조류의 습성을 연구하는 것을 넘어 서식지 복원에 강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박 교수는 “현장을 찾다보니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드는 것이 체감되고, 이래서는 생물이 모두 멸종돼 연구할 자료조차 남지 않겠구나 하는 우려가 높아지면서 생태복원에 눈을 돌리게 됐다”고 밝혔다.

황새는 한반도에서 자취를 감춘 후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지정됐지만, 황새서식지 복원을 위한 노력은 요원한 상태다. 그는 “한국의 경우 논만 하더라도 90% 이상 농약, 제초제를 뿌리고 있다”며 “황새가 자연에서 먹이를 찾을 수 있어야 하는데 농약과 제초제 때문에 인위적으로 먹이를 주지 않으면 황새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한지에 ‘서식지 복원’ 염원의 화집

복원 과정 등 다양하게 소개

“황새에 참회하는 마음 담았고

수익은 유기농법 농민에 기부”


그는 “이런 현실이 안타깝고, 황새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이번 화집에도 황새에게 참회하는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첫 소제목도 ‘황새야! 미안해’이다.

화집에는 그가 한국에서 황새 복원에 성공한 과정, 독일의 황새 마을 방문기 등이 다채롭게 소개돼 있다. 화집을 위해 박 명예교수는 독일과 프랑스, 덴마크 등 유럽과 남미의 황새 마을을 직접 방문했다고 한다. 바탕 재료로 한지를 사용한 것과 관련해선 “한지는 독특한 번짐과 스며듦의 효과를 볼 수 있어 수채화를 그리면 다양한 색의 질감을 표현할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한지만의 독특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2016년 개인전을 연 경험이 있는 박 명예교수는 이번 화집을 한국뿐만 아니라 독일에도 소개할 계획이다. 그는 “인세와 판매 수익을 모두 황새 서식지 복원에 힘쓰는 농민들을 위해 쓰고 싶다”고 말했다. 황새 서식지에서 유기농법으로 농작물을 기르는 농민들의 소득을 조금이라도 보전해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농업생태계가 건강하게 회복되어야 모든 생명들이 더불어 살 수 있는 땅이 되기 때문이다. 박 명예교수는 “농민들은 농산물을 생산하는 사람에서 나아가 생태관리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화집이 팔리면 얼마나 팔리겠나. 하지만 이렇게라도 황새서식지 복원의 중요성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싶다”면서 “일본이나 유럽이 농약을 쓰지 않고 생태계를 살려낸 것처럼 한국 정부도 하루빨리 노력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윤주 기자 run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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