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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17살에 몸무게 고작 15㎏…생명선에 의지한 희귀병 나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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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19 나눔꽃 캠페인

선천성 희귀병 나연이네 ‘3자매 가정’

‘댄디·워커 증후군’ 앓는 첫째 중증 뇌병변 장애까지 겹쳐

목 기관절개 관으로 숨쉬고 쓰지 않는 골반은 맥없이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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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무게가 15kg밖에 안 되는 나연(가명·17)이는 선에 의지해 버티고 있다. 목에 뚫어놓은 기관절개 관으로 숨을 쉬고 배에 뚫은 위루 관으로 영양분을 섭취한다. 나연이가 누워있는 매트리스 위에는 석션(기도에 막힌 이물질을 빨아들이는 치료)기 전기선이 늘어져 있다. 정기적으로 나연이의 가래를 빼줘야 한다. 나연이의 몸에 달린 이 선들 중 어느 하나라도 잘못 건드리면, 금세 피가 난다. 옆에서 항상 누군가가 나연이를 지켜봐야 하는 까닭이다.

나연이는 중증 뇌병변 장애와 함께 선천성 희귀난치병 질환인 ‘댄디·워커 증후군’을 앓고 있다. 소뇌가 작게 태어나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병이다. 나연이는 인지능력이 거의 없고 신체활동도 어렵다. 3살 이후 한번도 걸어보지 못했다. 유모차에만 의지해온 나연이의 다리는 마치 팔처럼 가늘다. 다리를 사용하지 않아 골반은 빠져있고, 욕창 때문에 옆으로 눕혀 놓다 보니 허리는 90도로 굳은 상태다.

지난달 19일 오후, 경기 고양시 중산동 집에서 나연이는 거실 한쪽에 누워 만화영화가 틀어져 있는 티브이(TV)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연이의 귀는 왼쪽만 들린다. 나연이의 눈 상태가 어떤지는 어머니 김은정(가명·45)씨도 정확하게 모른다. “시력도 나빠서 정확한 검사를 해봐야 한다고 하는데, 여유가 없어서 아직 못 해봤어요. 그래도 조금은 보이는 것 같은데….” 김씨가 말했다. 나연이는 엄마의 걱정을 덜어주려는 듯 만화영화 장면이 바뀔 때마다 이야기에 맞춰 헤실헤실 웃었다.

김씨가 확실히 아는 건 나연이가 ‘사람 소리’를 좋아한다는 점이다. 티브이를 늘 틀어놓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했다. 나연이는 초인종 소리가 들릴 때마다 반응했다. “나연이가 특히 좋아하는 건 제 목소리예요. 집에 누군가가 오면 제가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나연이는 그게 좋은가 봐요.” 김씨가 말할 때마다 나연이는 입을 벌렸다. 기쁘다는 표시였다. 김씨는 나연이의 선천성 질병을, 나연이를 낳고 1년 뒤에야 알게 됐다. 그 탓일까. 나연이의 작은 표정 변화와 가벼운 손짓에도 김씨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나연이의 침을 닦아주고 머리를 넘겨주고 자세를 바꿔주는 손놀림에 미안함이 담겨 있었다.

“보통 댄디·워커 증후군이면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초음파로 알 수 있다고 해요. 그런데 저는 그걸 몰랐죠. 출산 예정일이 한달이나 남았는데 태동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급하게 수술했어요. 태어나자마자 손톱, 발톱이 새카맣게 변하며 빠졌어요. 팔꿈치, 무릎 등은 썩어들어 갔죠. 감염 때문이라고 했어요. 괴사가 와서 무릎 수술을 했고, 중증 소아병원에서 3개월을 있었어요. 100일 잔치도 거기서 하고. 그때까지만 해도 나연이 병을 몰랐어요.”

병원에서는 치료가 무사히 이뤄져 나연이가 잘 클 것이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좀 늦을 수는 있지만, 이상 없을 거라고 했어요.” 김씨가 나연이 병을 알게 된 건, 안심하라는 말을 듣고 나서 몇 달 뒤였다. 어느 날, 나연이가 심하게 경기를 일으켰다. 정밀 검사를 해보니 나연이의 소뇌가 작았다. 댄디·워커 증후군이라는, 난생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말에 김씨는 멍했다고 했다. 그래도 나연이는 잘 자랐다. 옹알거리기도 하고 손을 짚고 앉기도 했다. 그래서 김씨는 의사 말대로 나연이가 조금 늦을 뿐이라고 생각하려 애썼다.

상황이 심각해진 건 나연이가 3살 때부터였다. 나연이는 더 자주 경기를 일으켰다. 몸도 점점 굳어갔다. 나연이가 다른 아이들과 많이 다르다는 걸 김씨는 그때부터 온몸으로 알기 시작했다. 나연이와 김씨는 서로에게 적응해 갔다. 말을 못 하는 나연이가 손을 빨면 밥을 주고, 그릉그릉 소리를 내면 가래를 빼줬다. 일주일에 한번씩 물리치료를 받으며 몸을 풀어주고 신경정신과에서 경기를 일으키지 않게 하는 약을 꼬박꼬박 타 먹었다.

나연이는 다른 아이들과는 조금 다르지만 잘 자라주었다. 밥도 잘 먹었다. 잘 삼키지 못해 거의 죽으로 만들어줘야 했지만, 김씨는 나연이가 조금이라도 식감을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반찬을 일일이 가위로 잘게 잘라서 먹였다. 팔이 아파도 믹서기를 쓰지 않는 이유였다. 나연이는 만두나 계란밥을 좋아했다. 이런 나연이를 두고 의사는 “이렇게 자란 댄디·워커 증후군 아이는 처음 봤다”고 말했다. 의사는 보통 댄디·워커 증후군군이 있는 아이는 10살을 넘기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그 말이 사실인지는 일부러 찾아보지 않았어요.” 김씨가 말했다.

나연이는 중증 장애아를 받아줄 만한 장애학교가 개교하기까지 2년을 기다려 입학했다. 그래서 고등학교 2학년의 나이지만, 중학교 3학년 반을 다니고 있다. 김씨는 매일 등하교 차량 시간에 맞춰 유모차를 끌고 나연이를 데려오고 데려갔다. 김씨는 나연이 스케줄에 맞춰 일할 수밖에 없다. 오전 8시30분부터 나연이가 하교하는 오후 3시30분까지가 김씨에게 노동이 허락된 시간이다. 순댓국 가게, 삼겹살 가게, 세탁소 등에서 잠깐씩 일했다. 김씨는 “처음에는 하루 몇 시간이지만 나연이와 떨어진다는 게 걱정됐어요. 그래도 좀 익숙해지니까 그렇게라도 살림에 보탬이 될 수 있고 혼자만의 시간이 생긴다는 게 고마웠죠. 나연이도 학교에 가는 걸 좋아했고요.”

하지만 개학 첫날이었던 지난 3월4일, 학교에서 사고가 벌어졌다. 점심을 먹던 중 음식이 기도로 잘못 들어간 것이다. 나연이는 곧바로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향했다. 폐에서 미역이 나왔다. 작은 조각들은 꺼내지 못해 나연이는 폐를 다쳤다. “학교에서는 음식을 갈아서 먹였다고 하는데 크기가 좀 컸나 봐요. 과일 조각까지 토해냈어요.” 나연이는 그날 이후 아직까지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배를 뚫어 연결한 위루 관에서 자꾸 액이 새서 앉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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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실에 3개월 동안 입원했던 나연이는 이제 거실 한켠에 자리 잡았다. 막내 나윤(가명·10)이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언니에게 조금만 주면 안 될까? 언니가 좋아하던 건데”라고 말한다. 막내는 나연이를 살뜰하게 챙겼다. 나연이 몸에 달린 선이 흔들리지 않도록 잡아주는 건 기본이고 가래가 껴서 힘들어하면 10살 손으로 석션도 능숙하게 한다. 막내는 김씨가 나윤이를 돌보는 행동을 유심히 살피고는 “엄마, 가르쳐줘봐.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아”라며 언니를 돌보는 방법을 배웠다. 막내가 있어서 김씨는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둘째 나은(가명·15)이도 막내처럼 언니를 돌봤었다. 하지만 둘째는 심하게 따돌림을 당한 이후부터 언니 옆에 가지 않게 됐다.

나은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김씨가 일하던 식당이 집과 조금 멀어 통학버스에서 내리는 나연이를 데려오기에 시간이 빠듯했다. 나은이는 선뜻 자기가 그 일을 하겠다고 했다. 나은이는 작은 몸으로 어떻게든 언니를 받아 안아 유모차에 태웠다. 김씨가 나은이에게 “창피하지 않냐”고 묻자 나은이는 “괜찮아. 내가 왜 부끄러워?”라고 오히려 반문했다. 그러다 나은이가 5학년이 됐을 때,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기 시작했다.

“친했던 친구가 나은이와 싸웠는지, 그 이후로 ‘쟤 장애 언니 더러워, 쟤 껀 다 더러워’ 하면서 소문을 냈다고 해요. 그때부터 나은이가 너무 힘들어했어요. 그걸 보는 제 마음은 나연이가 장애 판정을 받았을 때보다 더 아팠어요. 장애가 없는 아이까지 내가 힘들게 한다는 생각에, 다 내 탓이라는 마음 때문에.” 김씨는 목이 메어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그 이후부터 둘째는 나연이를 아예 보지 않는다고 했다. 나연이에게 도움이 필요해도 막내를 시켜 가보게 한다고 했다. “거기다 대고 뭐라고 말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마음이 스스로 열리면 또 모르겠지만요.”

김씨가 둘째에게 미안한 점은 이뿐이 아니다. 최근 나연이가 중환자실에 입원하며 위루관 수술 등을 받느라 병원비 1500만원이 들었다. 나연이의 빠진 골반을 치료하기 위해 고관절 수술 비용으로 겨우 마련해둔 500만원을 고스란히 병원비로 썼다. 임대 아파트에 들어가기 위해 빌렸던 1000만원을 갚지 못한 상태였지만, 병원비가 모자라 1000만원의 빚을 더 냈다. 현재 이혼 절차를 밟고 있는 남편이 매달 얼마씩을 보내주긴 하지만, 아이 셋을 키우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남편에게 소득이 있는 탓에 나연이는 장애등급이 있어도 정부 보조금을 받을 수 없다. 나연이를 돌보느라 틈틈이 다니던 식당에도 나갈 수 없게 되자, 김씨는 학원비가 비싸 그나마 시키던 둘째와 셋째의 학습지를 끊었다.

공부 욕심이 있는 둘째는 모르는 영어며 수학 문제를 김씨에게 가져왔다. “제가 봐도 풀 수 없겠더라고요. 애가 얼마나 답답했는지, 저한테 ‘엄마 아는 사람한테 물어서 풀어달라’고 해요. 그러면 이리저리 물어보고 오는데, 다시 궁금한 게 생겼다며 또 질문을 해요. 바로바로 해결해 줄 수가 없으니 너무 미안하죠.”

나연이의 상태는 아직 기약이 없다. 나연이는 하루 쓰고 버려야 하는 목 필터 하나도 멸균으로 써야 하고, 기저귀, 주사기 등 소모품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든다. 상태를 살피러 일주일에 한두번씩 병원에 가야 하는데, 휴대용 석션기가 없어서 출발 직전에 나연이의 가래를 제거하고 최단 거리를 밟아 병원까지 가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병원까지 한 시간이 걸리는데 차에서 기침할까봐 항상 조마조마하죠. 다행히 나연이가 잘 참아줘요. 병원에 도착하면 석션기 콘센트를 찾아 헤매요. 병원에서 출발하기 직전에도 똑같죠.”

몸속에 산소 농도가 떨어지면 알려주는 산소포화도 측정기는 두달 동안 빌려 쓰다가 다시 돌려줬다. 위험한 순간에 경고음을 내줘서 꼭 필요한 물건이었지만 한달에 10만원이라는 대여비가 김씨에게 부담이었다. “내가 계속 옆에 붙어서 아이를 살펴보면 한달에 10만원을 아낄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하기로 한 거죠.”

나연이가 다친 뒤 김씨는 많은 것을 포기했지만, 딱 하나 자신을 위해 소비한 것이 있다고 했다. “며칠 전에 우쿨렐레를 하나 샀어요. 계속 혼자 울게 되니까 우울증이 올 것 같더라고요. 내 자신이 이상해지는 것 같아서 힘을 내려면 뭐라도 찾아야 할 것 같았어요. 나연이 옆에서 유튜브로 우쿨렐레 치는 법을 찾아보고 따라 해요. 소리에 민감한 나연이도 좋아해요.”

김씨는 현실을 버틸 수 있는 힘을 나연이에게서 얻는다고 했다. “나연이가 한번 웃어줄 때가 가장 좋아요. 웃으면 아프지 않다는 거니까.” 김씨는 오늘도 나연이를 바라보며 우쿨렐레를 연습한다.



나연이 가족에게 도움을 주시려는 분은 계좌로 후원금을 보내주시면 됩니다.(기업은행 035-100411-01-456, 예금주: 사회복지법인어린이재단)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누리집(www.childfund.or.kr)과 네이버 해피빈(happybean.naver.com)에서도 후원이 가능합니다. 또 다른 방식의 지원을 원하시는 분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1588-1940)으로 문의해주십시오. 기부금 영수증도 받을 수 있습니다. 목표 모금액은 2천만원입니다. 후원금은 나연이의 척추수술비와 의료기기 구입, 가족의 생활안정지원에 쓰이며, 2천만원 이상 모금되면 나연이네 가족처럼 어려운 사연의 가정에 지원됩니다.



<한겨레>와 월드비전이 함께한 ‘나눔꽃 캠페인’을 통해 지은(가명)이의 사연(<한겨레> 8월27일치 20면)이 소개된 뒤 모두 2039만원(7일 기준)의 정성이 모였습니다. 월드비전은 “147명의 후원자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밝혔습니다. 후원금은 지은이네 가족이 안전한 주거지로 이사하는 데 필요한 비용과 생계비로 쓰일 예정입니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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