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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9 (토)

이슈 유럽연합과 나토

'프레너미 터키' 내칠까 말까… 나토국들 깊은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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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내 쿠르드 침공, 러시아와 밀착해 안보 위협… 번번이 말썽

축출하자니 테러세력 차단 등 어려움… 난민 방파제 역할도 유용

美외교단체 "터키내 美 핵무기 철수, 오만방자 못하게 압박해야"

조선일보

터키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 지위를 박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서방국가에서 나오고 있다. 시리아를 제멋대로 침략했고 나토의 적(敵) 러시아와 밀착하면서 서방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토가 러시아와 중동을 상대로 효율적 군사작전을 펼치려면 터키의 도움이 필수적이라 쉽게 내칠 수 없는 형편이다. 터키가 적인 동시에 아군이라는 뜻의 '프레너미(frenemy)'인 상황이 부각되며 서방과 나토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DPA통신이 지난달 말 유고브에 의뢰해 독일인 2000명을 여론조사한 데 따르면, 응답자의 58%가 터키의 나토 회원국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대로 둬야 한다는 의견은 18%에 그쳤다.

지난달 9일 미군이 시리아에서 철수한다고 발표하자마자 터키군이 시리아 내 쿠르드족을 침공한 데 대한 거부감이 표출된 것이다. 국제연합군과 함께 IS(이슬람국가)를 퇴치한 쿠르드족을 터키가 공격한 것은 동맹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것이다.

1949년 서방 11개국으로 출범한 나토는 1952년 터키와 그리스도 회원국으로 받아들였다. 당시 6·25전쟁을 치르던 해리 트루먼 미 대통령은 소련과 공산주의 세력이 중동과 남유럽으로 팽창하는 것을 막기 위해 터키와 그리스를 품으며 나토를 확장했다.

그러나 나토에 들어온 터키는 계속 말썽을 부렸다. 1970년대 같은 나토 회원국인 키프로스를 침략해 아군끼리 전쟁을 벌였다. 올해는 러시아의 방공미사일 시스템 S―400을 도입하면서 러시아와 갈수록 긴밀해지고 있다. 레제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인권 탄압을 서슴지 않고 있어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비판이 거세다.

그러나 중동과 유럽의 경계에 있으면서 러시아와도 접하고 있는 터키의 지정학적 가치 때문에 나토가 터키를 버리기도 어렵다. 러시아에 대한 군사적 견제와 방어, 중동 테러 세력 유입 차단에는 터키가 필수적이다. 터키에는 50개가 넘는 미군 핵무기가 배치돼 있다. 터키 인지를릭 공군기지에는 미군이 2500명 주둔하고 있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군은 이 기지에서 폭격기를 출격시켰다.

터키가 나토에서 떨어져 나가면 나토의 외형이 크게 쪼그라들게 된다는 점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군 병력이 43만5000명인 터키는 29개 나토 회원국 중 미군 다음으로 병력이 많다. 지난해 터키 국방 예산은 190억달러(약 22조원)였다. 미국·프랑스·영국·독일·이탈리아·캐나다에 이어 나토에서 일곱째로 많았다. 미국 시사잡지 '디 애틀랜틱'은 "수많은 문제점에도 터키를 버릴 수 없는 파트너라고 인식하는 미국 고위 관료가 많다"고 했다.

게다가 EU는 중동의 난민들이 유럽에 유입되지 않도록 방파제 역할을 하는 터키와 멀어지는 것을 꺼린다.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에르도안은 유럽 주요국이 터키를 비판할 때마다 "300만명이 넘는 난민이 유럽으로 넘어가도록 하겠다"고 협박한다. 설령 터키를 나토에서 내쫓으려고 해도 나토 정관에는 회원국 축출 관련 규정이 없다. 70년 나토 역사에서 회원국이 자발적으로 탈퇴한 적은 있어도 내쫓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이런 고민 때문에 터키를 나토 회원국으로 두되, 터키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자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CFR) 회장은 "미국이 터키에 있는 핵무기를 철수하고 터키 공군 기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것은 물론이고 무기 판매도 줄여서 터키가 오만방자하게 굴지 못하도록 압박하자"고 주장한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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