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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살처분 전과정 시·군에 맡겨놓고… 정부, 문제 터지자 뒷북점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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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열병 컨트롤타워 농식품부, '침출수 하천 유입' 보도 보고 알아

정부가 뒤늦게 아프리카돼지열병(ASF)으로 살처분된 돼지가 묻힌 모든 매몰지를 대상으로 현지 점검을 실시하기로 했다. 지난 10일 경기 연천군 마거리 매몰지에 쌓아놓았던 돼지 사체에서 흘러나온 피가 인근 하천으로 유입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조선일보

지난 11일 정부 관계자가 경기 연천군 마거천에 가림막을 치고 침출수를 제거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살처분된 돼지가 묻힌 모든 매몰지에 대한 현지 점검에 나섰다. /농림축산식품부


농림축산식품부는 환경부, 지방자치단체와 합동 점검반을 구성해 매몰지 101개소가 적합하게 조성됐는지에 대한 일제 현지 점검을 시행하겠다고 12일 밝혔다. ASF 주무부처인 농식품부는 11일 관련 보도가 나오고 나서야 연천 매몰지에서 침출수가 유출된 상황을 파악했다. 농식품부는 "매몰 작업을 지자체 단위로 추진하다 보니 상황에 대한 인지가 늦었다"며 "연천군 매몰지 작업 상황에 대한 지도·감독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정부와 지자체는 가축전염병이 발생하면 농식품부가 만든 긴급행동지침(SOP)에 따라 살처분을 실시한다. 농식품부의 ASF 긴급행동지침은 35쪽에 걸쳐 살처분의 기본 원칙과 범위부터 살처분 방법, 사체 처리 방법, 매몰지 선정 기준 및 매몰 시 주의사항까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문제는 긴급행동지침이 살처분의 A부터 Z까지 전부 시·군에 맡기고 있다는 것이다. ASF 의심 신고가 발생하면 시·군은 살처분을 위한 인력·장비·약품 조달 계획을 수립해야 하고, 확진되면 시장·군수가 살처분을 명한다. 살처분 이후 사체 처리 방식부터 매몰지 선정, 매몰 이후 사후 관리까지도 시·군이 담당하도록 돼있다. 한마디로 지자체가 '독박'을 쓰는 구조인 것이다. 지침상 살처분 과정에서 중앙정부가 하는 역할은 검역본부로부터 살처분 대상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건의를 받았을 때 가축방역심의회 조언을 받아 결정하는 정도에 그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미 예방적 살처분이 끝난 다른 지자체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가장 먼저 지역 내 전량 살처분을 실시한 인천 강화군 관계자는 "정부에서 '발생 농가나 군 소유지 중 문제가 되지 않는 곳에 묻어라'라는 지침만 내려주고 어디에 묻으라는 구체적인 지침은 없어 매몰지를 물색하는 단계에서부터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특히 정부 지시에 따라 작업을 서두르면서 주민 협의가 부족해 살처분이 완료된 뒤에도 악취 등 민원이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주로 민가 근처에 매몰지를 정해 하루에도 수십 건의 민원 전화가 쏟아진다고 담당 직원들은 하소연한다. 강화군 방역팀 관계자는 "몇몇 민원인이 농식품부에 직접 항의를 했으나 '강화군에 알아보라'고만 했다고 한다"며 "여긴 담당 직원이 5명에 불과해 민원에 응대하느라 업무 차질이 심각하다"고 했다.

ASF 같은 국가적 재난 사태에서 정부가 살처분 전 과정을 시·군·구 단위에만 맡기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정향 건국대 교수는 "지자체에서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예방적 살처분을 지시하다 보니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며 "광범위한 예방적 살처분에 대해선 중앙정부 차원에서 매몰지 조성과 관리를 하도록 매뉴얼을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강화=고석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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