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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2년전 폐허 그대로… 보상 늦어지자 "우릴 개돼지로 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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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지진 2년… 피해구제안 담긴 특별법 처리 지연에 주민 분통

40여명 거주 체육관엔 '난민보다 못한 지진 이재민' 현수막

일부 시민, 국가·市 상대로 손해배상 등 5건 집단소송 진행

경북 포항시에는 '피사의 아파트'가 있다. 지난 2017년 11월 15일 포항을 뒤흔든 규모 5.4 지진으로 15도가량 기울어진 대성아파트다. 지진 이후 2년, 아파트는 여전히 기울어진 채 철거를 기다리고 있다. 당시 지진으로 1명이 숨지고 117명이 다쳤다. 주택 약 6만채가 파손돼 포항 인구의 약 3분의 1인 16만명이 피해를 입었다. 이재민은 2390명이 발생했다. 직간접 피해 추정액은 3324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피해 배상·보상을 포괄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관련법 제정이 주춤하면서 주민들은 "정부와 포항시가 주민을 개돼지로 보는 게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조선일보

지난 2017년 11월 15일 포항 지진으로 크게 파손된 경북 포항시 환호동의 한 빌라가 2년 후인 지난 11일에도 여전히 흉물로 방치돼 있다. 왼쪽 사진은 포항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에 설치된 이재민 텐트. 지진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비 새는 집 살아봐라' 등 문구를 붙여놨다. /연합뉴스·권광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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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포항 지진 이재민들이 2년째 머물고 있는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 대피소 입구엔 '난민보다 못한 지진 이재민' '불통 포항시는 쇼하지 말고 소통하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대피소 내부 식당에는 이재민 김모(51)씨가 그리고 다른 이재민들이 항의 글귀를 써 넣은 수묵화 수십 점이 붙어 있었다. 지난 3월 포항 지진을 인근 지열발전소가 촉발했다는 정부조사연구단 결과가 나온 후에도 주거 보상 대책이 늦어진다는 항의였다. 이곳에는 96가구가 등록돼 있으며 40여명이 실제로 거주하고 있다.

포항시는 지난여름 태풍 이후 대피소 등록 이재민을 대상으로 임대주택 신청을 받았다. 그러나 이주하겠다는 이재민은 3분의 1 정도인 31가구뿐이었다. 주민들은 주택 거주 기한이 2년으로 제한된다는 점을 걸림돌로 꼽았다. 흥해초등학교 뒤편에 위치한 희망보금자리의 이재민들도 마찬가지였다. 희망보금자리 32개 동에는 27가구가 2년 계약으로 입주해 있다. 29.7㎡(9평)짜리 컨테이너인 이곳에 1년 7개월째 살고 있는 50대 이재민 A씨는 "올해엔 2년 후까지 계약이 연장됐지만 2년 뒤엔 또 어떻게 될지 막막하다"고 했다. 포항시는 살던 주택이 전파(全破)·반파(半破) 판정을 받은 806가구에 임시 거처를 마련해줬다. 이 역시 2년 기한이다. 포항시 관계자는 "2년 후의 추가 지원에 대해선 상황을 봐야 한다"고 했다.

지진에 대한 보상이 늦어지자 일부 시민은 국가와 포항시 등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손해배상 소송과 가처분 소송 등 현재까지 5건이 진행 중이다. 지난 11일 오후 흥해읍 남송리의 포항지열발전소에서는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 관계자가 나와 현장 검증을 실시했다. 이들은 발전소 시설 장비 철거 여부와 지진계 설치 현황 등을 확인했다. 지난해 10월 포항 시민 1만2000여명이 국가와 지열발전 주관사를 상대로 낸 가처분소송에 따른 조치다. 지난 5일엔 서울중앙지검에서 지진 발생 이후 처음으로 한국지질자원연구원과 지열발전주관사 등을 압수 수색했다.

포항시와 시민들은 지진 피해를 근본적으로 치유하기 위해 법적 근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시는 올해부터 지진이 발생한 흥해읍 120만㎡ 지역을 대상으로 '포항 흥해 지진피해지역 특별재생사업'을 진행 중이다. 전파 판정을 받은 주택 토지를 매입해 이재민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고 그 자리에 체육 시설이나 어린이집을 세운다는 계획이다. 오는 2023년까지 사업비 2257억원이 들어간다. 하지만 전파 지역만 대상이라는 한계가 있다. 포항시 관계자는 "전반적인 도시 재건의 법적 조항이 없어 정부 지원을 받기 어렵다"면서 "특별법이 제정되면 다른 피해 지역에 대한 지원도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여야는 정부조사연구단의 발표 이후 포항지진 특별법안 5건을 잇따라 발의했다. 지진 이재민의 물질적·정신적 손실 보상 등 피해 구제 방안이 담겨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상정됐으나 여야 대립으로 법안소위를 통과하지 못했다. 내년 4월 21대 총선 전까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면 법안은 자동 폐기된다. 여야는 14일과 오는 18일, 21일에 열릴 법안소위에서 여러 안을 하나로 병합한 특별법을 통과시키겠다는 목표다. 국회 관계자는 "법안소위를 통과하면 올해 안에 특별법이 제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포항 11·15 촉발지진범시민대책위원회의 임성남 단장은 본지 통화에서 "특별법의 빠른 제정을 원하지만 졸속으로 통과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면서 "지진 이재민들의 피해를 국가가 확실히 보상해줄 수 있는 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포항=권광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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