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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서양고전학자 김동훈의 물질인문학](15)전쟁·경쟁 없는 낙원 꿈꾸다가 ‘비밀의 정원’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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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정원

경향신문

그래픽 | 현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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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피렌체에서 밀라노로 옮긴 뒤 첫 번째로 그린 그림은 ‘동굴의 성모’였다. ‘순수’를 주장하는 어느 종교단체로부터 주문을 받아 1483년에 시작해 1486년에 완성한 그림인데, 성모와 아기 예수, 아기 요한, 그리고 천사를 어슴푸레한 바위와 식물을 배경으로 그렸다. 하단에 그려진 식물들은 우리가 보기에 왼쪽부터 노랑꽃창포(Iris pseudacorus), 매발톱꽃(Aquilegia vulgaris), 앵초꽃(Primula vulgaris)이다. 이 식물들은 빛이 잘 들지 않는 동굴과 같은 습한 환경에 적합한 식물이다. 오른쪽 뒤편 바위 사이를 자세히 보면 잎이 무성한 로부르참나무(Quercus robur) 가지가 있다.

꽃과 식물은 르네상스 회화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여기 있는 식물들과 ‘순수’는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다빈치는 화장품과 향수를 만들었을 정도로 식물 지식에 해박하였다. 그 식물들이 순수하다는 것은 중세의 정원 개념과 맞닿아 있다.

■ 비밀의 정원

가든, 중세 라틴어서 유래…‘닫힌 정원’이라는 의미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비밀의 정원’이었던 것

정원은 천상·세속 사랑이라는 우화의 상징으로 가득


영어 ‘가든(garden)’은 ‘닫힌 정원’이란 뜻의 중세 라틴어 ‘호르투스 가르디누스(hortus gardinus)’에서 온 말이다. 원래는 ‘호르투스’가 정원을 뜻하지만 중세 이후로는 ‘닫힌’을 의미하는 ‘가르디누스’가 정원이란 뜻으로 정착되었다. 그만큼 중세의 정원은 닫힌 공간의 의미가 컸다. 한마디로 중세 정원은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비밀의 정원’이었다.

청춘남녀 열 명이 ‘비밀의 정원’에 들어간 이야기가 보카치오(1313~1375)의 <데카메론>에 나온다. 1348년 피렌체에 창궐하고 있는 흑사병을 피해 정원에 들어간 열흘 동안의 기록인데, 여기에 묘사된 14세기 정원은 “사방이 담으로 둘러쳐진 곳”이었다. 중세부터 있었던 ‘닫힌 정원’의 전통은 적어도 <데카메론>이 발표된 1353년까지 흔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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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독일 화가 루카스 크라나흐의 ‘에덴동산’(15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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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는 정원을 성경에서 ‘창세기’의 최초 생활공간인 ‘에덴동산’, ‘아가서’ 연인들의 ‘밀애의 공간’, 종말을 예언한 ‘계시록’의 ‘영원한 낙원’ 등의 종교적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기 때문에 중세의 정원은 천상과 세속의 사랑이라는 우화의 상징으로 가득했고, 정원 안에서 근엄한 기사와의 사랑 이야기가 문학으로 만들어졌다. 정원은 울타리를 쳐야 짐승과 외적들, 전염병으로부터 보호받는다고 여겼고, 기하학적으로 구획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 여겼다. 그렇게 닫혀 있는 ‘비밀의 정원’은 아름다움 또는 순수를 보호하는 공간이 된다.

중세 정원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생갈수도원의 계획도’로 불리는 9세기의 관리 규정에 남아 있다. 생갈수도원에 소장된 계획도에는 두 명의 수도사들이 남긴 식물 목록과 함께 달력이 남아 있다. 기록에는 많은 그림들과 색실로 짠 직물 그림, 채색 사본이 담겨 있다.

수도사들은 식물에 대한 과학 및 약초의학 소양을 가져야 했다. 허브나 풀들은 ‘허브정원’에, 관상 목적의 수목은 ‘마당정원’에, 식재료가 되는 식물은 ‘주방정원’에, 의약품과 화장품의 재료가 되는 식물은 ‘약초정원’에, 분수와 길이가 짧은 식물은 ‘회랑정원’에 배치하거나 재배했다. 제단을 장식하기 위해 백합과 장미, 제비꽃 등을 재배했는데, 백합은 순수, 장미는 순교, 제비꽃은 겸손을 상징했기 때문이다. 중세인들은 상당히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꽃과 허브를 정원에서 재배하고 의약품과 식재료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시토수도원을 설립한 신비주의자 베르나르 드 클레르보(1091~1153)는 야생에 자생하고 있던 재스민, 라벤더, 붓꽃, 동백꽃 등을 정원에 옮겨와 식물의 향에 집중할 것을 강조했다. 이 수도원에서는 옷을 삶을 때 붓꽃의 말린 뿌리와 함께 삶았고, 자단나무로 된 벽장에 넣었을 뿐만 아니라 비누에도 향을 넣었다고 한다.

당시 정원 잘 담긴 생갈수도원 계획도, 진료정원 갖춰

중세 수도원 ‘비밀의 정원’, 유럽 병원 구조에도 영향


정원을 갖춘 수도원 구조 중에 특이한 점은 예배당, 회랑정원, 주방, 약초정원, 마당정원에다가 진료(정)원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중세 정원의 궁극적 이상이 회복에 있다는 점을 잘 드러낸다. 이와 같은 수도원 구조는 유럽의 병원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1423년 베네치아 산세르볼로섬에 세워진 최초의 격리 병원은 중세 수도원의 ‘비밀의 정원’이 ‘회복의 정원’으로 진화한 형태였다.

■ 물의 정원과 지옥의 정원

기하학적 구획으로 유명했던 르네상스의 정원

데스테가 만든 ‘물의 정원’, 100여개 분수 보는 재미

오르시니 ‘지옥의 정원’은 그로테스크한 조각상 즐비

정원이 비밀 장소 아닌 회복 공간 되길 바란 두 사람

물·괴물로 가득 찬 ‘회복 정원’ 만들어 수십년 거닐어


기하학적 구획으로 유명한 르네상스 정원도 사실 중세의 이상을 구체화한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르네상스 정원은 최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도 그럴 것이 르네상스 시기에 무역이 발달하고 농산물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졌기 때문이다. 재력가들은 남아나는 토지에 정원을 경쟁적으로 만들기 시작했고, 이런 유행은 피렌체에서 로마로, 이탈리아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르네상스식 정원이 유행하면 할수록 좀 더 이상적인 정원의 모습을 그렸다는 점이다. 보카치오도 자신의 마음속에 꿈꾸는 이상적인 정원을 나타낸다.

정원을 채운, 아마도 백여 종류는 될 법한 귀여운 짐승들이 눈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들은 서로에게 짐승들을 가리켜 보여 주었는데, 이편에서 집토끼가 나오는가 하면 저편에서는 산토끼가 뛰어다녔고, 암사슴들이 누워 있을 뿐만 아니라 새끼 사슴 몇 마리가 돌아다니며 풀을 뜯는 것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해롭지 않은 온갖 종류의 짐승들이 마치 가축처럼 저마다의 모습을 뽐내며 즐겁게 노닐고 있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그 어떤 것보다 큰 즐거움을 더해 주었습니다.(보카치오, ‘세 번째 날’, <데카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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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정원’으로 불리는 이탈리아 중부 티볼리의 ‘빌라 데스테’(위 사진). 이탈리아 라치오주 ‘보마르초 정원’의 바다의 신 글라우코스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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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카치오가 바라본 이상적 정원은 맹수와 초식동물들이 함께 노니는 곳이었다. 르네상스 시기에 구체화된 이상적 정원 중 하나는 ‘물의 정원’이란 별명이 붙은 ‘빌라 데스테(Villa d’Este)’이고 또 다른 하나는 ‘지옥의 정원’이라 불리는 ‘사크로 보스코’이다. 빌라 데스테는 가파른 경사에서 수로를 따라 막대한 양의 물이 내려오면서 거의 모든 공간에 분수가 솟아오르게 했다. 폭포 소리가 나듯 장엄한 원형 분수, 1㎞의 길을 따라 쭉 펼쳐지는 100개의 분수, 넵튠 분수, 오르간 분수, 용의 분수, 다산의 분수, 그 밖의 수많은 분수들이 보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빌라 데스테를 만든 아폴리토 데스테 추기경은 20여년간 교황 선거에서 다섯 번이나 낙선했지만 그 기간 동안 극적인 즐거움을 주는 놀이공원을 만들어낸 것이다. 적어도 그의 경쟁심과 패배감이 유쾌한 위락시설을 만드는 창의성으로 승화된 것이다.

르네상스 정원 중 가장 극단적으로 변형된 형태는 이탈리아 보마르초에 있는 ‘사크로 보스코’, 즉 ‘성스러운 숲’이다. 정원 안에는 돌로 된 거대한 조각상들이 흩어져 있다. 장미꽃을 든 곰, 군인들을 코로 휘감아 높이 쳐든 코끼리, 인간의 두 다리를 찢는 거인 등 정원 자체가 음습한 데다 조각상들마저 그로테스크해 ‘괴물들의 정원’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다. 피사의 사탑처럼 곧 쓰러질 듯 기울어진 작은 집과 단테의 지옥의 문을 모방한 듯 “모든 생각을 날려버리라(Ogni pensiero vola)”고 적혀 있는 ‘지옥의 입’ 등은 기묘하고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성스러운 숲’ 정원이 더욱 환상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조각물에 녹색 이끼가 끼어 있기 때문이다. <보마르초의 괴물>이란 책을 쓴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망디아르그(1909~1991)는 “이것은 인간의 손으로 가공된 돌, 청동, 나무, 수액 및 부식토에서 끊임없이 뿜어내는 엽록소 전체와의 결혼이다. 그것은 사마귀가 교미하는 것과 같다. (…) 예술품이 먹혀 버리는 결혼이다”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성스러운 숲’이라는 이름은 예술적으로 창조됨과 동시에 나무의 수액과도 같은 초록에 집어삼켜지는 “성스러운 결혼”인 셈이다.

오르시니는 도대체 어떤 이유로 이런 특이한 정원을 만든 것일까? 오르시니가 교황을 위해 용병으로 복무한 것은 카를 5세의 ‘로마 침략’(사코 디 로마)이 있었던 시기다. 당시 교황 클레멘스 7세는 권력이 막강해지는 황제 카를 5세에 대항하기 위해 프랑스, 밀라노, 베네치아, 피렌체와 코냑동맹(1527~1530)을 맺었다. 이에 분노한 카를 5세는 1527년 교황령의 수도 로마를 대대적으로 침략하여 무차별적으로 약탈을 자행했다. 교황은 피신하여 유폐생활을 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이때 교황청 근위대로 고용된 스위스 용병 전원이 전사하는 급박한 상황까지 벌어졌다. 용병대장으로 이런 뼈아픈 체험을 했던 오르시니는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몽골계의 아름다운 아내 파르네즈를 보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젊은 아내는 이미 죽은 후였다. 그는 죽은 아내를 보고 광기에 휩싸여 이후 30여년간 괴기스러운 정원을 만들게 된다.

■ 회복의 정원

상처받은 자들이 보기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설계되고 개간된 정원들은 자신들의 생채기만 긁을 뿐이었다. 그 공간은 승리자들의 자신만만한 교만의 증거처럼 보였다. 비밀의 정원처럼 울타리를 치고 자연을 경작해 거기서 약을 만들고 치유하면서 야생으로부터 아름다움을 지키고 보호할 수 있다는 중세인의 생각은, 르네상스기에 절정을 이루었다. 하지만 이제 인간의 힘이면 그런 아름다움이 가능하다고 큰소리치며 으스댈 즈음에 인간의 무기력함과 불완전함을 체험한 사람들은 그 정원이 꺼려지고 부담스럽게 보였다. 르네상스인들은 정원이 자연의 법칙을 표현하기 위해 구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것은 또 다른 폭력을 낳았다.

데스테와 오르시니는 비밀의 정원이 점차 회복의 정원이 되기를 소망했다. 한 사람은 유쾌한 분수로, 또 한 사람은 끔찍하게 망가진 괴물을 통해 자신들의 상처가 승화되는 공간을 20여년, 30여년 동안 만들고 거닐었다. 그들은 당시 르네상스인이 거닐지 못했던 ‘회복의 정원’을 남몰래 거닐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중세부터 가졌던 이상적인 정원은 어떤 모습일까? 르네상스 시기에 보카치오가 그렸던 온갖 맹수와 초식동물들이 어울려 함께 뒹구는 그 ‘회복의 정원’을 중세인들은 다음의 문구에서 찾았다.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암소와 곰이 나란히 풀을 뜯고 그 새끼들이 함께 지내리라.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젖먹이가 독사 굴 위에서 장난하며 젖 떨어진 아이가 살무사 굴에 손을 디밀리라. (…) 그때에 다리 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 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광야에서는 물이 터져 나오고 사막에서는 냇물이 흐르리라.(구약성경 ‘이사야’ 11장 6~8절, 35장 6절)

에덴동산, 솔로몬의 방초동산, 영원한 낙원을 구현하겠다는 중세의 그 이상적인 동산은 동물들도 다투지 않는 정원이었다. 르네상스 전성기를 살았던 데스테와 오르시니는 경쟁도 없고 전쟁도 없는 저 ‘회복의 정원’을 위해 물의 정원과 괴물의 정원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우리도 꽃씨 하나 얻어다가 한 줌 흙에 담아두고 작은 정원이라 하면 어떨까? 우리의 작은 정성에 움트는 새싹의 강인한 생명력이 나에게도 올 것만 같다.

■ 필자 김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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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서양고전학협동과정에서 희랍과 로마 문학 및 로마 수사학을 공부했고, 현재 고려대 대학원에서 플라톤과 키케로를 연구하고 있다. 서울대, 철학아카데미, 푸른역사아카데미 등에서 라틴어 원전 강독 및 그리스어·라틴어를 강의했다. 네이버 오디오클립 인문 분야 화제의 방송이었던 ‘별별명언’을 진행했으며, <별별명언: 서양 고전을 관통하는 21개 핵심 사유> <브랜드 인문학> 등을 출간했다.


김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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