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도시와 라이프] 도시재생, 고차원 방정식을 풀자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시가지가 쑥대밭이 되어 건물이 거의 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차제에 도로나 넓히자'는 것이 평균적인 발상이다."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를 쓴 손정목 선생은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뒤 실시된 한국인에 의한 첫 도시계획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교통공학 기법을 활용해 자동차가 지나다니기에 무리가 없도록 도로를 내고, 토목공학과 도시공학을 이용해 토지를 적절한 크기로 잘라 나누고 그 용도를 설정하는 등의 일. 당시 도시계획은 선진 학문을 익힌 이들에 의한 '공학적' 설계가 최선이었다. 물론 이처럼 위에서 결정해 그대로 시행하는 하향식 도시계획에 대해 시민들의 불만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책에 따르면 "그것이 통하는 시대"였다.

전쟁으로 인해 도시가 완전히 파괴된 1952년 시민 32만명 규모였던 서울시가 2010년 1000만명을 훌쩍 넘어 고점을 찍을 때까지 서울은 계속 확장됐다. 강남과 잠실 개발, 일산과 분당 신도시 개발 등으로 땅을 넓혀 나가며 주택 공급을 늘리는 과정은 공학의 시대를 대변한다. 수입한 설계도에 따라 공산품을 찍어내듯 주택을 공급하고 도시를 늘려 나갔다. 이 확장적 도시 개발의 마지막 용지가 바로 마곡이었다.

이제는 모든 땅에 짧게는 10년, 길게는 70여 년 세월이 내려앉았다. 수많은 사람의 인생도 차곡차곡 쌓였다. 시민의 권리가 강조되면서 하향식 계획을 쓰기가 어려워졌다. 도시 재생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이제 도시계획가는 설계도면 위에 맴도는 '공학'을 넘어 그 땅 위에 수십 년을 살아온 삶을 다뤄야 한다. 토목학, 도시공학, 교통공학을 넘어 사회학, 역사학, 심리학, 경제학 등 모든 분야가 융합된 지식이 필요해진 것이다. 사실 사회 갈등, 경제 분야, 정부 부문을 두루 취재했던 기자 출신인 필자가 이런 글을 쓰고 있다는 것 자체가 도시 재생의 시대를 상징한다. 공학의 시대에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1960~1980년대 산업화 시대에 부흥했던 서울 종로 세운상가와 그 주변 지역은 모두 없애고 재개발하는 방향으로 도시계획이 추진되다가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등 시민단체 반대와 서울시의 재개발 사업 중단 결정으로 원점으로 돌아갔다. 개발 이익 실현 욕구를 가지고 있는 땅 주인들과 철거 지역 안 골목길의 정밀 기계금속 및 판금 공장 등에서 여전히 영업 중인 사람들, 이 도심 속 산업이 만들어 내는 산업 네트워크 효과에 영향을 받는 이들, 그리고 시간이 멈춰 있는 듯 산업화 시대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이 공간의 비일상성을 즐기며 '힙지로'라고 부르는 이들, 을지면옥과 양미옥 같은 노포를 찾는 사람들이 뒤섞여 있는 곳. 도시 재생은 이 고차방정식에서 해답을 찾아내야 한다.

이 공간의 변화에 좌지우지되는 이들과 함께 사회경제적 트렌드에 비춰 미래의 비전을 만들어 내는 것이 그 해답을 찾는 방향타가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 뉴욕 도심에 수십 년간 버려진 고가철도 사례는 곱씹어 볼 만하다. 하이라인 보존 운동을 펼친 시민이었던 로버트 해먼드와 조슈아 데이비드는 그들의 책 '하이라인 스토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22개 도시 블록에 은신처처럼 걸쳐 있는 이 오래된 고가 구조물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우리와 다른 시대의 산업유산 위에 올라서서 여기저기 거닐어 보는 것은 근사한 일이 아닐까?"

이들은 주변 시민들과 영향력 있는 인사들을 한 명씩 만나 갔다. 이 지난한 과정은 도시 속 산업유산의 존재에 대한 '순진한' 생각이 의외로 많은 사람의 공감대를 자극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여정이었다. 하이라인은 이제 공원으로서 수많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적인 공간이 됐다. 하이라인이 만들어 낸 풍성한 이야기와 즐길 거리는 이 도시에서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더욱이 주변 부동산 가격까지 끌어올리고 있으니, 용적률 따위에 매달리던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셈법을 써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음성원 도시건축전문작가]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