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지역 실직자들의 재취업을 지원하는 울산 조선업희망센터를 찾은 구직자들이 재취업 상담을 받고 있다. [사진 제공 = 울산 조선업희망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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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은주가 영하 3도를 가리킨 지난달 27일. 한국GM 부평공장 정문 앞에서 만난 이 모씨(45)는 1년 전만 해도 한국GM 1차 협력업체 D사 직원으로 한국GM 부평공장에서 일했다. 이씨는 2018년 12월 한국GM이 일감이 없다는 이유로 D사와 계약을 해지하면서 직장을 잃었다. 이씨는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는 원도급사 직원으로 갈 수도 있고 50세가 넘어서는 중산층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는데 그런 기대가 무너졌다"고 말했다.
중산층 일자리 사다리가 붕괴되고 있는 것은 비단 '화이트칼라' 계층뿐만 아니다. 제조업 현장직 일자리는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에도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자제해 한때 '철밥통'으로 불렸다. 그러나 조선업·자동차 수출 경기 악화로 구조조정과 기업 파산이 이어지자 생산직에 대한 구조조정도 대거 단행하면서 중산층 일자리 감소의 주 무대로 변했다. 같은 날 울산시 동구 서부동 울산 조선업희망센터. 센터 인근에서 만난 실직자 김 모씨(43)는 "평범한 생활로 돌아가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조선·석유화학 분야 플랜트 업체에서 근무하다 지난해 7월 업체가 일감 부족으로 문을 닫아 실직자가 됐다. 그는 "3월 실업급여가 끝나고 난 뒤를 생각하면 앞이 깜깜하다"며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정부가 지금 노인일자리만 세금으로 늘릴 때가 아니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지난해 울산 조선업희망센터를 찾은 실직자 중 20~40대가 41%를 차지했다. 실업자 중 절반 가까이가 경제 허리층이라는 뜻이다.
경제 허리층 '중산층'이 제조업 붕괴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은 '숫자'로도 증명된다.
매일경제신문이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양질의 일자리로 평가받는 제조업·상용직 가운데 30·40대 비중은 감소하는 반면 50·60대 비중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제조업에 종사하는 가구주를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2013년은 30·40대가 64.4%였는데 2018년 기준 58.1%로 떨어졌다. 반면 50·60대는 31.5%에서 39%로 증가했다. 제조업 일자리에서 30·40대가 점점 밀려나면서 30·40대 '상용직 근로자' 비율도 줄어들고 있다. 상용직 근로자는 고용계약 1년 이상으로 안정적 중산층 진입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2013년 30·40대 상용직 종사 가구주 비중은 65.4%였다. 2018년엔 57.3%로 줄어들었다. 50·60대는 28.6%에서 39.2%로 되레 높아졌다.
젊은 중산층을 지탱하는 제조업 일자리가 흔들리는 가운데 민간일자리 '발목'을 잡는 정부의 거꾸로 가는 일자리 대책은 고용 불안을 더 부추기고 있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주52시간 근무제 확대가 대표적이다.
인천 소재 자동차부품업체 대표는 "주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하는 300인 이하 중소기업에 계도기간 1년이 주어졌지만 1년간 처벌이 유예된 것이지 안 하겠다는 게 아니다"면서 "주52시간 근무제 도입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10% 안팎의 구조조정을 하는 업체가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직장을 잃은 사람에게 실업급여를 지원하는 고용보험기금도 갈수록 마른 우물을 푸는 대책이 돼가고 있다.
고용보험기금은 이미 이곳저곳 일자리 대책마다 동원되는 바람에 바닥이 말랐다. 고용보험기금은 대량 실업이 발생하거나 고용 불안에 대비하기 위해 적정 규모의 자금을 적립한다. 이번 정부 출범 연도인 2017년 실업급여 수입액은 7조1476억원, 지출액은 6조2858억원이었다.
문재인정부 출범 직후 1년인 2018년에는 수입액 7조6407억원, 지출액 7조9157억원으로 지출이 수입을 추월했다. 2019년에는 지출이 10조원에 육박하면서 그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실업급여 향상, 육아 지원금, 관제형 노인일자리 등에 기금이 동원됐기 때문이다.
[기획취재팀 = 이지용 팀장 / 김태준 기자 / 문재용 기자 / 오찬종 기자 / 양연호 기자 / 송민근 기자 / 서대현 기자(울산) / 지홍구 기자(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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