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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연재] 아시아경제 '양낙규의 Defense Club'

[양낙규의 Defence Club]각 군 박물관에 숨겨진 유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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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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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각 군이 보유한 박물관에는 일반박물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색있는 유물들이 많다. 일반인들이 주말나들이로 놓치기 쉬운 박물관이지만 저마다 사연도 깊고 일반 전시장에서 볼 수 없는 특색있는 유물이다.


4일 군에 따르면 각군에서 보유하고 있는 유물은 육군박물관이 1만 4000점, 공군박물관이 1만 7000점, 해사박물관이 5507점에 이른다.


육군사관학교 내 육군박물관에 보유한 유물중에는 대한제국 시절 신식군대의 육군 군복도 있다. 상ㆍ하의, 코트 형태의 외투까지 온전히 한 벌로 보존돼 오고 있다. 천으로 된 바지 멜빵, 가죽으로 된 도대(刀帶) 칼집이 장착된 허리띠까지 보존돼 있다.


대한제국 육군 진위대의 부위(副尉)와 강릉재무서장을 지낸 황석(1849~1938)이 남긴 유품과 문중에서 전해오던 고문서 등 유물을 후손인 황일주(황석 종손ㆍ만66세) 씨로부터 기증받았다. 진위대는 1895년 지방의 질서유지와 변경 수비를 목적으로 설치한 최초의 근대식 군대이다. 부위는 대한제국 무관 계급 중 하나로 지금의 위관장교인 중위급에 해당된다.


공군박물관에 가면 국산 1호 항공기 '부활호'를 볼 수 있다. 부활호는 한국전쟁 직후 실의에 빠진 우리나라에 희망을 심어준 비행기다. 우리나라 기술로 항공기를 만들자는 목표 아래 27명의 공군 정비사들이 모여 설계도를 제작했고, 미 공군기지를 샅샅이 뒤져 부품을 모았다.


당시 공군의 훈련기였던 L-16 연락기의 엔진과 프로펠러 등을 사용했지만 비행기의 70%를 차지하는 동체와 날개 등은 우리 기술로 설계ㆍ제작됐다. 4기통 엔진을 가진 이 비행기의 최고 속도는 시속 180㎞. 다른 나라가 개발한 비행기보다 성능은 떨어졌지만 당시 국내 기술로는 획기적이었다. 결국 1960년 한국항공학교로 보내진 부활호는 정비실습용으로 활용되다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이 비행기는 2004년 똑같은 모습으로 부활했다. 2008년에는 '등록문화재 제411호'로 지정됐다.


해군사관학교가 보유중인 유물은 조선시대의 주요 화포인 '중완구', 안중근 의사 유묵(청초당ㆍ1972년 국가지정 보물), 안중근 의사 유묵(임적선진위장의무ㆍ2007년 국가지정 보물), 백두산함 마스터(2010년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등이다.


안중근 의사 유묵 '임적선진위장의무'는 이토 히로부미 저격 직후 체포된 안중근 의사가 1910년 3월, 여순 감옥에서 쓴 것이다. 유묵은 가로 35cm, 세로 139cm의 비단재질로 돼 있으며 안의사의 친필로 '臨敵先進 爲將義務'(임적선진 위장의무 : 적을 맞아 앞서 나가는 것은 장수의 의무다)라고 적혀져 있다. 또한 유묵 왼쪽 하단에는 '大韓國人 安重根'(대한국인 안중근)이라는 서명과 함께 왼손 약지가 잘린 안중근 의사의 낙관(落款)이 선명하게 찍혀있다.


뜻깊은 유물을 보관중인 해군은 아픈 기억도 갖고 있다. 해군은 1992년 별황자총통 사건이다.


1992년 8월10일. 해군 충무공해전유물발굴단의 황모 대령은 하사 1명은 경남 통영시 한산면 문어포 앞바다까지 고무보트를 타고가 가짜 유물을 빠트린다. 그리고 8일뒤 다시 건져 올려 '한 발을 쏘면 반드시 적선을 수장시킨다(龜艦黃字 驚敵船 一射敵船 必水葬)'는 글이 새겨진 '만력 병신년(1596년ㆍ선조 29년) 6월 제작해서 올린 별황자총통'(萬曆丙申六月日造上 別黃字銃筒)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총통을 인양했다.


당시 세상은 떠들석 했다. 16세기말 화포가 그대로 살아 돌아온 셈이었기 때문이다. 이 거북선 총통은 '귀함별황재총통'이라는 이름으로 국보 274호의 번호를 얻었다. 이 공로로 발굴단장인 황대령은 보국훈장 삼일장을 받았다.


하지만 꼬리는 잡혔다. 수사결과 황대령은 해군유물발굴단이 해체된다는 압박감에 골동품업자이자 철물전문가인 신모씨를 만나 가짜 총통을 들었다. 제작비용은 500만원으로 명문을 새겨넣고 1년간 화공약품을 부어 강제 부식시켰다. 해군 발굴단장인 황대령은 골동품업자이자 철물업자인 신씨가 만든 가짜 명문총통을 받아 해사박물관장이 지정한 한산대첩 해역에 던져놓고 며칠 뒤 인양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으로 해군의 해전유물발굴단을 해체됐다. 이후 해저유물탐사단을 한시적으로 1998년 10월 2004년 12월까지 2번운용한 적이 있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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