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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美 vs 이란… 반세기 넘게 이어온 뿌리깊은 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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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세계일보 자료사진


미국과 이란 사이 충돌 수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최근 몇가지 계기로 촉발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양국 사이 감정의 골은 반세기 넘게 이어온 악연을 바탕으로해 뿌리가 깊다.

시작은 195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란의 정권을 잡고 있던 모하메드 모사데크 총리는 정치가이자 민족주의 지도자였다. 석유 국유화와 근대화 등을 단행하며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1951년 타임지는 그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기도 했다.

자유민주주의 서방국가들은 이런 이란의 태도가 눈엣가시로 보였다. 이란의 ‘반외세’, ‘민족주의’를 상징한 모사데크 총리와 석유 관련 협상에 실패한 영국은 이란산 석유 보이콧 운동을 주도한다. 그러면서 미국 정부에 이란의 공산주의화를 명목으로 모사데크 축출 작전을 제안한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1953년 4월 ‘반모사데크 선동’을 퍼뜨리기 시작, 그해 8월 팔레비 국왕이 모사데크를 해임하고 미국이 선정한 자헤디 장군을 새 총리로 추대하는 쿠데타에 성공한다. 이후 이란은 1961년 백색혁명 등 토지개혁, 국영기업해체 등 자본주의 체계로 전환이 시도되는 가운데 26년간 친미 절대 왕조가 자리잡게 된다.

1979년 2월 이란에서는 국민 영웅이자 시아파 무슬림 사이에서 영적 지도자로 불리는 이슬람 혁명 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귀국한다. 20세기의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로 뽑히는 그는 왕정을 타도하고 ‘신의 정부’를 세운다. 그는 자신에게 엄격한 것은 물론 율법과 교리에 반하는 행동을 금지하고 측근들의 비리에도 냉혹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후 1989년 6월3일 사망할때까지 이란의 최고 지도자로 군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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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친미 왕정 지도부에 반감을 갖던 이란 국민들의 반미 감정은 호메이니 정부에 들어 폭발하기 시작했다. 호메이니 정부는 1979년 1월 망명한 팔레비 왕가 처벌을 위해 미국에 소환 요청을 했지만 거절당한다. 이후 11월4일 테헤란에서 팔레비 신병 인도를 요구하던 호메이니 지지 학생 시위대가 미 대사관에 난입, 점거하고 70여명의 외교관을 인질로 잡는다. 미국은 이란산 원유 수입 금지, 재이란 자산 동결 등 각종 제재를 가하고 1980년 4월 특공대를 투입해 구출작전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미 대사관 점거는 444일이나 계속됐다.

이란과 미국의 충돌은 1988년 다시 한 번 극에 달한다. 그해 7월3일 호르무즈 해협 상공에서 이란 항공 655편(에어버스 A300)이 미국 해군 함정의 요격으로 격추되어 탑승객 290명 전원이 숨졌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지난 6일 “숫자 ‘52’를 언급하는 자들은 IR655편의 숫자 ‘290’도 기억해야 한다. 이란을 절대 협박하지 말라”고 한 그 숫자 ‘290’이 얽힌 사건이다. 당시 미국은 이란 공군의 F-14로 판단해 공격했다고 주장했고 국내는 물론 국제 사회에 큰 논란을 빚었다. 이후 1996년 양국은 국제사법재판소에서 미국 정부가 유가족들에게 6180만달러의 보상금을 지급하면서 합의에 이른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2002년 1월 “테러를 지원하는 정권”을 언급하며 이란, 이라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지목 ‘악의 축’(Axis of evil)이라고 선언한다. 그러면서 이들 국가에 대해 군사력 행사를 포함한 해당 국가의 정권 교체를 추구하는 강경 정책을 이끈다.

이런 가운데 그해 8월 이란의 반정부 단체가 핵무기 개발 의혹을 폭로하면서 이란의 핵개발 실체가 드러났다. 이란의 우라늄 농축시설이 외부에 알려졌고 이란 핵 프로그램을 둘러싼 의혹을 해결하기 위한 긴 협상이 시작됐다. 하지만 이란에 허용 가능한 원심분리기의 수와 농축 범위 등에 대한 이견으로 어려움을 거듭,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총 여섯 번에 걸쳐 이란을 제재하는 등 갈등이 지속됐다.

2015년 4월 스위스 로잔에서 이란과 미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 영국 등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그리고 독일 등이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에 잠정 합의했고 7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완전 타결을 발표한다. 오바마 정부가 이란이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경제제재를 해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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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16년 들어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당선 전부터 이란 핵합의에 지속적으로 불만을 표출해왔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0월 새로운 대이란 정책을 발표, 2018년 5월8일 이란 핵협정 탈퇴를 선언했다. 이후 대이란 경제제재를 펼치며 이란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간다.

지난해 5월부터 양국의 갈등은 다시 불붙는다. 미국이 이란의 위협을 명분으로 항공모함 편대를 걸프 해역에 조기 배치한 뒤 이란 핵합의 감축 시작한 것이다. 이후 유조선 피격(5, 6월), 미군 무인기 피격(6월), 이란 유조선 억류(7월), 영국 유조선 이란에 억류(7월), 사우디아라비아 핵심 석유시설 피격(9월) 등 양측의 긴장감은 높아져만 갔다.

12월27일 이라크 키르쿠크 미군 주둔 기지에 로켓포 공격으로 미국인 1명이 숨졌다. 이 사건은 현재 이어지고 있는 양측의 공방의 도화선이 됐다. 미국은 이란 혁명수비대가 지원하는 시아파 민병대를 지목, 이틀 뒤 군사시설 5곳을 전투기로 폭격해 25명이 사망했다. 시아파 민병대와 추종세력은 12월31일과 1월1일 바그다드 주재 미 대사관을 급습하며 맞섰고 미국은 지난 3일 거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바그다드 공항에서 폭격해 살해했다.

이란은 5일 핵합의 파기 선언과 함께 솔레이마니의 복수를 다짐한다. 그리고 8일 작전명 ‘솔레이마니 순교’로 이란은 이라크내 미군기지에 솔레이마니 폭사와 같은 시각 수십개의 미사일 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면서 미국에 추가 대응을 하지 말라며 엄포를 놨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과연 이를 묵과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앞선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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