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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0 (목)

유기농 음식처럼 담백했던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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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리뷰] 카바코스&서울시향

베토벤이 서른여섯에 딱 하나 완성한 바이올린 협주곡은 형식과 구성 면에서 바늘 한 땀 끼어들 틈 없을 만큼 완벽성을 자랑한다. 그래서 올해 서울시향 첫 정기연주회는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어서가 아니라, 바이올리니스트의 기교와 음악성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이 협주곡을 그리스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53)가 함께했기 때문이다. 열여덟 살이던 1985년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음악계에 뛰어든 카바코스는 3년 뒤 나움버그 콩쿠르와 파가니니 콩쿠르에서도 우승하며 스물한 살에 이미 대가로 올라선 연주자. 히피처럼 자유로움이 묻어나는 겉모습과 달리, 평소 연주는 개성을 과시하기보단 악보 자체를 파고드는 학구파 스타일이어서 다소 밋밋하다 싶을 만큼 절제되고 섬세한 편이다. 호불호가 갈리는 이유다.

조선일보

지난 9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왼쪽)가 티에리 피셔(오른쪽)가 지휘하는 서울시향과 함께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고 있다. /서울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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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난 9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카바코스의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은 전석 매진이었다. 보통 서곡→협주곡(중간 휴식)→교향곡 순으로 흐르는 음악회 전례를 깨고 첫 순서를 45분짜리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만으로 채웠는데, 독무대가 따로 없었다.

정확한 왼손 운지와 깔끔한 오른손 활놀림은 군살 하나 없는 맑고 깨끗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덕분에 베토벤 최고 걸작 중 하나인 교향곡 5번 '운명'을 작곡하기 시작할 즈음 만들어진 이 협주곡의 탄탄한 골격을 사골처럼 뽀얗게 우려냈다.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2015년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는 "신선한 재료에 천연의 양념을 최소한으로 곁들인 유기농 음식 같았다. 품격 있는 베토벤이었다"고 평했다.

1악장 중간 카바코스가 직접 작곡한 카덴차를 연주할 땐 활로 현을 힘 있게 내려치면서 손끝에 속속들이 맺힌 기교를 마음껏 뽐냈다. 페르시아 대군을 맞아 치열하게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처럼 "평생 전사처럼 살았다"는 그에게 음악과 바이올린은 '전쟁터'였다. 음악가로서 삶이 너무 힘들어 바이올린에서 세 번 도망쳐봤던 자신의 지난날과, 겉으론 완벽해 보여도 초고부터 완고까지 갈등하고 싸우며 고친 흔적이 가득한 베토벤의 음악을 5분짜리 카덴차에 압축한 흔적이 엿보여 뭉클했다.

다만 수석 객원지휘자인 티에리 피셔(63)의 뒷받침이 아쉬웠다. 독주 바이올린이 기둥을 굵게 박으며 툭툭 치고 나갈 때 오케스트라는 다양한 악기로 선율을 화사하게 꾸며줘야 하는데 절제미가 앞섰다. 아무리 좋게 봐도 반주, 딱 그 정도였다.

[김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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