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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천년 전 불국사엔 무지개가 활짝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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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무너져가는 불국사. 일제강점기 보수전 불국사의 모습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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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의 자취-23] 임진왜란이 발발한 이듬해인 1593년(선조 26) 5월. 경주 불국사를 찾아온 왜적 수십 명은 절의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잃어버린다. 감탄을 쏟아내며 이곳저곳 둘러보던 그들은 뜻밖에도 절 내 한구석에서 무기를 발견한다. 경상좌병사가 지장전(지장보살을 안치한 건물) 벽 사이에 숨겨놓은 활과 칼 등을 찾아냈던 것이다.

돌연 이성을 잃은 왜군은 고색창연한 불국사를 불태우는 만행을 저지른다. 독실한 불교국가였고 전사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전쟁터에 승려까지 대동하고 다녔던 일본으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근처 장수사로 피란 가 있던 담화대사가 이 소식을 듣고 황급히 달려왔지만, 화마는 대웅전, 극락전 자하문을 제외한 2000여 칸의 건물 모두 삼켜버렸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경주 불국사에 안 가본 사람이 있을까. 불국사는 전 국민의 수학여행지이자 경주를 넘어 우리나라 제일의 명소이다. 토함산 서쪽 기슭에 위치한 불국사는 "불국정토(淨土)를 속세에 건설하겠다"는 통일신라인들의 야심 찬 꿈이 드러나 있는 절이다. 신라의 무수한 사찰 가운데 치밀한 구성과 미적 완성도가 가장 뛰어난 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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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보수된 불국사를 둘러보러온 일본 귀족 일행.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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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문헌에 신라 불교가 공인되던 해인 법흥왕 15(528)에 창건되고 경덕왕대에 김대성에 의해 중창됐다고 적혀 있다. 그렇지만 학계는 이는 윤색된 것으로 사료적 가치가 떨어지고 삼국유사 '사중기(寺中記)'의 기록이 가장 믿을 만하다고 판단한다.

사중기는 "경덕왕 때의 재상 김대성이 751년 불국사와 석굴사(석굴암)를 창건하기 시작했고 774년 세상을 떠나자 국가에서 이를 맡아서 완성시켰다"고 기술하고 있다. 공사를 시작한 것은 751년(경덕왕 10)이라고 명시돼 있지만 준공 시기는 제대로 밝혀진 바 없다. 그런데 조선후기 문신 이종상(1799~1870)의 시 '등불국범영루(登佛國泛影樓)'에 "(불국사) 스님은 39년에 완성했다 하네"라는 구절이 보인다. 이 시를 썼던 19세기엔 불국사에 39년 만에 완공됐다는 설이 있었던 것이다. 비록 후대의 기록이지만 불국사가 39년 만인 원성왕 6년(790)에 완성됐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불국사와 석굴사 창건은 통일 후 100년이 지나 신라의 정치, 경제, 종교, 문화 등 모든 조건이 성숙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국가적 배려와 경제적 뒷받침은 말할 것도 없고 종교적 신앙심과 간절함, 예술적 영감과 창조적 열정, 장인들의 뛰어난 솜씨와 수많은 사람의 땀과 노력이 한데 모여 걸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불국사 목표는 불교적 유토피아인 불국을 지상에 구현하는 데 있다. 인간이 살고 있는 사바세계는 욕심으로 오염된 땅이고 그러기에 근심이 많고 고통도 많다. 부처가 건설한 불국토는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약속의 땅, 피안의 땅이며, 근심 걱정이 없는 깨끗한 나라, 즉 정토(淨土)이다. 불국사는 사바세계에 우뚝 솟은 불국의 세계를 상징한다. 불국사는 높은 석축과 석단 위에 세워졌는데 석단 아래는 사바세계, 그 위는 불국정토를 뜻한다. 특히 석단 아래에는 현실세계를 의미하는 연못을 만들어 이상세계와의 구분을 더욱 명확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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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는 통일신라인들이 지상에 부처의 세상인 불국정토를 건설하기 위해 지은 절이다. /사진=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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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는 여러 종류의 부처가 존재하듯, 각각의 부처가 사는 세계도 다양하다. 석가모니 부처는 영취산(고대 인도의 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했다. 설법하던 장소를 특별히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고 하며 이는 석가모니 부처가 중생을 교화한 사바세계 불국이다. 중생들에게 무한한 수명과 극락왕생의 길을 제시하는 아미타불은 서방의 극락세계를, 비로자나불은 연화장 세계를 주관하는 부처이다. 통일신라는 화엄사상이 크게 유행해 비로자나 부처를 숭배했다. 화엄은 부처가 깨달음을 얻었을 때 봤다는 연꽃 속의 웅장한 세계, 즉 연화장(불교적 이상세계 중 하나)에서 유래했다. 온갖 꽃(부처의 공덕)으로 장엄한 연화장의 세계가 곧 화엄인 것이다.

불국사의 영역은 크게 대웅전, 극락전, 비로전 등 3개 영역으로 나눈다. 대웅전은 법화경에 근거한 석가모니 부처의 사바세계 불국을, 극락전은 아미타경 또는 무량수경에 근거한 아미타 부처의 극락세계를, 비로전은 화엄경에 근거한 비로자나 부처의 연화장 세계를 상징한다. 결국 불국사에는 서로 다른 3가지의 부처가 존재하는 것이다.

지금은 동쪽으로 난 통로로 불국사로 들어가지만 과거 불국으로 들어가는 길은 두 곳으로 나 있었다. 동쪽의 백운·청운교(국보 제23호) 두 다리를 건너 대웅전 앞의 자하문을 향해가는 길과 서쪽의 연화·칠보교(국보 제22호) 두 다리를 건너 안양문을 통과해 극락전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백운·청운교는 백운교 18계단, 청운교 16계단 등 34계단으로 돼 있다. 계단이지만 다리 형식의 특이한 구조이다. 다리 아래쪽으로 돌로 만든 연못(석조)이 있었다고 여러 문헌들이 전한다. 지금도 계단 왼쪽에 물이 낙하하는 장치 흔적이 존재한다. 물이 떨어져 물보라가 일면서 무지개가 피어났다고 한다. 8세기 후반 통일신라 당시의 다리로서 유일하게 완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것이며 다리 아래 무지개 모양은 우리나라 석교나 성문 등 반원아치 홍예교의 출발점을 보여줘 매우 귀중한 유물로 인식된다.

청운·백운교가 웅장한 멋을 보여준다면 연화·칠보교는 섬세한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연화교 10계단, 칠보교 8계단 등 총 18계단이다. 연화·칠보교는 인간의 수명과 관련된 아미타불이 모셔진 극락전으로 들어가는 문인 만큼 당대 사람들이 이곳을 오르내리며 극락왕생을 기원했다. 49대 헌강왕(875~886)이 죽자 비구니가 된 헌강왕비도 이곳에서 남편의 극락왕생을 빌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불탄 불국사를 새로 짓기 시작한 것은 10여 년의 세월이 지난 1604년(선조 37)부터였다. 이후 19세기에 이르기까지 복구와 중수의 불사가 수도 없이 반복된다. 1740년(영조 16) 승려 활암이 쓴 '불국사고금창기(古今創記)'에 의하면 대웅전 1659년 중수·1765년 중창, 자하문 1630년 중수·1781년 중창, 우경루 1612년 중창·1715년 중수, 좌경루 1612년 중창·1690년 중수, 범종각 1612년 중창·1688년 중수·1781년 중창, 무설전 1648년 중건·1708년 수리, 비로전 1660년 중건, 관음전 1604년 중창·1696년 중수, 문수전 1628년 중건·1674년 중수, 극락전 1750년 중수·1800년대 중창, 안양문 1626년 중창·1737년 중수 등이 이뤄졌다.

어느 문화재인들 그렇지 않겠냐마는 겨레가 자랑하는 불국사 역시 국권상실의 혼란기 속에 폐허로 변한다. 석단과 계단이 무너지고 주저앉았으며 경내는 잡목과 잡초에 뒤덮였던 것이다. 총독부는 1923~1936년에 정비에 나서지만 수리 이전의 조사, 연구가 불충분했고 석단과 회랑지 등에 많은 변형이 초래됐다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광복 이후 박정희 정권에서 또다시 복원공사를 실시한다. 공사는 1970년에서 1973년 6월까지 3년6개월간 진행됐다. 종전 대웅전, 극락전, 자하문, 안양문 등이 남아 있었는데 공사기간 무설전, 비로전, 관음전, 범영루, 좌경루, 일주문 등을 신축했고 석축과 계단을 크게 수리했다.

하지만 만족스럽지 못한 복원이었다. 백운·청운교 아래 있었던 연못이 제외된 것을 포함해 회랑이 답답하게 느껴지며 범영루와 좌경루가 길을 막고 있는 점, 자하문과 안양문의 지붕 양식이 서로 다른 점, 다보탑 쪽에 통로를 인위적으로 만든 점 등이 지금까지도 문제점으로 거론되고 있다.

불국사 전체는 사적 502호이며, 경내에 국보 제20호 다보탑, 국보 제21호 석가탑, 국보 제22호 연화·칠보교, 국보 제23호 청운·백운교, 국보 제26호 금동비로자나불좌상, 국보 제27호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이 있다. 석가탑에서 수습된 국보 제126호 석가탑 사리장엄구는 서울 종로구 불교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1300년 전, 백운·청운교 아래 연못 속에서 아롱지는 불국 세계의 휘황한 누각과 탑은 고통받는 현세의 중생들에게 마치 꿈결처럼 구원의 손짓을 보내는 듯했을 것이다.

[배한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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