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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현장에서] 준법경영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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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처음 준법감시위원회 제안을 받고 거절했습니다. 진정성에 대한 의심,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9일 김지형 변호사(전 대법관)는 삼성전자 준법감시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에서 덤덤하게 발표문을 읽어 내려갔다. 김 변호사는 위원장 제안을 받고 난 뒤 들었던 고민들에 대해 털어놨다. 총수 형사 재판에서 유리한 양형사유로 삼기위한 면피용이 아닐까 의심스러웠고, 그동안 실패해온 것처럼 혁신적 개선 조치를 이루지 못하면 어찌할 것인가 걱정스러웠다고 털어놨다.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그동안 대기업의 준법경영은 수사(修辭)에 그쳤었다. 투명경영, 책임경영, 착한경영…. 아름다운 말들은 총수가 비리나 횡령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을 때 잠깐 나왔다 사라지기 일쑤였다. 반응도 냉소적이었다. 법을 지키는 일은 시민의 의무인데 기업이 준법 경영을 하겠다고 하면 과연 응원해야 하는가. 준법 경영이 화두로 오르는 것 자체가 그만큼 법을 어기는 기업이 많다는 방증이 아닌가. 법은 오히려 대기업에 특혜가 되어갔고, 반(反)기업정서는 갈수록 커져만 갔다.

하지만 준법 경영은 분명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장기적으로 기업에게 이로울 뿐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똑똑한 소비자들은 기업이 말로만 착한경영을 외치는지, 그렇지 않은지 살펴볼 준비가 되어 있다. 마케팅의 대가 필립 코틀러는 “이제는 제대로 된 영혼을 가진 기업,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 기업 관계자와 공생하는 기업이 성공한다”고 강변한다. ‘착한 일 ’은 이제 기업의 생존과 번영의 필수조건이라는 의미다.

삼성전자의 준법감시위원회 위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인용 사회공헌업무총괄 고문(현 CR 담당 사장)을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대기업 지배구조 등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인사가 많다. 희망적이다. 위원회가 감시 분야의 성역을 두지 않겠다고 공언한 점도 눈길을 끈다. 김 위원장은 “법 위반 위험이 있는 대외 후원이나 계열사나 특수관계인 사이의 내부거래 등 공정거래 분야나 부정청탁 등에 그치지 않고 노조문제나 승계문제에도 감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필요할 경우에는 계열사 법 위반 사안을 직접 조사하고 최고 경영진의 법 위반 행위를 직접 신고받는 시스템을 만들기로 했다. 이례적인 일이다.

관건은 ‘자율성과 독립성’에 있다. 김 위원장은 위원장 수락에 앞서 ‘위원회의 구성부터 운영까지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해달라’는 조건을 제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위원회가 계열사 내부 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워 준법 사항에 대해 조언을 하는 정도로만 그칠 것이라는 우려 또한 상존한다.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지난 4차 파기환송심에서 재판부가 “삼성 준법감시위 실효성을 점검하라”고 지시하면서 그 진정성에 대한 의심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결국은 삼성의 강력한 의지에 달렸다. 이 부회장은 “잘못된 관행과 사고는 과감히 폐기하고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 나가자”고 당부한 바 있다. 이번 준법감시위원회가 삼성의 새로운 혁신을 위한 중요한 발판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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