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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종로경찰서 투탄 김상옥 의사 독립운동 97주년 기념식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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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 22일 백범김구기념관 컨벤션홀서 진행

홀로 일제경찰 400명과 3시간 반 동안 교전한 영웅

뉴시스

【서울=뉴시스】김상옥 의사의 모습. 2019.09.14. (사진=조선의열단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김성진 기자 = 일제강점기 의열단원으로 활동하며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고 일본 경찰과 교전을 벌인 김상옥(金相玉) 의사의 항일독립운동 기념식이 열린다.

국가보훈처는 오는 22일 오후 3시 ㈔김상옥의사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 컨벤션홀에서 김상옥 의사 항일독립운동 제97주년 기념식을 개최한다고 21일 밝혔다.

기념식은 김상출 서울북부 보훈지청장과 유족, 독립운동 관련 단체장 및 회원, 시민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의례, 기념사업회장 이·취임식, 김상옥 의사 소개 영상 상영, 기념사, 유족인사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김상옥 의사는 1890년 1월5일 서울에서 태어나 20세에 동흥야학교(東興夜學校)를 설립하는 등 사회계몽·민족교육에 헌신했다.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윤익중(尹益重), 신화수(申華秀), 정설교(鄭卨敎) 등 동지들과 함께 비밀결사조직인 혁신단(革新團)을 조직하고 기관지 혁신공보(革新公報)를 발행해 독립정신을 고취했다.

1920년 봄에는 만주에서 들어온 군정서원(軍政署員) 김동순(金東淳)과 만나 암살단을 조직해 일제 주요기관을 파괴하고 요인을 암살하는 등 의열투쟁을 통한 독립운동을 전개해 나갈 것을 계획했다.

의사는 일제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1920년 10월에 상하이로 망명해 김구·이시영·조소앙 등 임시정부 요인, 의열단장 김원봉과 교류하면서 의열단에 가입했고 조국 독립을 위한 의열투쟁 의지를 키웠다.

1922년 겨울, 의열단원으로 폭탄·권총·실탄 등의 무기를 휴대하고 안홍한(安弘翰), 오복영(吳福泳) 등과 함께 서울에 잠입해 거사 기회를 노리다가 이듬해인 1923년 1월12일 밤 일제 식민통치의 근간인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해 여러 명을 부상시켰다.

이후 1월22일 새벽, 의사는 최후 은신처가 탐지되자 단신으로 두 손에 권총을 쥐고 효제동 일대를 겹겹이 포위한 400여 명의 일본경찰과 3시간 반 동안 총격전을 벌였다.

의사는 효제동 전투에서 구리다 경부를 비롯한 10여 명을 살상했고 최후의 항전을 하다 탄환이 다하자 결국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마지막 남은 탄환 한 발을 자신의 머리에 쏘아 자결했다.

당시 일제는 무장경찰 400여 명을 풀었으며 김상옥 의사 단 1명을 상대로 선발대, 형사대, 기미대, 자동차대 등 엄청난 병력을 동원했다.

정부에서는 의사의 공훈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ksj8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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