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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항일 비행사 양성' 노백린 장군 순국 94주기 추모식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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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처,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진행

임시정부 국무총리 추대…독립운동 이끌어

뉴시스

[서울=뉴시스]박주성 기자 = 지난해 1월21일 오전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계원 노백린 장군 93주기 추모식에서 유족들이 헌화 및 분향을 하고 있다. 노 장군은 1922년 6월 임시정부 이승만 대통령의 지명으로 국무총리 서리에, 1923년 1월 정식 국무총리로 추대됐다. 1926년 1월22일 중국 상하이에서 병으로 순국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2019.01.21. park769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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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김성진 기자 =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무총장과 국무총리를 지내며 독립운동에 헌신한 노백린 장군의 추모식이 열린다.

국가보훈처는 오는 22일 오전 11시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계원 노백린 장군의 순국 제94주기 추모식을 개최한다고 21일 밝혔다.

계원 노백린 장군은 1875년 1월10일 황해도 송화에서 태어나 한문을 배우다가 1895년에 관비(官費) 유학생으로 선발돼 일본으로 유학했다.

1899년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1900년에 귀국해 육군 참위로 임관했고 한국무관학교 교관이 돼 후진 양성에 전념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1907년 군대가 해산되자 안창호, 이갑, 이동녕, 신채호 등과 신민회를 조직하고 만주에 독립운동 전초기지를 건설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또 고향 송화에 민립학교 광무학당을 설립하며 구국교육운동을 했다.

1910년 일제에 의해 국권이 침탈되자 미국으로 망명해 박용만 등과 하와이 오아후 가할루 지방에서 국민군단(國民軍團)을 창설해 김성옥, 허용과 함께 별동대 주임으로서 300여 명의 독립군을 양성하는 등 구국운동에 전념했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군무부 총장으로 임명돼 파리강화회의 대표로 선발되기도 했다.

그 뒤 제2대 군무총장으로 선임돼 미국에 머물면서 1920년 2월20일 캘리포니아주 윌로우스에서 교포인 김종림(金宗林)의 적극적인 재정 지원으로 비행사양성소를 설립해 1923년까지 77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1922년 6월 임시정부 이승만 대통령의 지명으로 국무총리 서리에, 1923년 1월에 정식 국무총리로 추대됐다. 1925년 3월에는 박은식 대통령의 지명으로 국무총리에 임명됐고 교통과 군무총장직을 겸직하면서 임시정부를 이끌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노심초사하던 장군은 상하이에서 병을 얻어 1926년 1월22일 순국했다.

정부에서는 장군의 공훈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ksj8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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