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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총성의 그곳서 딸 낳으며 학살 영상 담았다…피로 쓴 다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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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23일 한국 개봉 장편 다큐멘터리

4년 반 알레포 포위 현장서 촬영

그곳에서 사랑·출산·육아 다 겪어

딸인 사마 위해 버티는 부모 모습

여성 시각의 독재·전쟁 참극 생생

가족·이웃·고향 사랑부터 참극까지

병원에 온 희생자·가족 비극 공유

독재정권, 살상무기로 민간인 유린

러시아·이란, 내전서 독재정권 도와

난민 되고 싶은 사람 없다는 점 확인

‘사마에게’는 비극의 기록 유산이다. ‘21세기 인류 최악의 분쟁’으로 불리는 시리아 내전을 내부에서 관찰하고 영상에 담아 만든 극장 상영용 장편 다큐멘터리다. 2019년 완성된 이 영화에 담긴 모든 내용은 픽션이 아니라 100% 실화다. 그래서 진실은 어떤 가공보다 강하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 지난해 칸 영화제 최우수 다큐멘타리 상을 비롯한 60개가 넘는 영화상을 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중앙일보

시리아 내전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사마에게'의 포스터 사진. .파괴된 동알레포의 모습을 배경으로 전쟁터에서 낳아 기른 딸 사마를 와드 알카텝 감독이 안고 있다. [사진 엣나인 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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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인류 최악의 비극, 시리아 내전



2011년 3월 시작한 시리아 내전은 지금까지 시리아 인권감시센터 집계로 38만636~58만5000명의 사망자를 냈으며, 760만 명이 살던 곳을 강제로 떠나야 했고, 511만 명이 난민이 됐다. 이 다큐멘터리는 내전이라는 비극을 이렇게 통계를 통해 머리로 정리하는 대신 생생한 현장의 화면과 음향으로 가슴으로 느끼게 해준다. 이 때문에 장면 하나하나에 놀라지 않을 수 없으며, 눈물샘을 포함한 전신의 감각세포가 전율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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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습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지휘하는 시리아 정부군과 러시아군의 민간인 폭격으로 불타고 있는 동알레포의 모습. '사마에게'를 만든 와드 알카텝 감독이 직접 촬영한 장면이다. [사진 엣나인 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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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위된 알레포, 시리아의 스탈린그라드가 되다



배경은 가혹한 전투와 비인도적인 민간인 봉쇄로 ‘시리아의 스탈린그라드’로 불리던 서북부 대도시 알레포(아랍어 할랍). 시기는 ‘동알레포 포위전’이 진행되던 2012~2016년 4년 반. 감독은 바로 그 시기 그 도시에 머물렀다. 그동안 카메라로 기록한 내용을 영국에서 영국인 에드워드 와츠와 함께 장면 다큐멘터리로 풀어냈다.

놀라운 점은 영상 기록자인 감독이 알레포 포위전 현장에서 사랑하고 출산해 딸을 키운 엄마라는 사실이다. 피비린내 나는 내전의 현장을 여성의 시각으로 가족과 인간적인 문제를 충실하게 다뤘다. 다큐멘터리의 중심 인물은 와드 알카텝(알카텝은 가족 보호를 위한 가명) 감독과 딸 사마(하늘이라는 뜻), 그리고 남편인 의사 함자다. 와드는 자신의 목소리로 모든 상황을 증언한다. 증언은 아이조차 마음 놓고 울 수조차 없을 정도로 쓰라린 회상으로 점철됐다. 내전의 참상은 너무도 고통스러웠지만 이를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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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내전 다큐멘터리 사마에게 의 한 장면.사마의 아빠인 딸을 안고 함자가 병원 직원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함자는 포위된 도시에서 빠져나가지 않고 마지막까지 버틴 의사의 하나였다. [사진 엣나인 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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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솔레이마니가 시리아 독재자 도운 현장



구약성서 시절에도 존재했던 유서 깊은 도시 알레포는 시리아의 ‘스탈린그라드’로 불리며 시리아 내전의 가장 처절한 현장이 됐다. 2012~16년 알레포 서부를 차지한 정부군, 시민으로 이뤄진 반정부군이 버티는 동부를 포위, 공격했다. 독재자인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정부군은 이란 혁명수비대 소속 쿠드스군, 러시아군,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정파인 헤즈볼라에 아프가니스탄 시아파 민병대까지 그러모았다. 이 전투에서 독재자 알아사드 편에서 시민군을 공격했던 이란의 쿠드스군의 사령관이 지난 3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미군의 드론에 사망한 거셈 솔레이마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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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드 알카텝 감독이 알레포를 촬영하는 장면.와드에게 비디오 촬영은 국민을 학살하는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의 한 형태였다. [사진 엣나인 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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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운동 무력진압이 내전으로 이어져



알레포가 전쟁터가 된 이유는 국민의 민주화 요구를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독재정권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와드의 회상은 2012년 5월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알레포 대학으로 되돌아간다. 와드가 회상하는 당시는 민주주의 ‘혁명’의 열기로 가득했다. 학생들은 아랍어로 자유를 뜻하는 ‘아자디’를 벽에 아랍문자와 로마자로 적으면서 혁명에 열광했다. 그들은 세습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주의를 이룰 꿈에 부풀었다.

알레포 대학에서 마케팅을 공부하던 대학생 와드는 2011년 3월에 터진 ‘아랍의 봄’ 당시 독재에 항거하는 ‘혁명’에 동참했다. 학생들과 시민들은 독재정권에 민주주의와 인권을 요구했다.

와드는 그러면서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동료와 시민을 촬영했다. 저항의 한 형태였다. 하지만 독재 정권은 집요하고 잔혹했다. 그들은 권력을 지키기 위해 국민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이 다큐멘터리의 배경이 되는 시리아 내전은 이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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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내전 다큐멘터리 사마에게 의 한 장면. [사진 엣나인 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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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 현장 찍고, 포위 도시 내부 영상에 담아



다큐멘터리는 강물에 떠내려 온 학살 피해자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1871년 파리 코뮌, 1980년 광주가 연상되는 장면이다. 비디오는 가장 충실한 역사의 증인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와드는 비디오 저널리스트가 됐다.

와드는 시리아 내전 중에서도 가장 참혹했던 2012~2016년의 ‘동알레포 포위전’의 현장에 남아 비극을 카메라에 담아 영국 채널4에 전송했다. 내전 전 인구가 460만에 이르렀던 시리아 서남부 대도시 알레포는 이 기간 중 서부는 독재자 알아사드를 추종하는 정부군이, 동부는 반군으로 불리는 시민군이 장악했다. 압도적인 군사력의 알아사드 정부군은 동알레포를 5년 가까이 포위 공격하며 시민들을 살상하며 항복을 압박했다. 와드는 이 장면을 생생하게 촬영해 전 세계에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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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내정 기록한 다큐멘터리 '사마에게'의 한 장면. 와드 알카텝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을 적은 종이를 딸 사마가 들고 있다. '여기는 알레포. 무엇이 정의냐'. [사진 엣나인 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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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 살상무기가 민간인 마구 공격하는 현장



이 다큐멘터리가 특별한 여러 이유 중 하나가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살상무기다. 대도시에서 이를 사용하는 현장을 아주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거대한 도시가 벽돌과 콘크리트 잔해로 변한 것은 안타깝지만, 인명 피해에 비하면 약과다. 인명 피해는 주로 러시아의 전투기와 헬기, 알아사드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군의 전차에서 비롯한다. 인류가 만든 잔인한 무기가 차례로 등장해 가공할 살상을 실행한다. 수호이 Su-24 공격기가 확산탄을 떨어뜨려 거리 하나를 줄줄이 파괴하는 장면은 관객을 전율하게 한다. 집속탄·클러스터탄으로도 부르는 확산탄은 하나의 폭탄이 지상에 닿기 전에 수백 개의 자탄(子彈)으로 분리되고 ‘강철비’처럼 흩뿌려져 넓은 범위를 초토화하는 살상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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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알레포의 병원. 알레포를 떠나지 않고 병원을 지킨 의료진은 매일 죽음을 마주했지만 자신들이 폭격으로 목숨을 잃을 위험도 각오하고 일해야 했다.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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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는 통폭탄을 조용히 떨어뜨린다. 통폭탄은 드럼통 안에 폭탄과 인화물질, 그리고 못 등을 넣은 사제 무기인데 지연신관을 사용해 지상에 투하된 뒤 곧바로 터지지 않는다. 대신 사람들이 뭔가 싶어 다가올 무렵에 폭발해 대량 살상을 유발하는 비인륜적인 살상무기다. 호기심 많은 어린이·청소년이 주된 피해자라는 점에서 시리아 전쟁의 비인간성과 비극성을 대변하는 무기다. 제공권을 장악한 정부군이 주로 사용해 시리아 내전의 잔혹성을 상징하는 무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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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공군의 수호이 Su-34 전투기가 시리아에서 KAB-500S-E 유도폭탄을 투하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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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 소리만 듣고도 종류 아는 아이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이 도시에 사는 아이들이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고 그것이 어떤 무기인지를 알아차린다는 사실이다. 미처 10살도 안돼 보이는 소녀가 항공기에서 투하한 일반 폭탄이 터지는 소리인지, 확산탄이 도시의 거리 하나를 줄줄이 무너뜨리는 소리인지, 전차에서 발사한 포탄이 건물을 부수는 소리인지를 구분하는 장면은 전쟁의 희비극이었다. 확산탄이란 이름을 입에 담는 것부터 비극인데 말이다. 아이들은 사실 태어나서 전쟁밖에는 본 것이 없다.

생생한 음향은 비극을 더한다. 콩 볶는 듯한 AK-47 돌격소총 사격, 묵직한 기관포의 점사는 가슴을 무겁게 짓누른다. 2012년 7월 시작된 독재자 알아사드 군대의 동알레포 포위전은 시민군의 끈질긴 저항으로 이런 상황을 만들며 겪으면서 4년이 넘게 지속됐다. 와드는 이를 화연에 담으며 압제와 비인간적인 살상에 대한 강력한 저항 의지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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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임페리얼 전쟁박물관에 전시된 통폭탄의 복제품. 시리아 내전이 낳은 가장 비인도적인 무기로 꼽히는 통폭탄에는 폭탄과 함께 살상용 파편이 될 못과 나사 등 쇠붙이가 잔뜩 들어있다.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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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도 사치, 병원도 폭격 목표물



포위도시 알레포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것은 의사도 죽음 앞에 노출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병원이 폭격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와드에게 카메라가 저항이라면, 와드의 남편이자 의사인 함자에겐 포위 도시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것 자체가 저항이었다. 병원이 러시아군과 정부군 폭격의 우선 목표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짙은 ‘무기의 그늘’ 속에서 다치고 숨이 넘어가는 사람들이 목숨을 구하려고 병원으로 실려왔다. 와드의 남편 함자는 매일매일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의 죽음은 너무도 슬프다. 하지만 슬퍼할 겨를조차 없다. 슬픔조차 사치였다. 그 슬픔은 이 다큐멘터리를 보는 관객의 가슴에 고스란히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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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알레포의 2013년 모습. 폭격과 포격으로 도시가 별돌더비로 변했다.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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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이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과 전기마저 끊긴 도시에서 버티던 시민군은 국제 인도주의기구의 중재로 2016년 12월 22일까지 전원 이 도시를 떠나는 조건으로 목숨을 지킬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 버티다 알레포를 떠난 시민들은 국내 피란민에 돼 다른 지역을 떠돌거나, 국경을 넘어 레바논이나 터키, 또는 먼 나라로 떠나 난민이 되는 수밖에 없었다. 주인공 가족은 딸의 미래를 위해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알레포에서 마지막까지 버텼다. 하지만 환자롤 보살피고 촬영을 계속하다 결국 떠날 수밖에 없었다.

난민이 되고 싶은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었다. 그들에게도 사랑하는 고향이 있었다. 다만 엄청난 억압과 생명의 위협이 그들을 고향에서 어쩔 수 없이 떠나게 했을 뿐이다. ‘사마에게’는 이렇게 난민의 기원에 대한 진실을 밝힌다. 알레포 시민들의 입장에서 내재적 접근을 한 덕분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국제적십자위원회(ICRC)·유엔세계식량계획(WFP)·국제이주기구(IOM)·월드비전을 비롯한 국제인도주의 기구가 전 세계의 난민과 이주민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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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내전 다큐멘터리 '사마에게'의 등장하는 와드 감독의 딸 사마. 시리아 내전의 전쟁터에서 태어나 전쟁터에서 살다 난민이 됐다. 지금은 동생도 태어났다..[사진 엣나인 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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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딸에게 “미안하다 너를 낳아서”…



와드와 딸 사마, 그리고 남편 함자는 그렇게 난민이 돼 영국에서 살고 있다. 이 영화는 그곳에서 편집되고 제작돼 전 세계 영화관에서 상영되고 있다. 칸 영화제를 비롯한 60개가 넘는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사마에게’는 23일 한국에서 개봉한다.

내전의 한복판에서 출산해서 키우는 딸에게 “미안하다. 너를 낳아서”라고 말하는 엄마의 말이 가슴 속에서 메아리친다. 생명의 위협 속에서 엄마가 그 비극을 기록하고, 아빠가 병원에서 죽음과 맞서 싸운 것은 딸에게는 따뜻한 미래를 만들어 주려는 뜻에서라는 것을 사마는 이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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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내전을 다룬 극장용 장편 다큐멘터리 '사마에게'의포스터. [사진 엣나인 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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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하나. 이 영화에서 가장 초조한 장면은 제왕절개 수술 장면이다. 만삭의 임산부가 폭격에 심하게 다쳐 다급하게 병원에 실려 왔다. 의료진이 긴급하게 수술하는 장면이 ‘여과 없이’ 등장한다. 아이와 산모는 어떻게 됐을까.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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