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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오래 전 ‘이날’]2월15일 박근혜, 아베 그리고 김일성의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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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부터 2010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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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2월15일 박근혜, 아베 그리고 김일성의 공통점

국가의 최고권력자들은 여러 유혹을 받게 됩니다. 견제장치들이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정무적 판단’이란 미명하에 빠져나갈 여지는 많은데요. 그런데 그 지위에 가면 꼭 하고 싶은 게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역사를 내 입맛대로 고치는 것’ 입니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나 있었던 일이 아닙니다. 가깝게는 박근혜 정부 때 ‘국정교과서’ 파동이 있었죠. 넓게 보면 이웃나라 일본 아베 정권도 있습니다. 줄기차게 ‘역사 교과서 수정’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이러한 일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역사를 수정하고자 한 최고권력자들의 의도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습니다. 단지, 역사 속에서 이러한 행위를 한 똑같은 사람을 찾아 유추해 볼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히 30년 전 오늘, 경향신문에서 비슷한 인물을 찾아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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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제목은 ‘북한 다산학 혁명가서 관념론자로 격하’입니다. “다산 정약용은 북한에서 조선의 마르크스로 부각될뻔하다가 주체사상에 걸려 관념론적 복고주의자로 전락한 것으로 나타났다”로 기사는 시작합니다.

이어 “이 같은 사실은 김영수씨(당시 숙명여대 강사)가 최근 발표한 ‘북한의 다산 연구시각’이란 논문에서 밝혀진 것으로 북한의 역사와 정치학의 역학관계, 역사연구방향 등을 진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쉽게 말해 당시 북한의 최고권력자였던 김일성이 자신의 주체사상을 토대로 역사를 평가했다는 것입니다. 이 기준에서 생각해보니 정약용이라는 역사적 인물이 사실 ‘복고주의’를 표방하는 관념론자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죠.

뭐 그럴수도 있습니다. 학자들이 연구를 이어나가다 보면, 기존에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알게 되고 한 인물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역사적 인물을 교조화, 영웅화하는 것이 더 나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적어도 최고지도자의 입맛에 따라 평가가 달라져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기사를 이어보시죠. “김씨에 따르면 북한학계의 다산학 연구는 세 시기로 나누어지며 그때그때의 정치적 외풍에 의해 역사 기술방향이 크게 왜곡된 것으로 알려졌다”고 합니다.

기사에 따르면 제1기는 북한정권수립 이후 50년대말까지로 1952년 김일성은 ‘당의 조직적·사상적 강화는 우리 승리의 기초’라는 교시를 통해 정약용에 대한 재조명을 촉구했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북한에서 다산학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평가받는 최익한은 “다산은 유교개혁 사상가이며 진보적 유물론자로 여전제라는 토지국유화 정책을 지향했다는 점에서 반봉건 사상가다”라고 극찬했습니다.

1960년대 초반부터 1968년까지 제2기에도 이 기조는 이어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1969년 김일성이 ‘사회과학의 임무에 대하여’라는 교시를 발표하면서 정약용은 주체사상에 밀려 관념론자, 복고주의자로 전락했습니다. 이 시기가 제3기입니다.

당시 김일성은 “실학파와 그들의 주장을 주체적 입장에서 바르게 평가하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김일성이 북한의 역사학자들보다 정약용을 더 연구했던 것일까요? 김일성의 판단에 따라 역사적 인물의 평가가 하루아침에 뒤집혔습니다.

최고권력자 입맛에 따라 역사를 수정하는 행위. 이제보니 북한 지도자와 닮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사회는 계속 진보하고 있지만 인간의 인식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정치는 정치인이, 역사연구는 학자가. 이를 구분하는 것이 이리도 힘든 것 같습니다.

‘정무적 판단’을 무기로 경계를 침범하기 시작하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 역사, 경제, 외교 모두 최고권력자 생각에 따라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원칙을 세우지 않으면 견제할 방법은 사실상 없습니다.

최고권력자 스스로 자신의 권한을 제어하는 원칙을 세울 수 없다면 적어도 ‘정무적 판단’은 북한 지도자를 닮아가는 길이라는 점 만큼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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