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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7 (일)

    이슈 양승태와 '사법농단'

    [연합시론] '사법농단 피고인 판사' 재판 복귀는 사법불신 자초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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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연합뉴스) 대법원이 '사법농단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현직 판사들을 3월부터 재판 업무에 복귀시키기로 했다. 사법농단 관련 사건에 연루돼 '사법연구' 형식으로 재판에서 배제됐던 판사 8명 중 7명이 대상이다. 지방으로 이동할 예정이던 나머지 1명은 본인 희망에 따라 사법연구 기간이 연장된 것이어서 '재판 배제'라는 족쇄가 모두 풀린 셈이다. 대법원은 사법연구 기간이 이미 장기화하고 있는 데다 형사판결 확정까지 상당한 기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입장이지만, 사안의 심각성과 국민 정서를 무시한 부적절한 조처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지난해 3월 이들 판사를 재판에서 배제하면서 스스로 밝혔던 이유마저 부정하는 꼴이다. 대법원은 당시 "피고인으로 형사재판을 받게 되는 법관이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것 자체만으로 사법 신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한 걸 벌써 까맣게 잊었단 말인지 묻고 싶다.

    더구나 복귀 결정이 내려진 판사 7명 모두 재판이 한창 진행 중이다. 신광렬·성창호·조의연·임성근 부장판사는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항소심이 예정돼 있고, 이민걸·심상철·방창현 부장판사는 1심조차 끝나지 않았다. 사법연구 발령을 받을 때와 달라진 사정이 없는데도 서둘러 재판에 복귀시키려는 것이다. 더구나 1심 무죄 판결을 두고 일반 국민은 물론 법조계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는 상황이다. 재판 개입 혐의를 받는 임성근 부장판사 사건은 재판부조차 '위헌적 행위'를 했다고 인정하면서도 무죄를 선고한 사안이다. 판사가 연루된 사건의 구속영장 내용을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신광렬 부장판사 등 3명도 무죄를 받긴 했지만, 공무상 비밀누설 성립 여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란 비판이 거세지면서 사법농단 연루 판사들에 대한 탄핵 논의가 다시 점화할 조짐마저 보인다.

    이런 상황을 의식한 듯 대법원은 이번에 복귀하는 판사들에게 대면 재판을 맡기는 대신 서면심리, 조정총괄업무 등을 하도록 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미 추락한 사법 신뢰를 더욱 훼손하고 재판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킬 것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위헌적 행위를 하거나 영장 내용을 유출한 '피고인 판사'가 재판 업무에 관여하는 걸 수긍할 국민이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자신의 운명이 재판에 걸린 사건 당사자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대법원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조처를 철회하는 게 맞다. 또 '로비 창구'라는 비판을 받은 국회 파견 자문법관 자리를 폐지하기는커녕 오히려 평판사에서 부장판사로 격상한 것도 재고해야 마땅하다.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 과정에서는 모 국회의원이 2015년 국회 파견 판사를 의원실로 불러 지인 아들을 선처해달라고 부탁한 과거 폐해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최근 대법원 행태를 보면서 김명수 대법원장이 취임 때부터 강조한 사법개혁이 구두선에 그치고 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진다. 정치 권력과의 유착, 재판 개입 의혹 등이 잇따라 드러나 거센 개혁 요구에 부닥치자 일단 소나기를 피하고 보자는 심산이 아니었냐는 의심도 있다. 법원은 사법농단 연루 판사들의 징계 문제에도 전혀 의지가 없는 것 같다. 대법원은 지난해 5월 검찰로부터 현직 판사 66명에 대해 비위 통보를 받고도 시효가 지났다는 등 이유로 10명만 징계를 청구했을 뿐이고, 그마저도 아직 결론을 내지 않고 있다. 요즘 법원의 모습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한다'는 헌법 조항을 무색하게 한다. 재판과 법관의 독립을 스스로 무너뜨린 데 이어 '양심'마저 저버리려 하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김명수 대법원은 사법농단으로 몰락한 양승태 체제를 닮아가고 있진 않은지 진지하게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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