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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40년의 바다를 건너 다시 만난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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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먼 바다

공지영 지음/해냄·1만5800원

공지영(사진)의 경장편 소설 <먼 바다>는 40년의 세월을 건너뛴 첫사랑과의 재회를 다룬다. 각자 열일곱살 여고생과 열아홉살 신학교 학생으로 처음 만나 서로를 마음에 품었던 미호와 요셉이 헤어진 지 40년 뒤 미국 뉴욕에서 다시 만나는 이야기다.

대학 교수인 미호가 동료 교수들과 함께 미국 여행길에 나서는데, 그 김에 1년 전 우연히 페이스북으로 연락이 닿은 요셉과 만날 약속을 잡는다. 소설은 마이애미를 거쳐 뉴욕으로 온 미호가 요셉과 만나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와 40년 전 이야기가 갈마들며 이어진다.

“그와 내가 살아 있는 한 한 번쯤은 그와 거기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올까? 그러면 나는 묻게 될까? 그날 그게 무슨 뜻이었어요? 하고.”

40년 세월은 아릿했던 그리움을 무디게 퇴색시키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다만, 그리움은 스러졌어도 궁금증은 남았다. 자신이 요셉에게 까닭 없이 버림받았다 여겨 온 미호는 요셉을 다시 만나면 묻고 싶고 듣고 싶은 것이 있었다. 신학교를 그만두고 군에 다녀올 테니 3년을 기다려 달라던 요셉, 공원에서 기다리겠노라고 요셉의 어머니와 여동생에게 전했음에도 끝내 마지막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았던 그에게 해명과 사과의 말을 듣고 싶었다.

한겨레

40년 만에 뉴욕에서 다시 만나 하루 관광 안내원 역할을 자임한 요셉은 자연사 박물관 안에서 전시장을 찾아 가다가 길을 잘못 들고는 말한다. “미안해, 내가 길을 잘못 들었어. 분명 여기로 오는 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이 말은 어쩐지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져 살아야 했던 지난 40년 세월에 대한 회한 어린 사과처럼 들린다.

관광이 끝난 뒤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두 사람은 40년 전 기억의 조각들을 꺼내어 맞추어 본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같은 상황을 서로가 전혀 달리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왜곡된 기억과 오해, 불가피한 상황 등이 어우러져 자신들의 사랑을 방해했다는 사실도 함께.

두 사람이 해후하는 계절은 겨울에서 봄으로 건너가는 바로 이 무렵. 한국에서 딸이 보낸 문자로 봄소식을 듣고도 미호는 시큰둥하다. “늙어가는 이에게 깨어나는 봄은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그러나 요셉과 다시 만나 오해를 풀고 “40년 동안 잃어버렸던 마지막 퍼즐 조각”을 맞춘 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봄을 향한 기대로 새삼 출렁거린다. “지구 반대편, 순천 금둔사에서 홍매화 백 송이가 꽃망울을 터뜨리며 피어나고 있을 것이었다.”

최재봉 선임기자,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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