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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인-잇] "나 없으면 회사 안 돌아가" 네, 착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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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규│입사 21년 차 직장인. 실제 경험을 녹여낸 회사 보직자 애환을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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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중한 (運中閑) 4편 (마지막)
'운전 중 떠오르는 한가로운 생각'이라는 뜻. 운전 중 발생하는 여러 에피소드를 회사 생활과 엮었다.



본사 협력업체 총괄 담당의 전화가 왔다. 아주 흥분한 목소리였다.

= 그 지역 서비스가 왜 그래요? 고객한테 항의가 너무 많이 들어옵니다."

- 이미 보고 드린대로 대리점이 포기한 상태입니다. 기본적인 서비스만 제공되고 있는 상태인데요, 새로 대리점장이 선임될 때 까지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 도대체 언제 선임돼요? 시끄럽지 않게 일을 처리해야지, 이게 뭐예요?"

나는 이 질책을 듣고 좀 황당했다.
"이 대리점은 담당 임원이 강조한 대로 회사 기준에 맞지를 않아서 계약을 종료한 곳이다. 그런데 대체 점장을 구하기 힘든 곳이라 당분간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이미 몇 번이나 보고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화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하다. 이 업무를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무너진 곳이 생겼으니 말이다. "지금 최선을 다해 대체 점장을 구하고 있습니다. 곧 상황 정리됩니다"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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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힘들다고....내가 그 보고를 몇 번이나 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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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고객사 사장이다. 난리가 났다고 한다. 답답한 마음에 사무실을 나와 문제의 지점으로 갔다. 아이구 이런. 도착해 보니 거기도 몇몇 고객들이 직접 찾아와 우리 직원들에게 항의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장면을 외면한 채 지점장실로 갔다. 지점장은 며칠 사이에 몇 년은 더 늙은 것 같았다. 피곤해 보이는 지점장에게 바로 "어떻게 되어가고 있냐?"고, 미안했지만 하는 수 없이 물었다. 그가 말한 것을 정리하면 이렇다.

현재 대리점장은 손을 떼겠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닌다. 하지만 완전히 서비스 중단은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본인이 계약 종료 후 차후 법적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것도 있고 어차피 자신이 다시 하게 될 텐데 너무 망가뜨리면 안 된다는 계산도 깔려있는 것 같다. 불행히도 그 지역에서 하겠다는 사람은 아직 없다. 아마도 지역사회라서 지금 대리점장이 완전히 손을 놓지 않는 한 나타날 것 같지는 않다.

지점장의 보고 중 "지역사회라서 그 사람이 완전히 포기하기 전까지는 대체자가 나서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이 특히 아프게 느껴졌다. 하지만 실망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일부러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좀 더 죽어야겠네요." 시간이 흐를수록 본사의 질책은 더욱 심해졌고 몇몇 고객의 불만은 하늘에 닿을 정도가 되었다.

물론 그 사이 우리도 최대한 조직을 정비하기 위해 노력했다. 일단 본사를 설득하여 필요한 자원을 지원받았고 그것으로 주요 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우선 정상화했다. 땜질 처방이었지만 최악의 상황은 막은 것이다. 그러자 기존 대리점장이 다소 당황스러워 한다는 정보가 접수되었다. 자신이 똥탕을 치면 여태까지는 바로 협의가 들어왔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꼬리를 내릴 마음은 없는 것 같았다. 그렇게 상당 시일이 흘러갔다.

그 고통스러운 시간 동안 한가지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대리점을 포기하겠다는 대리점장의 말은 "거짓"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사실 어떻게는 다시 하고 싶어했다. 계약 종료 시점이 며칠 남지 않았을 때 최종 정리를 하기 위한 미팅에서 그 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 회사에서 왜 저를 버리려고 하나요?"

- 무슨 말씀이세요. 대리점장이 안한다고 한 거 아니예요. 그래서 이 생고생하고 있구만.

= 강자가 약자를 달래야 하잖아요. 그런 것은 전혀 없고 그냥 백기를 들라고 하면 되나요?

- (점잖게) 저희가 점장님을 맞춰드릴 수가 없어서요. 미안합니다.

= 내 후임자는 누구예요? 없잖아요.

- 당분간은 직영으로 운영할 것입니다.

= (당황하며)직영으로요? 회사 손해가 상당할 텐데. 감당할 수 있으세요. 정말 직영으로 해요?

그래서 난 지금 조건으로 다시 하겠냐고 물으니 그건 아니란다. 직영 운영 얘기에 그는 순간 당황은 했으나 곧바로 '회사가 얼마나 직영으로 버티겠는가? 결국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해서 나한테 다시 찾아올 거다.' 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 듯 했다. 그렇게 계약은 정말로 '종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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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 약 . 종 . 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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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에 이 일과 관련하여 계약 종료 및 향후 계획을 최종 보고한 뒤 돌아오는 길은 유난히 교통정체가 심했다. 차가 멈춰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자연스럽게 그 동안의 일들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일단 나는 왜 이 고생길을 택했을까? 답은 쉽게 나왔다. 오만한 대리점장 때문에 여러 번 죽지 않고 한번 죽어 제대로 살아보기 위해서 이 길을 선택한 것이다. (이 점은 회사 경영층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저 대리점장은 대리점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으면서 왜 끝까지 우리와 타협하지 않았을까? 경제적 욕심도 있었겠지만 자기 지역은 자기 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맹신했던 것 같다. 그래서 자신이 무리한 요구를 해도 어쩔 수 없이 회사는 결국 들어줄 것이라는 확신이 그를 마지막 순간까지 직진을 하게 만든 것. 물론 그의 결정도 나처럼 한번 죽고 제대로 살기 위해서 였을 거다. (지금은 그를 절대 나쁘게 보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그는 자신의 이 판단에 후회가 없을까? 알 수 없는 일이나 아래 글은 참고가 될 것 같다.

- 한편으로 기다리는 전화도 있다. 내가 인수인계를 철저히 해 주고 왔지만 실제 업무를 하면 막히는 것이 있을 터. 그 어려운 순간이 닥치면 전 팀장이 나의 존재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비로소 깨닫고…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전화는 오지 않고 내 속만 상했다… 개인이 아니라 조직이 일을 한다고 하더니… 나 혼자 자신을 대단하다고 착각했지 실은 별거 아닌 존재 였나 보다. -

어떤 회사에서 진짜 독보적인 존재였던 직원이 팀장과 갈등관계를 갖다가 결국 쫓겨난 후 유배지에서 자신이 정말 별거 아닌 존재였고 자기 아니더라도 조직은 잘 돌아감을 절감한 뒤 쓴 글이다.

자기 아니면 안된다는 확신에 차 있는 사람(조직)은 그렇지 않음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자칫하면 늦은 후회를 하게 된다.

나 또한 마찬가지임을 새삼 깨달으며 운전대를 꽉 쥐어본다.

▶ 운중한 (運中閑) 1편 - 선의 베풀었더니, 선을 넘네?
▶ 운중한 (運中閑) 2편 - 바라기만 하는 그 사람, 너무 얄밉잖아요
▶ 운중한 (運中閑) 3편 - 겁쟁이는 여러 번 죽는다
▶ 운중한 (運中閑) 4편 - "나 없으면 회사 안 돌아가" 네, 착각입니다


- 끝

#인-잇 #인잇 #김창규 #결국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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