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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이슈 우리들의 문화재 이야기

김재규의 불행은 사육신묘에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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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김두규의 國運風水]

권력자 선영의 풍수

박정희, 김재규, 그리고 사육신

박정희 선영, 제왕지지로 불려

시해당한 뒤엔 흉지로 변해

사육신에 조상 포함된 뒤

김재규 얼마안가 교수형

사육신묘는 지세 거슬러

관악산 바라보는 하극상 풍수

조선일보

서울 노량진에 있는 조선시대 사육신묘. 지금은 묘가 7기다.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선영은 파묘 상태다. / 김두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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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개봉한 영화 '남산의 부장들'이 한 달 만에 470만 관객을 모았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긴박한 갈등을 다루었다.

권력에는 늘 풍수가 따른다. 박 대통령 집안에도 풍수전설이 있다. 형 박상희가 일본 강점기 때 길지를 구한 것이 현재 구미 상모동 선영이라는 전설부터 박 대통령 부부 묘에 이르기까지 책 한 권 분량이다. '후손이 잘되면 명당이요, 불행해지면 흉지'가 되는 법이다.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자 상모동 선영은 제왕지지(帝王之地)라 불렸다. 그가 시해를 당하자 이금치사(以金致死)의 땅, 즉 쇠[金]로 인해[以] 죽음[死]에 이르는[致] 흉지로 바뀌었다. '이금치사'는 풍수고전에 등장하지 않는다.

이 말을 만들어낸 풍수사가 누구일까 궁금했다. 김재규 부장의 선영을 답사하면서 답을 찾았다. 김재규가 박정희의 신임을 받아 건설장관으로 재임할 때 일이다. 당시 풍수 손석우(1998년 작고)씨가 김 부장에게 제왕지지를 선영 자리로 잡아주었다. 그 덕분인지 얼마 후 김재규는 중앙정보부장, 즉 권력의 2인자가 되었다. "2인자가 된 김 부장은 또 다른 풍수 장용득(1999년 작고)씨에게 이곳을 자랑삼아 보여주었다. 그런데 장씨는 '3년 내에 이금치사할 땅'이라고 혹평한다. 그로부터 얼마 후 김 부장은 박 대통령을 시해하고 교수형을 당했다."('월간조선' 2015년 12월 호). '이금치사'는 장씨가 만들어낸 말이었다.

박 대통령과 김 부장 선영은 '이금치사'의 땅일까? 박 전 대통령의 구미 선영은 지금도 온전히 관리되고 있다. 김 부장 선영은 구미시 옥성면 덕촌리 뒷산에 있다. 지금은 파묘되고 흔적만 남았지만 아직도 자신의 '에고(ego)'를 드러내고 있다. 두 곳 모두 좋은 자리이다.

그렇다면 굳이 풍수사들 논리에 따라 '김 부장의 불행을 야기한 땅'을 지적하라면 어디일까? 다름 아닌 노량진 사육신(死六臣)묘,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처형된 충신 6명의 무덤이다. 1681년 숙종이 이곳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뒤 1970년대까지 사육신묘만 있었다. 그런데 1977년 갑자기 국사편찬위원회는 '사육신 규명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김문기를 사육신으로 현창함이 마땅하다"고 결의한다. 이후 사육신 묘역에 김문기가 안장되어 '사칠신(死七臣)'묘가 되었다.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김문기의 18대 후손이다 보니 학계와 언론에서도 말이 많았다.

10여년 전 문화재청 자문 일로 서울 근교 왕릉에서 사학계 원로 한영우 교수를 뵌 적 있었다. 필자의 이름 끝이 '규(圭)'임을 확인한 그가 "백촌공 후손이오?"라고 물었다. 백촌(白村)은 김문기의 호이다. 필자가 "네!"라고 대답하자 "사육신묘에 백촌공이 안장된 것에 어떻게 생각해요?" 묻는다. "아는 것이 없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가 덧붙였다. "사육신묘는 과장급(성삼문 등 당시 거사에 참여한 이들)의 무덤이라면, 백촌공은 거사 참여자 가운데 장관급이오. 장관급이 과장급 사이에 안장된 것이란 말이오!" 김재규 당시 중정부장의 힘이 작용된 안장을 에둘러 비판한 것이리라.

노량진 사육신 묘역의 풍수는 어떨까? 묘역의 지세는 관악산 지맥이 북상하여 한강으로 나아가려 한다. 사육신묘는 그 흐름을 따르지 않고 거꾸로 한양도성과 등을 돌리고 관악산을 바라본다. 이른바 지세를 거슬러[逆] 안장되었다. 하극상으로 투옥될 자리라고 풍수서는 말한다. 풍수에 능한 숙종이 이곳에 사육신묘를 허락한 것도 겉으로는 '충신'으로 현창하지만, 속으로는 '배신자들'의 무덤임을 알리려 한 것이 아닐까? 김재규 부장의 풍수 패착은 이것이라는 생각이다.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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