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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美 트럼프냐 vs 中 시진핑이냐` 골치 아픈 남미 아르헨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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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19(우한코로나) 여파로 1월 중국으로의 아르헨티나의 소고기 판매가 30%줄었다고 아르헨티나 육류수출협회가 24일(현지시간) 밝혔다. 중국은 아르헨티나 소고기 수출의 75%를 차지한다. /출처=로이터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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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살벌 라틴아메리카-7]"중국 덕분이다. 전 세계는 이 질병과 싸워 이기기 위해 중국의 경험과 자원이 필요하다." 지난 16일(현지시간) 중국에 도착해 코로나19(우한 코로나) 확산 현황과 중국 정부의 대응을 조사했다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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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현지시간)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와 공동 기자회견 중인 브루스 에일워드 WHO 조사국장과 지난 2017년 5월 당선된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의 소감 표명 당시 중국 언론 보도./출처=중국CGTN·신화망 영상 등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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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때문에 한국·일본·이탈리아·이란 등 전 세계 사람들이 아프고, 일부는 죽어가고 있으며 시장이 공포에 휩싸였는데 WHO는 전 세계가 중국에 빚졌다고 평가했다. WHO 조사국장인 브루스 에일워드 박사는 24일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위건위)와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본 바에 따르면 중국은 성공적인 조치를 취했다"면서 중국 정부가 코로나 발원지인 우한시를 봉쇄한 데 대해 "전 세계가 빚을 졌다. 중국 조치 덕에 신규 확진자가 줄어들고 있다"고 극찬했다.

24일은 전 세계 증시가 '우한 코로나 공포' 속에 하루 새 3% 이상 내리꽂은 날이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WHO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주요 증시가 코로나 탓에 2년 만에 최악의 날을 보냈다"고 평했다. 이날 24일 한국에서부터 코스피가 3.9% 떨어지면서 미·중 무역전쟁이 한창이던 2018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고, 이탈리아 FTSE MIB지수는 5.5% 폭락해 2016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우한 코로나 확진자가 수백 명 단위로 나오는 두 나라 외에도 범유럽 유로 Stoxx 50지수(-4.01%)에 이어 미국 증시 3대 지수도 '기술주 중심' 나스닥(-3.71%), '우량주 중심' 다우존스지수(-3.56%), '대형주 중심' S&P500(-3.35%) 순으로 일제히 하락선을 그으면서 우울하고 불안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WHO 전문가 팀의 평가는 따로 놓고 보더라도 중국이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날로 커지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는 '아메리칸퍼스트(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일대일로(중국중심의 글로벌경제협력벨트)'를 확장하려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끄는 '주요 2국(G2·미국과 중국)'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이 서는 것이 더 나은지를 두고 각국 정부 고민이 오간다.

아직까지(24일 기준) 우한 코로나 희생자를 내지 않은 라틴아메리카 대륙도 마찬가지다. 특히 지난해 12월 새 정권이 들어선 아르헨티나에서는 국제통화기금(IMF)과 부채 재협상·빈곤층 급증 문제가 우한 코로나보다 더 시급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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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1일 유엔식량농업기구(FAO) 본부가 있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최둥위 FAO 사무총장(오른쪽)을 만난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왼쪽)./출처=F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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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1일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제47대 대통령)은 유엔식량농업기구(FAO) 본부가 있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취둥위 FAO 사무총장을 만났다. 유엔에 따르면 이날 자리에서는 아르헨티나 내 빈곤과 식량 불안·영양실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력 강화 방안이 논의됐다. 지난해 말 아르헨티나에서는 시민 빈곤율이 41%에 이른 바 있다.

이를 두고 아르헨티나 경제지인 엘크로니스타는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조용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중국 주도의 FAO와 미국 주도의 유엔세계식량계획(WFP)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엘크로니스타는 WFP는 전쟁으로 인해 극한의 빈곤·기아 문제를 겪는 국가에 식량 지원을 해왔지만, 최근 들어 예외적으로 아르헨티나에 지원 의사를 밝혔는데 이는 FAO 견제 차원이라고 풀이했다.

취둥위 FAO 사무총장은 지난해 6월 FAO 설립 사상 처음으로 중국인으로서 FAO 수장으로 선출돼 눈길을 끈 인물이다. 유엔 산하 FAO는 연간 예산 26억달러(약 3조69억원)를 집행하는 기구인데, 취둥위 사무총장은 미국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194개 회원국 중 아프리카와 중남미 국가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선출됐다고 당시 AP·AFP 등 외신이 전한 바 있다.

'중국인' 취둥위 사무총장이 FAO를 이끌게 되자 미국에서는 데이비드 비즐리 WFP 사무총장이 견제에 나선 모양새다. 2017년 취임한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측근 정치인으로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 출신이다. 비즐리 총장이 이끄는 WFP도 기아 위기에 놓인 전 세계 80여 개국, 8000만명을 지원하는 주요 국제기구다.

지난해 12월 10일부로 임기를 시작한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실용주의자'로 분류되지만 경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 지리적으로 가까운 미국보다는 먼 나라 중국에 관심을 두는 모양새다. '포퓰리즘의 여왕'으로 불리는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제44~45대·2007년 12월 10일~2015년 12월 9일) 전 대통령을 '정권 실세' 부통령으로 두고 새로 출범한 페르난데스 정부의 정책 노선은 '미국 친화적 외교정책·시장 자본주의'를 강조한 마우리시오 마크리(제46대·2015년 12월 10일~2019년 12월 9일) 대통령과 반대 방향으로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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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2월 4일 중국 베이징 방문 중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오른쪽)을 만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아르헨티나 당시 대통령(부통령·왼쪽)/사진 출처=AP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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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데스 정부는 경제 위기 타개에 필요한 자금 확보 차원에서 중국과의 유대 강화에 나섰다. 부에노스아이레스타임스는 IMF와의 부채 재협상이 만만치 않은 줄다리기상황이 되자 정부가 부쩍 중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지난 22일 보도하면서 그 배경으로 '정권 실세'인 크리스티나 부통령의 성향을 들었다. 레오나르도 스탠리 아르헨티나 사회연구소(CEDES) 연구위원은 "중국은 라틴대륙과 일대일로를 맺고 항구 등을 개발해 물류비용을 낮추려 한다"면서 "아르헨티나는 아직 일대일로 서명국이 아니지만, 현 정부가 전 마크리 정부와 정반대인 U턴 정책을 펴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과 밀착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부에노스아이레스타임스는 "크리스티나 부통령이 대통령이던 시절 정부가 투자금 중 85%를 중국으로부터 받기로 하고 진행한 산타크루스 댐(47억달러 규모)이 최근 다시 재개되기로 했으며 부통령이 댐 명칭을 자신의 남편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제43대·2003년 5월 25일~2007년 12월 9일) 이름을 따 짓기로 했다"고 전했다. 산타크루스 댐은 '미국 친화적 외교정책·시장 자본주의'를 강조한 마크리 대통령 시절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비용·편익 분석결과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공사가 중단된 바 있다.

페르난데스 정부는 원자력발전소 4·5호(150억달러 규모) 건설 작업도 올해 안으로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발전소 공사는 크리스티나 부통령이 대통령이던 2015년 2월 당시 중국 베이징에서 시진핑 주석을 만난 후 중국과 100억달러 규모 건설·투자 계약을 한 건으로, 이후 마크리 정부에서는 경제 위기를 이유로 발전소 건설이 2곳에서 1곳으로 축소되고 공사도 일시 중지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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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데스 정부가 중국에 다가서는 이유는 미국이 주도하는 IMF와의 부채 재협상이 만만치 않은 탓도 있지만,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은행 무역통합데이터(WITS)를 보면 '중국 친화적'인 크리스티나 부통령이 대통령이던 시절 아르헨티나 수입액 중 중국산 비중은 2008년 말 12.36%에서 2015년 말 19.65%로 늘었다. 중국에 대한 아르헨티나의 무역 적자폭은 2008년 이후 계속 커졌고, '미국 친화적'인 마크리 전 대통령 집권 시절 중국산 수입 비중이 줄어 2015년 말 18.45%로 떨어진 정도다.

미국과 중국 중 어느 쪽에 '실리적으로' 다가설지에 대한 정부 결정도 쉽지만은 않다. 지난해 여섯 달간 아르헨티나 페소화가 추락해 중앙은행 외화 잔액이 280억달러나 줄어들 때 '미국 친화적'인 마크리 정부는 전임 크리스티나 대통령 시절 정부가 중국과 체결해둔 190억달러 규모 통화스왑을 활용했다. 지난해 9월 중국이 콩가루(대두박) 500만t 등 총 16억달러에 달하는 콩 가공제품을 아르헨티나로부터 사들이기로 했을 때 마크리 당시 대통령도 '역사적 성과'라며 환호했다. 반대로 같은 해 12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마크리 정부를 향해 "아르헨티나산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부활시킬 것"이라고 선언해 날을 세운 바 있다.

중국 영향력이 커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경제 위기'를 이유로 중국에 기대는 것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최근 아르헨티나 경제 위기는 현 정권 실세인 크리스티나 부통령이 남편에 뒤이어 대통령을 지내던 시절 '키르치네리스모(Kirchinerismo)'를 통해 재정을 낭비하고 환율 통제를 통해 외환시장을 왜곡한 결과라는 데 대한 반성이 결여됐다는 지적에서다. 키르치네리스모는 1950~1970년대 '페로니스모(Peronismo, 후안·에바 페론 부부식 포퓰리즘)' 계보를 잇는 키르치네르 부부 정권의 포퓰리즘을 말한다.

[김인오 기자]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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