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돈 교수가 본 ‘임성근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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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헌적인 재판개입이 있었지만 형법상 직권남용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재판장 송인권)는 사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임성근 판사에게 지난달 14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하면서 이런 판단을 내렸다. 임 판사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으로 있으면서 일선 재판에 개입한 혐의를 받았다. 재판부는 직권남용죄가 성립하려면 일단 직권이 있어야 하는데, 형사수석부장에게는 ‘재판업무에 대한 직무감독권’이라는 직권이 없다고 했다.
재판개입은 정말 처벌할 수 없을까. 지난 2일 김성돈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만났다. 형법학계에서 직권남용죄를 고민하는 몇 안되는 학자 중 한 명이다. 대화는 ‘법이란 무엇인가’라는 다소 원초적인 질문에서부터 시작했다. 법원의 법 해석과 적용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 한국 사회에서 직권남용죄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대법원 입장은 어떠한지, 그리하여 사법농단 1심 무죄 판결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까지 살펴봤다.
판결 영향은 임 판사 사건을 넘어선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물론이고, 박근혜 전 대통령부터 조국 전 법무부 장관까지 최근 몇 년간 재판에 넘겨진 수십명의 전·현직 고위공직자들 앞에 직권남용죄가 놓여 있다.
■ 법이란 무엇인가
“법은 뱀처럼, 물처럼 휘어가는 것”이라고 김 교수는 표현했다. 법은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탄력성을 가졌다는 뜻이다. 법전에 문자로 쓰인 법은 구체적인 사건과 만났을 때 비로소 작동한다. 법이 살아 있게 만드는 사람은 바로 법관이다. 법관의 법 인식행위는 법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기계론적 활동이 아니다. 시대정신과 사회적 가치를 법 속으로 밀어넣는 고도의 정신적 활동이다.
법원은 지금까지 다른 범죄에 대해서는 이러한 법의 속성을 기반으로 법 해석을 해왔다. 어떤 행위가 범죄가 되는지 안되는지를 가르는 경계선에서 원칙과 예외를 넘나들었다. 법의 진정한 목적을 살릴 수 있다면 때로는 문자의 내용을 넘어 확장 해석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자동차는 문명의 이기지만 사람을 향해 돌진하면 위험한 물건으로 해석하죠. 특수폭행죄의 구성요건 중에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라는 게 있어요. 휴대란 몸에 소지하는 것을 말하는데 법원이 ‘널리 이용하는 경우도 포함한다’고 확장 해석을 하는 거예요. 단순히 주먹을 휘두른 사람과 자동차로 돌진해 위협을 가한 경우의 차이를 반영하기 위해서, 특수폭행죄의 구성요건이 살아 있게 하는 방법으로 확장 해석을 하는 것이죠. 물론 그렇게 확장 해석이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있지만요.”
그러나 법원은 최근 직권남용죄에 관해서는 유독 다르게 해석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법농단 사건이 대표적이다. 형법 123조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사법농단 사건에선 재판개입이 사법행정권자의 ‘직권’에 의해 이뤄졌는지를 공방한다. 직권이 있어야만 남용할 수 있다는 도그마(맹목적으로 신봉되는 명제) 속에서, 꼬리물기처럼 ‘직권이 무엇인지’ 논쟁이 반복된다. 공무원에게 부여된 권한이 있고, 그 권한의 커다란 범위 안에서 권한의 재량권을 남용한 경우에만 직권남용죄가 성립한다는 것을 전제로 삼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 직권남용죄의 탄력적 해석
김 교수는 대법원이 직권남용죄를 탄력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러 통로를 이미 열어뒀다고 분석한다. 판례들을 보면 대법원은 직권을 ‘일반적’ 직무권한으로 정의한다. 대법원은 일반적 직무권한에 관해 “반드시 법률상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것임을 요하지 않고, 그것이 남용될 경우 직권행사의 상대방으로 하여금 법률상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정당한 권리행사를 방해하기에 충분한 것이면 된다”고 한다. 권한이 형식적으로 법령에 정해져 있지 않더라도 실질적·종합적 평가를 통해 공무원의 직권이 존재한다고 인정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또 대법원은 직권의 남용이란 공무원이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을 직권에 ‘가탁(假託)하여’ 불법하게 행사하는 것이라고 한다. 가탁이란 “거짓 핑계를 댐”이라는 뜻으로, 일본 판결에서 따온 단어다. “안동 김씨의 60년 세도가 왕권에 ‘가탁한’ 대원군에 의해서 손쉽게 무너졌다”는 국어사전 예문을 보면 이해가 쉽다. 권한이 없는 사람이 권한이 있는 것처럼 행사하는 경우를 가리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대법원은 이미 권한이 있는 경우 그 권한의 ‘범위 내’ 재량적 권한행사만을 남용으로 보지 않고, 권한이 ‘없거나 넘어선 경우’도 남용으로 포섭할 여지를 인정하고 있다”고 했다. ‘남용’의 사전적 의미도 “일정한 기준이나 한도를 넘어서 함부로 씀”이다.
이 같은 논리에 의하면 직권남용죄를 따질 때 사법행정권자의 일반적 직무권한이 무엇인지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 일반적 직무권한을 넘어서는 경우에도 남용이 성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직권남용죄는 직무의 권한을 반드시 갖고 있어야 되는 범죄가 아니다. 그 직무의 권한을 내가 갖고 있지 않더라도 사용하면 남용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대법원 판결 중에는 해군본부 법무실장이 국방부 검찰단 관할 사건의 수사 보고를 받은 사건에서 직권남용죄가 성립한다고 한 사례가 있다. 해군본부 법무실장에게 해군 소속인 국방부 검찰단 검찰수사관에 대한 인사 추천권 등 일반적 직무권한이 있고 이 직권에 ‘가탁해’ 수사내용 보고를 시켜 직권남용이라고 본 것이다.
직권남용죄를 연구해온 김성돈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
■ 형식 논리 치우친 1심 판결
‘재판개입’ 임성근 판사, 1심 무죄
“대법, 권한 없거나 넘어선 경우도
직권남용으로 포섭할 여지 인정
1심, 직무권한 형식적으로 좁혀
‘권한 없으니 남용 없다’는 프레임”
임성근 판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의 문제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김 교수는 “1심 법원은 대법원이 직권남용 개념에 관해 준비해왔던 두 가지 확장적 해석 태도 중 어느 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입장에 따르면 재판개입을 사법행정권의 남용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사법행정권을 순수한 ‘행정업무’로 규정한 1심 재판부 판단부터 이견이 나온다. 사법행정을 행정부에서 맡는 국가가 있는 반면, 한국은 사법행정을 사법부에서 한다. 판사들은 사법행정권도 독립이 보장되는 사법권에 포함된다고 한다. 김 교수는 “(한국 법원의) 사법행정권은 입법·행정·사법이라는 고전적 의미의 삼권분립이라는 의미 차원에서 말하는 사법권과 대척관계에 있는 순수 행정업무가 아니다”라며 “재판 보조와 촉진 업무로서 준사법적 업무”라고 했다. 그는 이어 “특히 형사수석부장은 지방법원장의 위임이나 지시 등에 기초해 재판의 직무감독과 근무평정을 하므로 순수한 행정사무 담당자로 보기 어렵다”며 “1심 재판부가 사법행정을 단순히 ‘사무적’ 업무라고 하며 재판개입권이 없음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는 것도 결국은 직무권한 개념을 형식적으로 좁혀놓고, ‘권한 없이 남용 없다’는 프레임을 짜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오히려 대법원의 해석 태도에 따르면 권한의 범위를 벗어났지만 상대방이 보기에 권한 범위 내의 권한행사로 오신(오해)할 만한 외관을 가진 경우에 한해 그러한 권한행사를 직권남용으로 포섭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오신할 만한 외관인지의 기준은 ‘일반인·평균인의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따져야 한다고 했다. 재판업무에 대한 직무감독권이 없더라도, 그러한 직무감독권이 있다는 외관이 형성되고 오신을 불러일으켰다면 직권남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민법의 ‘표현 대리’는 유사한 구조다. 민법에선 권한 없는 자의 대리권인 ‘무권 대리’와 별개로 대리권이 있는 것과 같은 외관을 가진 ‘표현 대리’의 경우 선의의 상대방을 보호하기 위해 대리권이 있는 것처럼 본다. 대리권이 있다고 믿은 제3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법관인 사법행정권자가 일선 법원에서 재판업무를 담당하는 판사의 재판권에 관여한 경우는 그 재판권 관여가 법관의 권한 범위 내에 있는 것이라는 외관성과 오신성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해석은 직권남용을 반드시 권한 범위 내의 재량권 남용으로 제한하지 않고 형식적인 법령에서 정한 범위를 넘어서는 권한의 행사, 즉 준월권적 남용도 포함할 수 있게 해줍니다.”
■ 죄형법정주의와 형법의 역할
“형벌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죄형법정주의 취지에 부합 안 해
직권남용죄 작동원리 구체화돼야”
직권남용죄는 직권을 남용했을 뿐만 아니라, 상대방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해야 성립한다. 즉 직권남용으로 인한 결과를 발생시켜야 한다. 1심 재판부는 임성근 판사가 일선 재판에 개입하는 행위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 대상인 재판부들이 영향을 받아 재판하지 않았기 때문에 직권남용과 결과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가 단절’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1심 재판부는 재판개입의 대상인 재판장들이 재판개입이 아니라 조언·권유로 생각했다고 진술한 것을 근거로 들었다.
김 교수는 ‘인과관계의 단절’ 법리를 여기서 가져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특히 재판장들의 진술 등 주관적 사정을 인과관계 단절의 근거로 삼는 해석 방식 자체가 이례적이라고 했다. 대법원은 어떤 결과가 통상적인 경험 범위 내의 일인지를 객관적으로 따져 인과관계를 인정해왔기 때문이다. “단절이라는 것은 사슬이 끊어지는 개념이에요. 결정적인 변수가 중간에 개입돼야 해요. 예를 들면 행위자의 주먹에 맞아 넘어져 있는 피해자의 이마에 누군가가 고의로 총을 쏘아 죽게 만든 경우와 같은 제3자의 개입이 있어야 주먹으로 때린 행위와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단절된다고 할 수 있는 것이죠. 대법원은 심지어 지속적인 폭행을 피해 도로를 무단으로 건너던 피해자가 그 도로를 주행 중이던 차량에 치여 사망한 경우에도 행위자가 발생시킨 위험이 사망의 결과로 실현되는 것이 일반적으로 예견 가능하다면서 인과관계를 인정한 적이 있습니다.” 임 판사의 재판개입이 아니었더라면 해당 재판부들이 과연 판결 내용과 결정을 번복했을까.
일각에선 ‘직권남용죄의 남용’이라는 주장을 한다. 형벌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모르는 법조인은 없다. 핵심은 직권남용죄가 ‘공무원’을 처벌하는 조항이라는 데 있다. 직권남용죄는 일반 시민을 처벌하는 조항이 아니다. “장삼이사에게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확장 해석을 밥먹듯이 하면서도 법원의 제 식구에 대해서는 좁디좁은 문자적 해석 태도로 돌아서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의 본래 취지에 부합하는 것도 아닙니다. 과거에는 권력기구 안에서 이뤄지는 일은 노출 자체가 되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권력기구 내부에서의 위법·부당한 일이 외부로 알려지다 보니까 직권남용죄를 살아 있는 법으로 만들기 시작하는 거죠. 이 지점에서 직권남용죄의 작동원리는 더 구체화돼야 하는 것이고, 살아 있게 만들어져야 하는 겁니다. 법이 탄력성을 발휘할 때 개념의 명확성·일관성·체계성을 통제해야 하지만, 그 일이 어렵다고 무조건 처벌하지 말자는 것은 형법의 사회적 기능 포기나 마찬가지입니다. 법원이 기계론적 형식 논리에 집착하는 태도의 배경은 무엇입니까?” 임 판사 1심 판결은 시작이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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