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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 (화)

[현미경] 스웨덴의 '방역 도박' 성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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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진 3447명·사망 105명인데도 휴교령이나 이동제한 조치 없어

개인 자율 중시해 정부는 권고만… 의료시설 부족한 '현실적 고려'도

스웨덴 내부서도 위기의식 커져, 학부모들 "정부가 미쳤다" 비판

유럽 각국이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영업 금지령, 휴교령과 같은 초강수를 던지고 있는 가운데 이와 반대로 하는 나라가 딱 하나 있다. 북유럽의 스웨덴이다.

스웨덴은 식당·카페에 대한 영업 규제를 실시하지 않고 있다. 학교도 고등학교·대학만 수업을 중단했을 뿐 유치원과 초·중학교는 여전히 평상시처럼 굴러가고 있다. 이동 제한도 없다. 공공장소 모임도 28일(현지 시각)까지는 500명 미만이라면 허용했다. 국경에서도 EU가 공동으로 비(非)EU 회원국 국적자의 입국을 막는 것 외에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지난 주말 식당·술집에서 여전히 젊은이들이 먹고 마시는 장면이 TV에 나왔다. 이런 한가한 장면은 유럽에서 오직 스웨덴에서만 벌어지고 있다. 이웃나라 덴마크·핀란드만 하더라도 이동 금지령과 국경 봉쇄 조치를 취했고, 스웨덴의 느슨한 대응에 항의하고 있다.

스웨덴만 '마이 웨이'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코로나 사태 초기부터 스웨덴 정부는 전염병 퇴치와 경제적 충격 최소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방침을 천명했다. 유치원과 초·중학교 수업을 계속 하는 이유는 자녀를 집에서 돌보느라 부모가 일을 하러 나가지 못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고 스웨덴 정부는 설명한다. 스웨덴은 "특히 의료진이 자녀 때문에 일에 지장을 받으면 안 된다"고 했다.

어떤 상황이든 정부는 권고만 하고 국민 각자가 책임감을 갖고 행동하는 문화가 뿌리 깊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미국의 포린폴리시는 "스웨덴의 사회적 신뢰 수준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중도좌파 성향의 집권 사민당이 오래전부터 개인의 자율을 중시해왔다는 점이 반영됐다는 시각도 있다. 스웨덴에서는 또 정권이 보건 당국과 전문가의 의견을 최대한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 전염병 학자인 안데르스 텡넬 스웨덴 공공보건청장은 "국경 봉쇄와 같은 강경책은 효과가 없다는 게 과거 전염병 사태에서 입증됐다"는 지론을 고수하고 있다.

병상이 절대 부족한 상황을 극복하려면 국민의 동요를 막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도 제기된다. 스웨덴은 국민 1000명당 병상이 2.2개로 독일(8개), 프랑스(6개)는 물론 이탈리아(3.2개)보다도 적다. 스웨덴 정부는 의료 시설 부족을 인정하면서 초기부터 "정부는 중환자 치료에만 집중할 테니 국민은 평상심을 가져달라"고 이야기해왔다.

그러나 스웨덴 내부에서도 논란이 적지 않다. 지난 24일 교수 및 연구자 2000여 명이 연대 서명해 강경한 조치로 바이러스 확산을 막을 것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정부에 보냈다. 초·중학교는 수업을 하고 있지만 학생의 3분의 1은 등교하지 않고 있다. 부모들이 감염이 무섭다고 학교에 보내지 않기 때문이다. 로이터통신은 "스웨덴 학부모들이 무책임하게 아이들을 바이러스에 노출시킨다며 '정부가 미쳤다'라는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고 했다.

스웨덴 정부는 도박을 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강경 대응하는 나라와 피해 규모가 비슷하면 경제적 타격이 적어 성공이라고 할 수 있지만,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돼 큰 위기를 부를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정부 관계자들이 말하고 있다.

스웨덴은 28일까지 확진자가 3447명이고 사망자가 105명이다. 인구가 1012만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피해가 적지 않다. 100만명당 감염자는 341명으로 노르웨이(744명), 덴마크(380명)보다 적다. 하지만 100만명당 사망자는 10명으로 덴마크(11명)와 비슷하고 노르웨이(4명)보다 많다. 결국 스웨덴도 며칠 내로 전면적인 휴교령이나 식당·술집 영업 금지령을 꺼낼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스웨덴 정부는 29일부터는 금지하는 모임의 규모를 '500명 이상'에서 '50명 이상'으로 바꾸며 대응 수위를 높였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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