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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보수단체 “조례 막아라” 문자·시위로 무차별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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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은 함께살기법] ④인권조례 어떻게 좌절됐나

‘반동성애’ 보수 기독교 단체

인권조례 입법예고 되자마자

항의 방식 담은 게시물 신호로

이메일·팩스·전화 전방위 공격

지방의회 직접 방문해 으름장

의원들, 갈등 꺼려 조례 보류

“인권조례가 차별 시정 조치인데

반동성애 단체들 무조건 반대”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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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단체의 인권조례는 대부분 비슷한 과정을 겪으며 스러졌다. 제정을 반대하는 이유도, 반대하는 방식도, 입법 철회나 보류를 결정한 사유도 거기서 거기다. 인권조례가 입법예고되면 첫 단계로 반동성애 단체들이 항의 방식 등을 담은 게시물을 만든다. 지난해 11월 충북 옥천군의회에서 벌어진 상황도 이 ‘공식’을 비켜 가지 않았다.

“전국 각지에서 인권조례를 제정하지 말라는 이메일, 팩스를 받았고 반대 댓글이 달렸다. 지역 기독교연합회는 1400여명에게 인권조례 제정 반대서명을 받아왔다. 너무 많은 압력이 들어와서 도저히 진행할 수 없었다.”

이용수 충북 옥천군의원(더불어민주당)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지난해 입법예고된 옥천군의 인권조례가 장기 보류된 이유를 설명했다. 항의는 지난해 11월8일 이 의원이 대표발의한 ‘옥천군의회 인권 기본 조례안’(인권조례)이 입법예고된 직후 쏟아졌다. 인권조례엔 성소수자를 ‘인권 약자’로 규정하는 내용이 있었다. 입법예고 사흘 뒤, 동성애에 반대하는 미디어 ‘케이에이치티브이’(khTV)에는 “김외식 옥천군의장, 동성애 옹호·조장 ‘옥천군인권조례’ 제정시도 논란”이란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해당 글엔 조례안에 반대 의견을 개진하는 방법이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한겨레

다음 단계는 보수 개신교 단체를 중심에 둔 반대집단이 항의 전화, 방문, 온라인 반대 게시물 전파 등을 통해 인권조례를 제정하려던 지자체와 지방의회를 압박한다. “동성애를 옹호한다”는 까닭에서다. 옥천군에서도 조례 제정을 반대하는 지역 목사들은 지방의원들을 찾아가 항의하며 “조례 제정을 진행하면 시위까지 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압박은 의원의 가족들에게까지 이어졌다. 이용수 의원의 아내도 “신랑이 그런 법안을 만드는데 왜 가만히 있느냐”는 항의를 받았다.

이 의원은 ‘성소수자’라는 용어를 인권조례에서 빼는 절충안을 제안해보기도 했지만 반대단체들은 “인권조례 자체를 만들지 말라”고 요구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인권위법)에 근거해 만든 조례 자체를 인정하지 못한다는 입장이었다. 인권위법 제2조 3항은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 기준을 19개 범주로 두고 있는데, ‘성적 지향’도 그중 하나여서다. 결국 인권조례는 입법예고 일주일여 만에 의회 부의가 잠정 보류됐다. 이 의원은 “성소수자를 특별지원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천부인권에 따라 사람이 사람답게 대접받는 지역을 만들겠다는 선언인데 편협하게 바라봐 안타깝다”면서도 “의회가 지역주민 간의 갈등을 봉합하는 역할을 해야 해서 갈등이 증폭되는 걸 원치 않았다”고 보류 이유를 밝혔다.

강원 속초시, 경기 동두천시의 상황도 비슷하다. 지난해 8월14일 속초시 인권조례가 입법예고되자 같은 달 18일부터 일주일 동안 속초시의회 게시판엔 인권조례 제정을 반대한다는 취지의 게시물 150여개가 올라왔다. 반대 논리도, 조례 입법을 보류한 사유도 옥천군의 경우와 같았다. 인권조례를 대표 발의한 최종현 속초시의회 의장은 “조례안에는 성소수자와 관련된 내용이 들어 있지도 않았는데 상위법인 인권위법이 동성애를 묵인하고 있다는 이유에서 단체들이 반대했다. 찬반 논리의 정당성을 떠나 지역 화합 차원에서 조례를 잠정 보류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2018년 11월 입법예고된 동두천시 인권조례가 무기한 보류되는 과정을 지켜본 동두천시 관계자는 “입법예고가 올라간 뒤 기독교연합 쪽에서 ‘동성애 반대’ 취지로 1천여명의 서명을 받아왔다. 조례엔 성소수자 용어가 포함되지도 않았고 인권위법에 의거해 만든다는 내용도 없었지만 당연히 상위법인 인권위법에 의거해 만든다고 해석해 반대했다. 주민 의견이 수렴됐을 때 조례를 만드는 게 좋겠다 싶어서 보류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지역주민 간의 갈등 봉합”이라는 허울 좋은 구실 아래 인권조례 입법이 번번이 좌절된 것이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인 몽 활동가는 “반대단체들은 인권조례, 인권위법, 차별금지법을 한쌍으로 보고 있다”며 “인권조례가 생기면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조처를 할 텐데, 이런 움직임 자체가 동성애를 허용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힘을 실어주는 사회적 흐름이라고 봐서 반동성애 단체들이 인권조례 제정부터 막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재구 기자 j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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