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국제유가 흐름..출처: 코스콤 CHECK |
[한국금융신문 장태민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에 따라 국제유가가 급등락한 뒤 향후 그의 발언이 실현될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트럼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당선 전부터 저유가를 원한다는 입장을 드러내왔으나 최근 유가가 지나치게 폭락하자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특히 미국, 러시아, 사우디 등이 원유를 놓고 패권 전쟁을 벌이면서 그가 얼마나 역할을 할 지 관심이 커졌다.
특히 유가가 셰일업체들의 숨통을 죄는 수준까지 급락하면서 트럼프 대통령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 원가 아래로 떨어진 유가..위기에 몰린 셰일 업체들
지난 2016년 상반기엔 유가가 33달러 수준까지 떨어지자 수십 곳의 셰일 업체들이 부도를 내고 문을 닫았다.
하지만 최근 유가는 20달러 밑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는 등 그 수준마저 뛰어넘는 급락세를 나타냈다. 특히 최근 한 셰일 업체가 백기를 들면서 긴장감이 커졌다.
미국 현지시간 1일 셰일가스를 채굴·생산하는 업체 화이팅 페트로리엄(Whiting Petroleum)이 파산보호신청을 신청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시장이 큰 우려에 휩싸였다.
이 업체와 채권자들은 22억달러 규모의 부채 탕감과 자산 양도에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파산보호신청은 우리의 법정관리와 비슷하다. 파산 위기에 직면한 업체의 채무 상환 연기 등을 통해 회생을 돕는 제도다.
셰일업체들이 기술발전 등을 통해 채굴 원가를 40달러대, 심지어 30달러대 초반까지 낮춰왔으나 최근 급락한 유가에 생존을 위협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이런 상황은 미국 회사채 시장을 뒤흔들기도 했다. 셰일 업체들이 미국 정크 본드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에 달할 정도로 크다.
유가나 원유 관련 업체들의 금융시장 연결고리를 감안할 때 전체 금융시장이 다시 휘청거릴 수도 있다. 이러다보니 수천개의 기업들이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비관적인 전망까지 나올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스트롱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나설 수 밖에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단 입으로, 그리고 자신이 애용하는 트윗으로 감산을 거론했다.
■ 트럼프 발언에 급반등한 유가..의구심은 못 지워
자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윗 |
현지시간 2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WTI 선물은 전일대비 5.01달러(24.7%) 폭등한 배럴당 25.32달러에 장을 마쳤다. 장중 30% 이상 폭등해 배럴당 27.39달러로까지 치솟기도 했다.
ICE 선물거래소의 브렌트유는 5.20달러(21.02%) 오른 배럴당 29.94달러에 거래됐다. 장중 배럴당 36.29달러까지 올라갔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때문이었다. 그의 발언은 유가를 급등시키고 주가마저 끌어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통화했다. 양국이 대략 1000만배럴 감산에 나설 것을 기대한다"면서 "빈 살만 왕세자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도 통화했으며, 사우디와 러시아 감산이 최대 1500만배럴에 이를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 등을 감안해 의구심도 제기됐으며, 아시아장에선 초반 유가는 6% 급락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국내 주식시장의 정유주들은 개장시의 흥분을 뒤로 한 채 상승분을 다시 반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
다.
아울러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수요 감소, 원유 공급을 둘러싼 국가들의 힘 겨루기 등을 감안할 때 트럼프가 급락한 유가를 받쳐 올릴 수 있을지 의구심도 큰 상황이다.
■ 트럼프의 파워과 코로나 사태 진정이 결합된다면..
향후 경제 상황, 유가 흐름 등은 코로나19 사태가 언제 진정될지와 맞물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트럼프가 유가 저점을 받쳐주고 코로나19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등 양상이 긍정적으로 흘러간다면 현재 20불 수준 근처의 WTI가격이 저점 수준일 수 있다는 진단도 제기된다. 잘만 풀린다면 유가는 지금보다 배 이상 올라갈 수 있다는 전망도 보인다.
황병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원유전쟁 개입은 석유시장 수요와 공급 불확실성 공존 속에서 배럴당 20달러대로 폭락한 유가의 하방경직성을 지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더 나아가 "코로나19 일단락 시 예상되는 석유수요 정상화까지 가세하면 하반기 WTI 가격은 배럴당 50달러 돌파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 러시아, 사이디 등 주요 산유국들이 모두 급락한 유가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공조'가 재현될 수도 있다. 하지만 산유국들의 힘 대결이 만만치 않아 유가 상승을 낙관할 수만은 없다는 진단이다.
황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 ‘감산 트윗’에 대한 일부 의문들이 잔존해 당분간 높은 변동성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와 러시아 모두 양자간 통화 사실을 부인했다"면서 "일일 1,000만배럴 감산 주체도 불명확하고 이달부터 증산에 나선 사우디(1,200만bpd), 당장의 증산은 보류한 러시아(1,100만bpd)만 국한할 때 약 45% 감산이 요구돼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그 동안 OPEC+ 합의에 참여하지 않은 미국과 캐나다, 브라질 등의 감산 동참 여부도 불명확하다"고 덧붙였다.
■ 유가 문제는 거대한 파워 게임
유가 문제는 향후 원유 패권을 둘러싼 산유국들간의 헤게모니 싸움 성격이 강해 트럼프가 이를 마음대로 좌지우지 하기 쉽지 않다는 진단도 많다.
미국은 '셰일 혁명'을 통해 세계에서 원유를 가장 많이 생산할 수 있는 나라, 그리고 이젠 원유 순수출국이 됐다.
사우디와 러시아는 당연히 미국에 원유를 둘러싼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는 불안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러시아나 사우디 등 전통적인 원유 수출국들 사이에선 결국 미국 셰일업체들이 파산해야만 자신들의 입지를 유지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하인환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셰일업체들이 파산할 경우 사우디와 러시아가 얻게 되는 첫 번째 이점은 자동적으로 M/S가 높아지는 것"이라며 "두 번째는 자동적으로 글로벌 전체의 감산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셰일업체들이 파산하면 미국 원유 생산량이 감소하고, 따라서 원유 수출량도 감소한다는 것이다.
하 연구원은 "세 번째는 그 이후에 양국도 감산을 할 경우 높아진 M/S 환경 하에서 높은 가격으로 원유를 수출할 수 있다"면서 "원유 패권을 다시 가져올 수 있는 이점도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 업체들의 파산이 수요와 공급 중 어떤 부분에 우세하게 작용할지 고민을 지속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하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감산의 규모로 언급한 1,000만~1,500만 배럴이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인이 필요하다"면서 원유 시장의 복잡성을 감안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공급 측면에서만 보면, 셰일업체들의 파산 소식이 유가의 상승 요인으로 볼 수 있지만, 주식시장은 ‘하락’으로 반응한다"면서 "셰일업체들의 파산이나 구조조정은 이들 기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는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수요’의 측면에서는 부정적"이라고 진단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산 원유를 중국 등 다른 나라에 강요하는 상황에서 사우디와 러시아는 미국이 감산해야 하는 주체로 볼 수 있다.
이번 원유 패권 싸움에선 '네가 줄여라'는 식으로 나올 수 있어 이 문제를 풀기가 만만치 않은 것이다.
■ 조금 다른 그림..유가와 얽힌 중동 등의 상황
일각에선 미국채와 관련한 핵심 고리 중 하나로 중동 국가들을 꼽기도 한다.
달러 고정 환율과 중앙은행이 미국채를 들고 가야하는 상황 등을 감안할 때 이들 국가가 유가 급락을 못 견뎌 미국채를 팔기 시작하면 금융시장을 다시 폭풍 속으로 인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내심 이런 상황을 바랄 수도 있을 수 있다. 또 이란이 미국의 제재 속에 중국과 손을 잡고 버티려는 모습을 보이다가 코로나19로 큰 피해를 입었다는 진단도 있다.
이런 지정학적 리스크가 유가가 얽혀 있다. 유가가 거대한 파워 게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가운데 최근 이뤄졌던 한미 통화스왑 등도 비슷한 파워 게임 차원에서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최근 미국과 통화스왑을 체결한 나라들을 보면 모두 미국채를 많이 들고 있는 나라들이다.
향후 재정정책의 활용도가 높아질 수 밖에 없는 미국 입장에선 한국 등 미국채의 큰손 고객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
한미 통화스왑은 한국의 필요성 외에 미국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큰 거래처, 혹은 우방국을 챙길 필요성도 컸던 것이다.
미국이 한국, 싱가포르, 호주 등 동아시아권의 대중국 견제라인, 그리고 중남미에서 중요한 멕시코, 브라질과 통화스왑을 체결한 것은 자국의 이익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원유 문제엔 정치·경제적으로 거대한 이권이 얽혀 있다"면서 "당장의 이익이 문제가 아니고 생존 차원의 문제일 수도 있으며, 지정학적 리스크와도 연계된다"고 밝혔다.
그는 "트럼프의 개인기가 뛰어나긴 하지만 복잡다단한 파워 게임의 결과를 낙관만 하기도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장태민 기자 chang@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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