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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만나고 싶었어요] 국립중앙도서관 서혜란 관장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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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형 직위’는 전문성이 특히 요구되거나 효율적인 정책을 세워야 하는 자리를 공개 모집과 공개경쟁 시험으로 채용하는 직위다. 국립중앙도서관은 지난해 처음 개방형 직위로 임명된 관장을 맞았다. 도서관에 대한 사명, 실무에서 나온 깊은 이해로 무장한 ‘첫 개방형 국립중앙도서관의 리더’, 국가 대표 도서관의 발전을 위한 남다른 열정을 보이는 서혜란 관장을 만났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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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도서관이 정보 생산의 플랫폼으로 거듭납니다”

Q. 지난해 국립중앙도서관 관장으로 임명되셨습니다. 오랜 기간 도서관학을 연구하셨던 만큼 도서관에 대한 열정도 누구 못지않을 텐데요. 관장님이 처음 도서관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꿈도 크죠. 하지만 제가 중고등학생 때는 진로나 취업에 대한 개념이나 정보를 알려주는 곳이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혼자 이리저리 고민을 해봤죠. ‘그림을 좋아하니 텍스타일 디자이너를 해볼까’, ‘미술사를 공부하고 싶은데 고고학을 공부해볼까’ 하면서요. 그때만 해도 미술사학과가 없었거든요. 내 이야기를 듣던 친구가 ‘고고학 전공하면 발굴하러 다니느라 길바닥에서도 자야 할 텐데 할 수 있겠어’라고 말해 금세 포기했지만요.(웃음) 그렇지만 막연하게나마 ‘교수가 되고 싶다’는 꿈만큼은 확고했어요. 그러다 우연히 미국은 대학 도서관 사서가 교수급 대우를 받거나 교수를 겸직하고 있다는 걸 알았죠. 책을 좋아한다고 꼭 사서가 되는 건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활자 중독’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읽는 걸 아주 좋아해서 적성을 찾은 듯 기뻤어요.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도서관학이 막 연구되던 초창기였기 때문에 내가 공부할 것도 많고, 할 일도 많겠구나 싶었고요. 그렇게 고등학교 2학년 때 도서관학을 공부하기로 맘을 먹었답니다.

Q. 그렇게 연세대학교 도서관학과에 입학하게 되신 거군요.

막상 전공 공부를 해보니 생각과는 다른 면도 있었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도서관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알게 되면서 점점 사명감이 생겼어요. 처음엔 정말 열악했던 도서관이 시민 의식을 높이는 교육 센터가 되는 걸 지켜보고자 하는 열정으로 이어졌죠.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라 이렇게 국가 대표 도서관의 관장 자리까지 맡게 됐네요.(웃음)

Q. 관장님은 신라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 한국도서관협회 부회장, 국가기록관리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셨죠. 지난해 첫 ‘개방형 국립중앙도서관 관장’이 되셨는데, 개방형 직위는 어떤 점이 다른 건가요?

국립중앙도서관의 관장이라는 자리는 결국 국가 대표 도서관의 리더를 말하는데, 이제껏 사서가 관장직에 올랐던 적은 없었어요. 실질적인 운영은 모두 사서가 맡았는데도 말이죠. 저를 비롯해서 모 든 도서관인이 도서관 전문가인 사서가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 기존 행정직 공무원이 관장으로 임명됐을 때의 문제점을 지속해서 지적해왔어요.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었던 도종환 장관 역시 도서관에 대한 이해가 깊었기 때문에 정책적으로 국립중앙도서관 관장은 전문 사서로 임명해야 한다는 데에 합의를 보게 돼 개방형 직위로 모집하게 됐습니다.

Q. 치열한 경쟁을 뚫고 ‘공채’로 합격하신 거였군요.(웃음) 문헌정보학과 교수로서, 또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으로서 국립중앙도서관에 자문을 해왔으니 업무가 크게 생소하지는 않으셨을 것 같아요.

전혀 모르는 분야는 아니었지만 역시 연구자의 관점과 실무자의 시각은 달라질 수밖에 없더군요. 국립중앙도서관의 사업은 국내 모든 도서관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는 곧 전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뜻이고요. 나라를 대표하는 도서관으로서 해야 할 일이 참 많은데 지금 국립중앙도서관이 전부 해내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늘 혁신하고, 새롭게 생각하기 위해 전 직원들이 공부하고 있죠. 3년이라는 재임 기간 동안 내부적으로 역량을 갖추고, 우수한 인력들이지만 지금보다 조금 더 도전하는 조직문화로 만들어보려 해요. 사서 인원도 더 충원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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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러고 보면 사회가 국립중앙도서관에 바라는 기대치도 참 높아졌어요. 관장님이 생각하는 ‘국가 대표 도서관다운 도서관’이란 어떤 것인가요?

1945년에 개관한 국립중앙도서관은 올해로 75주년을 맞았는데요, 전국의 도서관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건 2000년대에 들어서예요. 오랜 기간 동안 국립중앙도서관은 전통적인 공공도서관 역할까지 겸해왔지만 이제는 지역 공공도서관이 그 역할을 어느 정도 감당할 만큼 성장했어요. 그러니 국립중앙도서관은 국가 대표 도서관으로서의 본래 기능에 더 충실해져야겠죠. 그러니까 빠르게 진화하는 환경과 그 변화를 적극 수용하는 도서관 서비스 모델을 만들어내고 국내외 도서관들에 전파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전통적인 공공도서관의 역할은 이미 훌륭하게 해왔으니까요. 시대에 맞춰 모범이 되고, 전국 도서관이 따라 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개발할 때가 됐어요.

Q. 전통적인 도서관의 기능이 시대에 맞춰 달라지기도 하나요?

그럼요. 국립중앙도서관은 거대한 조직이기 때문에 도태되면 공룡처럼 멸종될지도 몰라요.(웃음) 예를 들어 국립중앙도서관에는 ‘국가에서 만든 모든 문헌을 포괄적으로 수집해 우리나라의 기록문화유산으로 후대에 전승’해야 하는 기능이 있어요. 이를 위해 인쇄, 필사, 시청각, 마이크로 형태, 전자자료 또는 온라인 자료를 국립중앙도서관에 의무적으로 제출하는 ‘납본 제도’를 만들었고요.

예전에는 단행본과 인쇄물이 대부분의 도서관 자료였기 때문에 충분히 커버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출판물의 범위가 웹 자료, 웹툰, SNS로 공유되는 정보, 유튜브를 통해 게시되는 영상물까지 넓어지고 있죠. 도대체 어디까지 국가문헌으로 봐야 할까요? 매체가 변화하면서 수집 방법뿐만 아니라 유용하게 자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출판물의 정보를 요약하는 ‘서지’ 정리, 다음 세대를 위한 보존 방법까지도 완전히 다르게 생각해내야 해요. 그리고 이런 자료는 이용자가 어느 지역에 살고 있든 편하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하죠. 결국 서비스 방법론이 전반적으로 바뀌어야 한답니다.

Q. 시대에 맞춰 변화한다면 세계 속 국립중앙도서관만의 위상도 궁금해집니다. 다른 나라의 공공·국가도서관과는 어떤 차별점이 있나요?

각 나라마다 국가 대표 도서관이 있고, 형태며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한 줄로 세워서 ‘우리가 몇 등이다’라고 할 수는 없지만, 다른 나라 국가도서관들과 활발하게 교류하고 협력하면서 함께 발전해나가고 있어요. 대표적인 사업 한 가지를 소개하자면, ‘윈도 온 코리아(Window on Korea)’의 경우 한류에 관심이 많은 국가나 지역의 도서관에 한국 자료실을 만드는 거예요. 현재 26개가 설치돼 있고요. 자료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를 하면서 한류에 대한 관심이 지속되도록 돕고 있죠. 해외에서 한국학을 공부하는 분들을 위한 서비스도 지원하면서 매년 한국에 초청해 한국어 교육, 스터디 등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어요.

Q. 세계 속 한국의 위상까지 드높이려면 관장으로서 느끼는 책임의 무게가 남다르시겠어요. 올해 ‘관장직 직위 당면 과제’에서는 ‘국가도서관 정책에 관한 대국민적 공감대 형성’, ‘국민 요구에 부응한 도서관 서비스 개발’ 등 이용자와 서비스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는데요, 당장 어떤 발전 계획에 가장 힘쓰고 있으신가요?

기존의 도서관이 누군가가 생산한 정보를 수집하고, 또 다른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정보 생산의 기지가 될 거예요. 요즘 친구들은 정보 소비자이면서 동시에 생산자잖아요. 과거에는 정보 생산의 주된 방식이 책을 집필하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인쇄형태의 책뿐만 아니라 영상, 음향과 같은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제작하고 온라인을 통해 공유하는 방식이 선호되고, 또 보편화되고 있죠. 그래서 우리 도서관도 매개체 역할에서 벗어나 정보를 생산할 수 있는 플랫폼 기능을 강화하려고 해요. 그 일환으로 이번에 디지털도서관을 개편하면서 ‘미디어 창작실’을 새롭게 만들었어요. 미디어 창작실은 10개의 스튜디오와 영상·음향 편집 공간, 그리고 기획회의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각 공간에는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제작하고 편집, 공유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장비와 소프트웨어가 구비되어 있어요. 16세 이상이면 누구나 이 공간에서 오디오북을 만들거나 팟캐스트를 진행하면서 1인 크리에이터로서의 꿈을 키울 수 있을 거예요. 16세 미만이라면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의 ‘미래꿈희망창작소’를 이용하면 되고요. 끼와 재능, 열정을 가지고 스스로 정보를 생산해보고 싶은 분들 언제든 대환영입니다.(웃음) 이에 더해 페이크 뉴스와 정보를 유통할 때 숙고해야 할 윤리적인 문제를 교육하고, 바른 정보를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도록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 교육도 제공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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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과 성인 모두 문해력을 갖춰야 지속가능한 국가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Q. 도서관은 정보를 이용하는 곳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생산까지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다니, 콘텐츠에 대한 접근 방식이 굉장히 새롭네요. 얼른 이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렇다면 해마다 떨어지는 독서율을 높일 수 있는 명쾌한 해답이나 계획은 없을까요?

문화체육관광부는 2년에 한 번씩 ‘국민독서실태조사’를 해요. 다들 알다시피 독서율은 해마다 떨어지죠. 그런데 이번에는 독서율과 독서량의 감소 등 수치에 주목하기보다 ‘왜 독서를 안 하는지’ 그 이유에 집중해봤어요. 성인들은 역시 부족한 시간을 이유로 꼽았죠. 그런데 청소년이 책을 읽지 않는 이유 2위가 뭔지 아세요? 바로 ‘책 읽기가 싫고 습관이 들지 않아서’라는 거였어요. 독서교육 전문가에게 들었더니 청소년 중에는 교과서도 읽지 못하는 난독증에 가까운 아이들이 많다고 하더군요. 제대로 된 ‘읽기 교육’이 전혀 안 되고 있다는 소리예요. 이 문제는 국립중앙도서관이 혼자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죠. 학교와 국민이 함께 원인을 진단하고 해법을 풀어나가야 할 겁니다. 그 가운데 분명히 우리의 역할이 있을 거고요.

Q. 다른 이유도 아닌, ‘그냥 책읽기가 싫어요’라는 대답은 정말 충격적이네요. 국립중앙도서관이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하는 움직임에 대해 여쭤보고 싶었는데, 이런 뜬구름 잡는 질문을 할 때가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어요.(웃음)

사람들은 ‘21세기형 인간’ 하면 코딩, 테크니컬, 수학 등을 생각하지만 전문가들이 말하는 ‘21세기형 인간’은 ‘4C’ 역량을 고루 갖춘 사람을 말해요.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창의성(Creativity), 의사소통 능력(Communication), 협업 능력(Collaboration), 총 네 가지죠. 이게 오직 테크닉을 연마한다고 가질 수 있는 역량일까요? 전혀 아니거든요. 인문학이 배경이 돼야 갖출 수 있는 재능이에요. 그리고 인문학적 사고는 독서를 통해 기를 수 있고요.

Q. 테크닉을 주입하는 게 아니라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21세기형 인간이 된다는 말씀이군요.

조금 먼 과거 이야기를 예로 들어볼게요. 1950년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계가 미국과 소련으로 크게 나눠져 냉전 기간을 갖고 우주 개발 경쟁을 펼쳤던 적이 있어요. 그런데 소련이 1957년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발사했어요. 이전까지만 해도 과학기술 분야에서 소련을 압도하고 있다고 믿었던 미국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죠. 이를 ‘스푸트니크 쇼크(Sputnik Shock)’라고 해요.

이후 미국 정부는 그때까지의 교육법을 모두 뜯어고쳤어요. 초등학교 교육부터 혁신을 시작하고, 무엇보다 공공 도서관에 투자를 시작한 ‘도서관 진흥법’을 만들었어요. 이전까지 도서관은 미국 각 주에서 자체적으로 관리했기 때문에 지역 편차가 심했죠. 그런데 연방 정부 차원에서 모든 도서관에 예산을 지원하며 공공 도서관을 짓기 시작한 거예요. 도서관에 대한 지원은 여전히 미국 의회에서 절대로 줄이지 않는 예산 중 하나예요. 공공 도서관과 독서에 대한 투자야말로 인재를 기르는 기본이며 근본이라는 걸 미국은 1950년대에 깨달았던 겁니다. 그리고 그때의 지원으로 지금 미국이 과학기술 강대국으로 발전한 거고요.

Q. 그런데 요즘 청소년들도 ‘텍스트’는 많이 읽잖아요. 모바일, 온라인으로 글이나 영상을 보는 분량은 많을 텐데, 책 읽는 것과 다를 게 있을까요?

아날로그, 즉 인쇄물에 적힌 글과 디지털 텍스트를 읽는 데에는 다른 두뇌의 회로가 사용된다고 해요. 그런데 지식, 이해력, 사고력, 문제해결력, 비판력 및 창의력과 같은 정신능력인 ‘인지능력’은 인쇄물을 읽었을 때만 높아집니다. 즉, 전통적인 독서, 기초 책 읽기를 통해 인지 능력이 발달한다는 뜻이죠. 디지털 매체에만 치중한다면 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로봇의 노예’가 될 수도 있어요.

Q. 정신이 번쩍 드는 연구 결과군요. 이 글을 읽는 청소년 친구들 중에도 경각심을 느끼는 친구들이 있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을 청소년 친구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서울 역삼동에 위치한 분관인 어린이청소년도서관은 어린 청소년 친구들이 주체가 되는 프로그램을 여러 가지 진행하고 있어요. ‘메이커 스페이스’에서는 3D프린터 등으로 물건을 만들어볼 수 있고요, 인공지능과 증강현실, 코딩 등 정보기술을 체험하면서 관련된 책을 읽는 시간을 제공하는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단지 첨단 기술을 맛보기로 체험하는 곳이 아니라 마지막엔 책과 독서로 귀결되는 프로그램을 만든 거죠. 올해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한 ‘청소년 책의 해’이기도 해요. 청소년 시기는 정신과 육체가 모두 자라는 때예요. 그만큼 독서가 아주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고요. 여러분이 도서관을 그저 책 읽고 공부하는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자유롭게 열린 곳, 학교 밖 청소년과 소외계층 친구들도 위화감 없이 섞여 즐길 수 있는 개방된 공간이라고 생각해주세요. 국립중앙도서관이 다시 이용자에게 활짝 문이 열릴 그날, 이곳에서 만나길 바랍니다.

글 전정아·사진 손홍주

전정아 MODU매거진 기자 jeonga718@modu1318.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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