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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크리틱] 범죄와 음악 사이 / 미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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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엠씨더맥스가 곧 데뷔 20주년 기념 앨범을 발매한다. 이들의 곡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정서가 있다. 사랑을 ‘지키지’ 못한 자신의 힘없음을 연민하며 상대의 의사와 크게 상관없이 사랑을 되찾겠다고 다짐하는 내용이다. 엠씨더맥스가 창안한 것은 아닐지라도 한국 록 발라드에서 흔히 발견되는 이런 정서를 잘 보여주는 대표작들이 이들의 히트곡이다. 그러니 이들의 20주년이 비평적으로 아무런 가치가 없지는 않다. 이를테면 그런 비장하고 일방적인 감정이 현재 우리 사회 현실에서 긍정할 만한 것인지 이야기해볼 수도 있다. 다만 미성년자를 포함한 다수의 여성을 성착취한 ‘엔(n)번방’ 사건이 사회적으로 이슈화되는 시점은 공교롭게 느껴진다. 엠씨더맥스의 이수는 2009년 미성년자 성매수 사건으로 기소유예를 받은 바 있다.

어떤 인물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을 때 공적 활동을 지속해도 되는가 하는 의문을 가져본다. 활동 자체를 원천적으로 막는다면 이는 검열이라 할 수도 있다. 이상론이라면, 그를 보고 싶지 않다는 데에 우리 사회 전반이 공감할 만큼 큰 물의를 일으킨 인물(이를테면 성범죄자)은 수요가 없어서 영향력을 잃어가는 형태일지 모르겠다. 지금 티브이에 출연하고 있는 이들 중에는 크고 작은 범죄 이력을 지닌 이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또한 그런 인물들의 출연이 거슬리지 않거나, 나아가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때론 ‘태도’가 나쁘다는 수준의 불만이 성범죄 등 명백한 윤리적 문제를 넘어서는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니 석연치 않은 구석은 많다. 어쨌든 물의의 정도와 공적 영역 노출 여부에 대해서 우리 사회는 별다른 합의를 이루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주요 음원 플랫폼과 연예 매체도 엠씨더맥스를 배제하지는 않는다. 어쨌든 팔리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이 단순히 시장을 반영하는 건 아니다. 경쟁이 치열한 가요계에서 음원 플랫폼이 제공하는 이벤트나 자동완성 검색어, 음원 추천 등이 흥행에 크게 기여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각종 매체도 보도자료를 복사해 기사로 냄으로써 “애틋한 감정을 고조시키는”, “이수의 감미로운 보컬”, “음원 차트 1위”, “가슴속 깊은 울림” 등 기획사가 미리 준비한 상찬을 그대로 유통한다. 사실상 흥행에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이수는 최근 개인 방송에서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며 “도가 지나친” 경우에 대응하겠다고 발언했다. 적반하장이다. 11년 전 미성년자 성매수 혐의는 호불호가 아닌 윤리적 판단의 문제다. 그의 공적 활동 여부는 논란의 대상일 수 있지만, 그의 과거 행적은 그렇지 않다. 엠씨더맥스를 좋아하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가 있다면, 후자가 엠씨더맥스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전자가 ‘윤리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디어와 플랫폼도 입장을 정해야 한다. ‘윤리에도 불구하고’ 그의 활동을 지원할지 말이다. 그리고 그에 따르는 윤리적 무게를 져야 한다.

어떤 일을 20년간 했을 때 이를 기념하고 싶을 수는 있다. 타인의 손가락질이 아플 수도 있고, 도를 넘는 인신공격은 누구에게나 고통스럽고, 위로가 필요할 수도 있다. 정 원한다면 음악을 지속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대중을 향한 호소는 이야기가 다르다. 이수는 팬들이 “자신의 일처럼 싸우거나” 속상해하지 말았으면 한다고 당부했지만, 그가 평안을 기원해야 할 대상은 팬들이 아니라 자기 범죄의 피해자다. 공인이든 사인이든, 음악가든 아니든, 공적 채널이든 대중이든, 이수의 활동을 지지하든 반대하든, 최소한 단 하나의 합의점이 있다면 그것이어야 한다.

한겨레



미묘 l <아이돌로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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