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으로 글을 연다. 다음 단어의 공통점은 뭘까.
①테이크원 ②신원(SceneOne) ③플릭스닷컴 ④나우쇼잉 ⑤비디오픽스 ⑥이플릭스(E-Flix) ⑦시네마센터 ⑧웹플릭스 ⑨넷픽스 ⑩렌트닷컴….
넷플릭스는 처음부터 넷플릭스가 아니었다. 상관성이 결여돼 보이는 위 단어군은 넷플릭스의 사명 후보였다. 화이트보드에 적힌 10개 단어 가운데 유력했던 이름은 사실 7번이었고, 심지어 창업주인 이 책 저자는 10번을 밀다 고배를 마셨다.
글로벌 미디어 기업 넷플릭스의 탄생 비화로 꽉꽉 채운, 즐겁고도 유의미한 책이 출간됐다. 넷플릭스 창업주이자 첫 번째 CEO인 마크 랜돌프의 회고록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야'는 23년 전의 어느 날로 시계추를 돌려 그날들을 기쁘게 추억하면서 동시에 창업의 본질을 꿰뚫는 책이다.
바야흐로 때는 1997년, 그가 처음부터 영화를 팔려던 건 아니었다. '인터넷으로 뭔가 팔고 싶다'는 추상뿐이었다. 야심차게 준비한 예상 아이템은 운동기구에서 서핑보드로 바뀌었다가 한때 개밥(kibble)도 물망에 올랐다. 랜돌프가 치약에 이어 심각한 얼굴로 "그렇다면, 샴푸!"라고 외치자 타사 CEO 출신 공동창업주 리드 헤이스팅스는 말했다. "더 이상 샴푸 이야기는 하지 마." 난상 토론 끝에 비디오테이프 배송 서비스가 논의됐고, 막 시장에 선보이기 시작한 DVD에 눈길이 갔다. 무모하기 짝이 없는 여정이었다.
랜돌프는 7명으로 팀을 꾸렸다. 박봉이었지만 스톡옵션과 사업의 미래 가능성을 보고 기꺼이 랜돌프에게 협력한 인재였다. 미국에 출시된 모든 DVD를 확보하고 소니·도시바와 제휴해 DVD플레이어를 구매하면 넷플릭스 무료 대여 쿠폰을 주는 구상으로 출발했다. 고조된 분위기 이면에서 고쳐야 할 난제만 수백 가지, 아니 수천 가지였다. 주문자와 접속자 수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날의 연속이었다. 연체료도 약점이었다. 비디오테이프 대여점과 다를 바 없어서였다. 고객에게 설문 이메일을 보냈다. 선택지는 이랬다.
첫째, DVD 네 장을 빌려 원하는 기간만큼 보유한다. 한 장을 돌려주면 곧장 다른 DVD를 빌릴 수 있다. 둘째, 미리 영화 목록을 작성하고 DVD를 반납하면 자동으로 배송받는다. 셋째, 월간 이용료를 내고 DVD를 빌린다…. 생각의 끝에서 도출된 집단지성의 결론은 대여기간 무제한에 연속 배달해주며 연체료까지 없는 최초의 월간 이용 서비스였다.
닷컴 열풍이 붕괴돼 직원을 감원하는 아픔을 겪었으나 최고 인재만 남겨 '미국 전역 1일 배송'에 '100만명 이용자'란 목표에 서둘러 달성한 이야기,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최대 원칙은 'OPM'이므로 반드시 따르라는 제언, 저자 랜돌프의 할머니가 위대한 지성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의 조카란 사실도 흥미롭다. 참, OPM은 '다른 사람의 돈(Other People's Money)'의 약어로 "사업을 시작할 때, 다른 사람의 돈'만' 활용하라"란 실리콘밸리 은어란다.
넷플릭스 현 CEO인 공동창업주 헤이스팅스가 영화 '아폴로13'의 비디오테이프 연체료 40달러를 내고 넷플릭스 사업을 처음 구상했다고 알려졌으나, 랜돌프는 그런 계시는 사실과 달랐다고 부언한다. 번개 치듯 번쩍하는 순간이란 판타지 영화이며 수천 가지의 아이디어를 조율해 하나만을 최선으로 만드는 다큐멘터리가 사업이라는 제언은 묵직하다.
우스갯소리 하나 더 가능할까. 이 기사 상단에 랜돌프의 사업 아이템 '개밥'을 영문(Kibble)으로 부기한 이유가 궁금하지 않으신지. 넷플릭스가 '넷플릭스'로 호명되기 전, 그러니까 서두에 언급한 7번 '시네마센터'가 거론되기 전, 넷플릭스의 이 서비스를 직원들이 불렀던 이름은 바로 '개밥닷컴'이었다. 유료가입자 1억8000만명을 돌파한 넷플릭스를 우리가 '개밥'으로 부를 뻔했다는 얘기다. 저자 랜돌프는 자신의 초기 이메일이 지금도 건재하다고 후술한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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