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 당한 571명 중 520명 노조원
사측 “일부 근무…수주 90% 급감”
미얀마의 ㄱ봉제공장 해고 노동자들이 지난달 공장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노조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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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의류업체가 운영하는 한 미얀마 봉제공장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비노조원은 남겨둔 채 노조원 전원을 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노조원들은 “한국 고용주가 코로나19를 핑계로 노조를 탄압했다”며 복직을 요구 중이다. 값싼 노동력과 규제 완화 등으로 동남아시아에서 혜택을 본 한국 기업들이 현지 노동법을 준수하지 않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21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지난 3월28일 미얀마 양곤에 있는 ㄱ봉제공장에서 노동자 571명이 해고됐다. 이 중 520명이 노조원이었다. 본사 측은 “코로나19로 인한 주문 감소”를 사유로 들었다. 본사는 나머지 노동자 700명의 고용은 유지하고 지난달 보름간 공장을 중단시킨 뒤 이달 초부터 재가동했다.
ㄱ공장의 본사는 한국 의류업체인 ㄴ사다. ㄴ사는 2017년 초 미얀마에 현지 투자법인인 ㄱ공장을 설립했다. 이후 미얀마에서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 방식으로 자라, 망고 등 유명 의류브랜드 제품을 생산해왔다.
ㄱ공장 노조위원장 마웅 모에(27)는 이날 경향신문과 e메일 인터뷰하면서 “사측은 노조가 사라지기를 원한다. 인간으로 대접해달라는 요구를 지우려고 한다. 코로나19를 핑계로 쫓아내려고 한다”고 했다. 2017년 5월부터 공장에서 일했다가 해고당한 온마 민(34)은 “우리가 불공정하고 불법적으로 해고당했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노동자들은 당장 생계의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고 했다.
노조원들은 해고 통보 직후 회사 앞 농성에 들어갔다가 4월6일 농성을 중단했다. 미얀마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를 권고했기 때문이다. 모에 위원장은 “집회 제한이 끝나면 회사 앞에 파업 농성장을 다시 설치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 기업들은 저렴한 노동력, 규제 완화 등 혜택을 받으려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생산공장을 세워왔다. 일부 기업들은 이익을 보면서도 노동법을 지키지 않거나 편법을 활용해 노동권 보장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았다. ㄱ공장 노조 등에 따르면 미얀마, 필리핀, 인도네시아의 일부 한국 업체들은 노조를 없애기 위해 단기적으로 공장 문을 닫은 뒤 비노조원을 새로 고용한다.
■사측 “해고 전 미얀마 정부 허가 받아”
글로벌 유명 패션업체들“복직시켜야 거래 유지”
공장 이름이나 등록자 등을 변경해 새 회사인 척 속여 노조원들을 해고하고 새로 인력을 채용하는 행태도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미얀마 노동법은 고용주는 단체 가입, 인종, 종교, 성별, 나이 등을 이유로 고용에 차별을 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미얀마 노동자들이 받는 대우는 열악하다. 미얀마 의류업계 공장 소속 노동자 약 50만명이 받는 임금은 하루 약 3.50달러(약 4300원)다. ㄱ공장 노조는 수차례 파업을 거쳐 하루 약 4.75달러(약 5530원)로 임금을 올렸다. 모에 위원장은 “미얀마 산업 지역에 위치한 원룸 아파트 한 달 임대료는 약 100달러(약 12만3030원)다. 여전히 임금은 ‘생활임금’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했다.
노조는 자라·망고 등에도 이러한 사실을 알렸다. 자라·망고 등은 ㄴ사 측에 현재까지 복직을 요구하는 노조원 20여명을 복직시키지 않으면 추가 거래를 하지 않겠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ㄴ사는 미얀마 노동부의 중재위원회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모에 위원장은 말했다. “한국 고용주는 노조의 존재와 권리를 존중해야 합니다. 우리는 한국이 법과 인권을 지키는 국가라고 생각하지만 이 회사는 정반대입니다. 회사가 법을 어길수록 미얀마인들이 한국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한국 고용주들을 환영하지만, 그들이 우리를 동물이 아닌 권리를 가진 인간으로 취급하길 바랍니다.”
ㄴ사 관계자는 이날 경향신문 기자와 만나 노조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노조원을 특정해 해고한 것이 아니다. 노조원 100여명이 공장에서 근무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해고는 근무태도와 생산성 등을 근거로 했다. 다만 노조원이 파업 등으로 결근이 잦을 수 있으니 해고 명단에 노조원이 많이 포함됐을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해고 전에 미얀마 노동부의 허가를 받았다. 코로나19 사태로 수주가 급감하면서 인력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19 감염을 막고자 노동자를 거리 두고 배치하기 위한 목적이기도 했다. 현재 수주가 작년 대비 90% 줄어들어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이보라 기자 purp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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