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27일 오전 유재수 전 부산 경제부시장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김지호 기자 |
현 정권의 친문(親文) 실세들과 가까운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이 4700여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법원에서 집행유예 형을 받고 석방되는 날, 공교롭게도 1억원대의 뇌물을 받은 전직 군사법원장은 징역 4년의 중형을 선고 받았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사건 내용이 다르다고는 해도 너무 고무줄 판결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재판장 손동환)는 1억원대 금품을 받은 이동호 전 고등군사법원장에게 징역 4년의 실형과 벌금 6000만원, 추징금 9410만원을 선고했다. 이 전 법원장은 군부대에 패티 등을 납품하는 식품 가공업체 대표로부터 청탁 명목으로 6210만원을 받고, 4년간 매달 100만원씩 3800만원을 받는 등 1억대 뇌물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는 “이 전 법원장의 범행으로 군 사법체계의 공정성과 청렴성, 이를 향한 일반 사회의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됐으며 성실하게 근무하는 대다수 군 법무관들이 자긍심에 상처를 입었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비슷한 시각 서울동부지법 형사11부(재판장 손주철)는 4700만원대의 뇌물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유 전 부시장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벌금 9000만원을 선고했다. 금융위원회 국장 출신의 유 전 부시장은 2010~2018년 투자업체나 신용정보 대표 등 4명으로부터 4700여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작년 12월 구속 기소됐다. 이날 집행유예 판결을 받음에 따라 유 전 부시장은 구속 5개월만에 석방됐다. 유 전 부시장은 판사의 집행유예 선고가 내려지자 표정 변화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재판부는 유 전 부시장이 친분 있는 업계 관계자들로부터 자신이 쓴 책값, 오피스텔 월세와 관리비, 항공원 비용, 골프채 등을 뇌물로 받은 혐의는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유 전 부시장이 자신의 동생 일자리와 고등학생 아들의 인턴십 기회 등을 업계 관계자들로부터 제공받은 점은 “유 전 부시장이 유무형의 이익을 받은 것으로 평가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유 전 부시장 아들이 업계 관계자에게 수표를 받은 것에 대해서도 “개인적인 친분관계에 의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며 무죄로 봤다.
법조계에서는 유 전 부시장에 대해 재판부가 봐주기 판결을 내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유 전 부시장 재판부는 집행유예 판결 보도자료를 내고 “피고인(유 전 부시장)과 공여자들 사이에 사적인 친분관계도 이익 등 수수의 큰 이유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이를 고려하면 피고인이 수수한 개별 뇌물의 액수가 크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또 “피고인으로서는 공여자들이 사적인 친분 관계에서 선의로 재산상 이익 등을 제공한다고 생각했을 여지가 전혀 없지 않다”며 “피고인이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전혀 없는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고 밝혔다.
법조계 관계자는 “유 전 부시장은 오랜 기간 자신이 저술한 책값, 오피스텔 사용대금, 항공권 요금, 골프채 등을 공짜로 받았고 재판부도 이를 인정했다”며 “이 전 법원장과 유 전 부시장 모두 고위공직자 신분으로서 오랜 기간 금품을 받으며 죄질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정권 실세로 불린 유 전 부시장에 대해서만 이례적으로 법원이 집행유예를 내린 것으로 비칠 수 있다”고 했다.
실제 대법원 뇌물 범죄의 양형기준에 따르면, 뇌물 수수액이 3000~5000만원 구간에 해당할 경우 징역 기본 3~5년을 선고 해야 한다. 가중 처벌 될 경우 징역 4~6년, 감경 될 경우 징역 2년6개월~4년을 선고해야 한다. 재판부가 인정한 유 전 부시장의 뇌물 액수는 4221만 2224원이다. 더군다나 유 전 부시장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고, 3급 이상 고위 공무원에 해당하는 등 집행유예 감경 사유보다는 가중 처벌 사유가 더 많다는 게 법조계 지적이다. 법원 내부에서조차 “양형 기준에 못미치는 판결”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유 전 부시장 측은 이날 재판이 끝나고 유죄가 선고된 뇌물 혐의에 대해서도 “대가성이 없었다는 기존 입장은 그대로”라며 법원에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박국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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