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최초 반인종차별 단체 설립 성지예씨 인터뷰
"당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힘 모아 인식 개선해야"
네덜란드 한인 최초 인종차별 반대 NGO 단체 설립한 성지예씨 © 뉴스1 차현정 통신원 |
(헤이그=뉴스1) 차현정 통신원 = "하루 종일 내 몸에 카메라를 장착하고 네덜란드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평범한 동양 여성이 평균적으로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을 당하는 횟수를 기록해본다면 아마 네덜란드 사람들이 제 말을 믿을 수도 있겠어요. 그들은 평생 인종차별이란 걸 당해보지 않아서인지, 제가 어떤 기분인지 인식하지 못했거든요."
네덜란드에서 한인 최초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비정부기구(NGO)를 설립 중인 성지예씨는 <뉴스1>과 만나 이같이 말을 꺼냈다.
성씨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국제인권단체에서 전략컨설턴트로 활동하다 동양인 차별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아시안보이스유럽(Asian Voices Europe)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 "니하오, 칭챙총은 이젠 귀여운 수준" : 유럽에서 동양인들이 가장 자주 듣는 인종차별적 발언은 '니하오'일 것이라는 게 대부분 한국인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해맑게 다가와서 '니하오'라고 인사하거나, 과격한 행동을 하며 '칭챙총'(중국어 발음을 비하하는 인종차별적 단어)을 뱉고 사라지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차라리 니하오랑 칭챙총은 귀여운 수준의 인종차별로 느껴져서 이제는 기분이 나쁘지도 않을 정도죠. 신체적인 위협을 당하고, 집 대문 옆에 나치(하켄크로이츠) 문양의 낙서를 해놓고 도망가거나 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식의 공격적인 인종차별을 당하는 한국인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설문 조사를 통해서 알게 되고 충격을 받았어요."
성씨가 인종차별 반대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자신이 당했던 차별적 경험을 SNS를 통해 알리면서다. 이는 금세 네덜란드 내 한인 수백명의 공감을 얻어 공론화됐고, 자신만의 경험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성씨는 동양인 혐오에 맞서고자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힘을 모으기로 결심했다.
◇ "횟수·형태 다양한 인종차별…트라우마로 이어져" : 성씨는 제일 먼저 온라인을 통해 네덜란드 거주 한국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달 중순까지 그가 신고받은 인종차별 사건은 총 194건에 이른다.
이 가운데 피해자는 여성이 72%, 인식된 가해자는 52%가 남성이었다. 언어적 차별 행위는 33%, 물리적인 신체적 마찰 6%, 그 외 명시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차별 행위 56%로 나타났다.
주네덜란드 한인들은 인종차별을 단순히 알리는데만 그치지 않고 네덜란드 정부 및 민간 단체와의 협력을 통해 대책 마련 및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의견이 많았다.
"처음에는 여태까지 당한 인종차별에 대해 서슴없이 이야기를 해보자고 시작했는데, 신고되는 횟수나 인종차별의 형태가 매우 다양하고 피해자에게는 굉장한 트라우마로 남는 것을 보고 이제는 우리가 당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할 때라고 판단했습니다"
"물론 인종차별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네덜란드 사람들이 많지만,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그보다 더 많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인종차별을 당해도 혼자 분을 삭히거나, 불쾌함을 소극적으로 표현하는데 익숙해져 있지 않았나요?"
◇ 코로나19 사태, 동양인 혐오 불붙여 : 네덜란드는 유럽 내에서도 '인종의 용광로'로 불릴 정도로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개방적이며 관용적인 사회라고 알려져 있다. 이는 식민지 지배 과정에서 네덜란드에 인도네시아, 수리남 등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인종이 유입됐기 때문이다.
2017년 기준 네덜란드 전체 인구의 20% 이상은 네덜란드계 게르만 백인을 제외한 인종이다. Δ유럽계 백인 9.88% Δ터키계 2.34% Δ모로코계 2.29% Δ인도네시아계 2.13% Δ수리남계 2.05% Δ카리브계 0.90% 등 소수인종이 많다.
하지만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았을 뿐, 그동안 유럽 내에 잠잠하게 수면 밑에 깔려있던 인종차별 행태가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아시아인 혐오로 번지는 불씨가 됐다는 의견이 많다.
네덜란드 내 동양계 커뮤니티에서는 매일 인종차별에 대한 불만과 두려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인들은 봉쇄조치가 완화되면서 동네에 조깅을 나가려도 해도 인종차별에 대한 두려움에 포기하게 되는 날도 많다.
◇ 네덜란드 사회는 뒷짐만…"우리가 직접 나서야" : 이미 네덜란드 내에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동양인에 대한 혐오범죄 사건들이 여러 번 매체를 통해 알려졌었다. 하지만 네덜란드 정부나 사회단체에서 어떠한 조치를 취한 적은 없었다.
성씨는 "제가 먼저 이 문제를 네덜란드 언론에 알리려 했을 때, 대부분의 매체는 관심조차 없었다"며 "오직 1군데에서만 인터뷰 연락이 왔으며 심지어 최초로 연락이 온 곳은 미국의 온라인 매체였다. 인종차별에 대한 법적인 부분도 네덜란드는 독일에 비해 모호했다"고 실태를 지적했다.
이에 따라 AVE 멤버들은 동양인 차별과 혐오 실태를 우선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AVE는 인종차별 경험을 신고하고 상담을 받을 수 있는 핫라인 개설 요청과 공공 방송을 통한 인식 개선 및 교육을 기획하며 한 발짝씩 나아가고 있다.
또 다른 반(反)인종차별 단체들과 연대하고 조직적인 운영을 위해 네덜란드 내 민간기구 등에 보조금도 신청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성씨는 "이번을 계기로 우리가 움츠려들지 말고, 힘을 모아서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언제까지 '가해자가 뭘 몰라서 그랬을거야, 그런 걸로 인종차별이라고 하면 안 되지'하면서 사태를 덮기만 할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네덜란드 내 한인들의 많은 관심과 지지를 당부했다.
성지예씨가 설립한 '아시안보이스유럽' NGO단체 페이스북 페이지 © 뉴스1 차현정 통신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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