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인들의 탈출 열풍, 본격화할 조짐
왼쪽 사진은 홍콩을 떠나려는 사람들, 오른쪽 사진은 홍콩 거리에 붙어 있는 대만 이민 설명회 포스터다./서우후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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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홍콩달러를 미화로 바꾸려고 해요. 여차하면 홍콩을 떠나야 하니까.”
홍콩 학자 탄모씨는 29일 자유아시아방송(RFA) 인터뷰에서 홍콩에 갑작스레 이민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홍콩 전역의 환전소에서는 홍콩달러나 위안화를 달러로 바꾸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홍콩 삼수이포의 한 환전소 매니저는 "달러는 물론 영국 파운드, 일본 엔화 등의 외화도 바닥났다"며 “미국이나 싱가포르 은행에 계좌를 신설하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고 했다.
향후 홍콩의 특별지위가 박탈되면 '달러 페그제'(통화가치를 미국 달러화 대비 일정 범위 내로 묶어두는 제도)가 폐지돼 달러 유동성이 부족해질 것이란 소문도 이민을 준비하는 홍콩 시민들의 발걸음을 환전소로 이끌었다.
홍콩 시민들이 이민을 결심하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외화 확보다. 페그제 폐지로 달러 유동성이 부족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홍콩 시민들의 달러 확보전도 치열해졌다/RFA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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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 ‘탈출 열풍’이 시작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중국이 28일 홍콩의 자치권을 위협하는 홍콩보안법 제정을 결정하자 불안감이 커진 홍콩 시민들이 코로나 와중에도 이민 준비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짧은 기간 내에 홍콩의 국제적 위상이 추락하고, 자유와 인권에 제한이 가해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면서 탈출 행렬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홍콩 이민 서비스 전문업체에는 해외 이민 문의가 최근 급증했다. 이민 서비스업체의 한 임원은 29일 빈과일보에 “홍콩보안법 제정 소식이 들려오자 하루 만에 대만 이민 문의가 평소 10배 수준으로 늘었다"며 "많은 사람이 구체적인 이민 요건을 물어봤다"고 했다.
홍콩 시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이민 지역은 대만이다. 홍콩에서 반중시위가 격화된 지난해 6월 이후 대만으로 이주한 홍콩 시민은 5858명에 달한다. 2018년에는 4148명이었다. 올해는 대만으로 유학 가는 홍콩 학생 수도 급증했다. 전년보다 65% 늘어난 3427명이 대만 대학에 진학한다. 석·박사 과정까지 합치면 5000 명을 넘긴다.
대만은 아예 홍콩 시민들의 이주를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27일 대만으로 이민 오는 홍콩 시민을 위한 ‘홍콩 인도주의 원조 행동’ 계획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대만 정부는 이날 홍콩 시민 지원 전담팀을 만들어 한 주 안에 홍콩 시민의 대만 거주 지원책을 내놓겠다고 했다.
홍콩 길거리에 붙어 있는 대만 이민 설명회 포스터./서우후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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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금융도시인 싱가포르로 향하는 홍콩 시민들도 늘고 있다. 홍콩 매체들은 홍콩의 부유층과 외국인 투자자들이 홍콩 내 자금을 빼내 싱가포르로 이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싱가포르의 국제학교에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자녀 입학과 관련한 홍콩 시민들의 문의가 늘었다.
호주와 캐나다 이민에 대한 문의도 급증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홍콩 이민국에 들어오는 호주·캐나다 이민 관련 문의가 과거에 비해 80% 이상 늘었다.
영국은 홍콩 시민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거나 이주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프리티 파텔 영국 내무장관은 중국이 홍콩보안법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홍콩 시민 750만명 가운데 영국해외시민(BNO) 여권을 가진 30여만명에 대해 영국 시민권을 획득할 기회를 부여할 수 있다고 밝혔다고 영 BBC가 28일 전했다.
BNO 여권은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기 전에 홍콩 시민들에게 발급된 여권이다. 비자 없이 6개월간 영국에 체류할 수 있다. 영국은 이 체류 기간을 늘려서 취업 기회를 확대하거나, 일부는 시민권까지 받을 수 있게 배려하겠다는 계획이다. 실제 정책이 시행되면 BNO를 가진 홍콩인들이 대거 영국 이민을 택할 것으로 보인다.
[이벌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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