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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1 (일)

이슈 정치계 막말과 단식

폭파·막말에도, 문 대통령 대답은 인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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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원로 만나 “현 상황 안타깝다”

김여정 “맹물에 얹혔나” 대통령 비난

청와대 오전엔 “예의 갖춰라” 격앙

김연철 “남북관계 악화 책임” 사의

북 “남측 특사파견 간청 김여정 불허”

북한군, 금강산·개성 병력배치 선언

판문점 선언 이어 군사합의 파기

북한군 최전방부대 철모 쓰고 착검

중앙일보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역대 정부 외교안보 분야의 원로들을 청와대 상춘재로 초청해 낮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 함께 오찬을 했다. 최근 급격하게 악화된 남북관계가 주제였다. 문 대통령이 이날 박재규·이종석·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 서훈 국정원장(왼쪽부터)과 대화하고 있다. 이날 오찬에는 고유환 통일연구원장,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박지원 전 의원 등도 참석했다. [사진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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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개성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이튿날인 17일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또 담화를 냈다. 이번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역스럽다” “비열하고 간특하다” 등 막말을 쏟아냈고, 청와대는 “무례하고 몰상식하다”고 맞받았다. 다만 문 대통령 자신은 이날 “인내하며 난국을 극복해야 된다”는 의지도 밝혔다. 김여정은 이날 ‘철면피한 감언이설을 듣자니 역스럽다’는 제목의 담화에서 문 대통령의 6·15 공동선언 20주년 연설 및 15일 수석·보좌관 회의 발언을 두고 “맹물 먹고 속이 얹힌 소리 같은 철면피하고 뻔뻔스러운 내용”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이 “나와 김정은 위원장이 8000만 겨레 앞에서 했던 한반도 평화의 약속을 뒤로 돌릴 수는 없다”고 한 데 대해서다.

문 대통령은 보다 적극적으로 남북이 돌파구를 찾자는 취지였는데, 김여정은 “남조선 당국자는 북남관계를 견인해야 할 책임 있는 당사자인데, 진전을 이루지 못하는 게 죄다 외적 요인에 있는 듯 밀어버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상전 눈치나 보며 국제사회에 구걸질하러 다닌 것을 끊임없는 노력으로 포장하는 건 여우도 낯을 붉힐 비열하고 간특한 발상”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한·미 동맹을 겨냥했다. “북남 합의보다 동맹이 우선이고 동맹의 힘이 평화를 가져온다는 맹신이 남조선을 지속적인 굴종과 파렴치한 배신의 길로 이끌었다”면서다.

김여정의 ‘말폭탄’에 청와대가 강하게 반박했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의 15일 기념사는 전쟁의 위기까지 어렵게 넘어선 지금의 남북관계를 후퇴시켜서는 안 되며 남과 북이 직면한 난제들을 소통과 협력으로 풀어 나가자는 큰 방향을 제시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북측이 김여정 제1부부장 담화에서 이러한 취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매우 무례한 어조로 폄훼한 것은 몰상식한 행위다. 그간 남북 정상 간 쌓아온 신뢰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일이며 북측의 이러한 사리 분별 못 하는 언행을 우리로서는 더 이상 감내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전날 폭파 직후 김유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이 “강력히 대응할 것임을 엄중히 경고함”이라고 한 것보다도 강경했다. 특히 ‘몰상식’ ‘사리 분별’ 등의 직설적 표현을 택한 건 문 대통령에 대한 김여정의 비아냥이 도를 넘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김여정이 담화에서 스스로 ‘말폭탄’을 터뜨린다며 ‘멋쟁이 시늉’ ‘특사 파견 불허’ 등의 표현으로 문 대통령을 사실상 조롱하자 맞받아친 것이다.

앞서 청와대는 이날 오전 김여정의 담화 직후 정의용 실장 주재로 화상 NSC 상임위를 열었다. 통상 NSC가 문 대통령의 의중을 벗어나거나 앞서가지 않는 점에 비춰 보면, 이날 입장엔 문 대통령의 분노가 상당 부분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북측은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와 국방부(“실제 행동에 옮겨질 경우 북측은 반드시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에서도 강도 높은 비난이 나왔다.

“멋쟁이 시늉…여우 낯 붉힐 비열” 김여정 스스로 “말폭탄”

중앙일보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발언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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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하지만 이날 외교안보 전문가·원로와의 오찬 간담회에선 “현재 상황이 안타깝다”면서도 “인내하며 북·미와 대화로 난국을 극복해야 한다”는 의지를 밝혔다고 박지원 전 의원이 전했다.

북한은 이날 오전에만 김여정 담화를 비롯해 장금철 통일전선부장 담화,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발표, 조선중앙통신 논평 및 보도 등 다양한 형식의 입장을 다섯 개 쏟아냈다. 김여정은 문 대통령을 저격하고, 장금철은 “남측 당국과는 더는 마주 앉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비난했다.

한국의 합참에 해당하는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는 이날 금강산 관광지구와 개성 공업지구에 군대 재배치, 철수한 비무장지대(DMZ) 경계초소(GP)에 다시 병력 전개, 접경 지역 부근에서 각종 군사훈련 재개를 선언했다. 사실상 9·19 남북 군사합의 파기다.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이날 전방 DMZ 내 일부 북한군 GP 부대 전원이 철갑모(방탄모)를 쓰고 소총에 대검을 장착한 모습이 육군 감시장비에 포착됐다. 북한군 GP 부대는 평소 천으로 만든 전투모를 쓰며 근무에 나설 때만 철갑모를 쓴다.

북한군 전방부대 출신 탈북자는 “총검을 다는 것은 전쟁에 나갈 때만이라고 북한에서 배웠다”고 말했다. 정부 소식통은 “인민군 총참모부가 이날 ‘전반적 전선에서 전선경계근무 급수를 1호 전투근무체계로 격상시킨다’고 밝혔는데, 이와 관련한 조치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조선중앙통신 논평은 “입 건사를 잘못하면 그에 상응해 이제는 삭막하게 잊혀 가던 서울 불바다설이 다시 떠오를 수도 있다”고 위협했고, 조선중앙통신 보도는 “15일 남조선 당국이 특사 파견을 간청하는 서푼짜리 광대극을 연출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앞으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특사로 가장 이른 시일 내에 보내겠다는 걸 거부했다고 밝히면서다.

청와대는 북한이 특사 파견 제안을 일방적으로 공개한 데 대해 강한 불만을 표했다.

윤도한 수석은 “북측은 또한 우리 측이 현 상황 타개를 위해 대북 특사 파견을 비공개로 제의했던 것을 일방적으로 공개했다”며 “이는 전례 없는 비상식적인 행위며 대북 특사 파견 제안의 취지를 의도적으로 왜곡한 처사로서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윤 수석은 또 “최근 북측의 일련의 언행은 북측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사태의 결과는 전적으로 북측이 책임져야 할 것”이라며 “특히 북측은 앞으로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기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이날 “남북관계 악화의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고 했다. 결과적으론 김여정이 담화에서 대북 전단 문제에 대해 “삐라를 방치한 건 남조선 당국의 책임”이라며 “(하지만 문 대통령의 연설은) 책임 회피를 위한 변명으로 일관됐다”고 비판한 직후 김 장관이 물러나는 모양새가 됐다.

정용수·권호·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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