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변핵시설 폐기와 완전한 제재 해제 요구하는 김정은에
트럼프, ‘영변 외에 다른 제안 추가할 수 없겠냐’
김정은 “북한은 안전보장 없다”에 트럼프 “전화해”
트럼프, 김 위원장에 “북한까지 비행기로 데려다주겠다”
트럼프, 하노이 노딜 뒤 ‘내가 너무했나’ 후회
재무부 대북제재 취소명령 트윗 날리고
참모들에 “이건 오직 김정은 향한 메시지”
문 대통령, 하노이 노딜 뒤 트럼프에게
판문점이나 미 해군함 정상회담 제안
지난해 2월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영변 핵시설 폐기 이상의 방안을 요구하면서, 그 대가로 ‘부분적인 제재 완화’는 안 되겠냐고 묻기도 했다고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회고록에서 주장했다.
<한겨레>가 21일(현지시각) 입수한 볼턴 전 보좌관의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 백악관 회고록>을 보면, 김 위원장은 2월28일 메트로폴 호텔에서 열린 회담에서 영변 핵시설을 양보하는 게 얼마나 중대한 것인지, 그게 미국 언론에서 얼마나 집중 조명받을지를 강조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영변 외에 다른 제안을 추가할 수 없겠냐면서, ‘완전한 제재 해제’ 말고 ‘제재를 1% 경감하는 것’을 요구할 수 없을지 물었다. 볼턴 보좌관은 책에서 “이게 그 회담에서 최악의 순간이었다. 만약 김정은이 거기에 ‘예스’를 했다면 두 사람은 미국에 재앙적인 합의를 하는 것이었다”며 “다행히, 김정은은 ‘나는 아무 것도 못 얻는 것’이라며 그걸 물지 않았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계속해서 김 위원장에게 미국을 때릴 수 있는 장거리미사일 제거를 요구하면서, 배석한 볼턴 당시 보좌관에게 “존, 당신 생각은 어때?”라고 물었다. 이에 볼턴 전 보좌관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북한의 핵, 화학, 생물학,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완전한 공개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북-미가 단계적(step by step)으로 가면 완전한 그림에 닿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미국이 원하는 완전한 비핵화의 최종적 그림을 제시하기보다, 북-미가 서로 행동 대 행동으로 단계적으로 이행하자는 의미로 풀이된다.
볼턴은 책에서 “김정은은 북한이 자신의 안전을 지킬 법적 보장이 없다며 불만을 표했고, 트럼프는 북한이 어떤 보장을 원하는지 물었다”고 소개했다. 이에 김 위원장이 북-미 외교 관계가 없고 70년간 적대 관계에 겨우 8개월의 트럼프-김정은 개인적 관계가 있을 뿐이라며 미국 전함이 북한 영해에 들어오면 어떻게 하냐고 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내게 전화하라’고 답했다.
하노이 회담은 공교롭게도 트럼프 대통령의 전 변호사인 마이클 코언에 대한 의회 청문회가 열리는 기간이어서,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전날 밤에도 늦게까지 관련 뉴스를 봤으며, 아침에 예정된 사전 브리핑도 취소했다고 한다. 그는 또 하노이에서 ‘스몰 딜’(작은 합의)를 하는 것과 ‘노 딜’로 그냥 걸어나가는 것 중 어떤 게 더 큰 뉴스가 될지를 참모들에게 묻기도 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책에서 “나는 그냥 걸어나가는 게 훨씬 큰 기삿거리라고 생각했다”고 적었다. 그는 “트럼프는 (하노이 정상회담 전부터) ‘빅 딜’, 스몰 딜’, ‘그냥 걸어 나온다’라는 세가지 가능한 결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 가운데 ‘그냥 걸어 나오는 방안’(노 딜)도 가능하다는 자세였다고 적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북한까지 비행기로 태워다 주겠다는 제안도 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에서 ‘비핵화의 정의’와 ‘북한의 밝은 미래’에 관한 문서 2쪽을 볼턴 전 보좌관에게서 건네 받아 김 위원장에게 주고는, 자신의 저녁 만찬 일정을 취소하면서 김 위원장을 북한까지 비행기로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당시 북한에서 하노이까지 열차로 이동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웃으면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꽤 멋진 그림이 될 거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회담을 ‘노 딜’로 마친 뒤, 한 달도 안 돼 자신이 북한을 너무 강하게 대했던 게 아닌지 후회하기 시작했다고 볼턴 전 보좌관은 적었다. 볼턴 전 보좌관은 책에서 “나는 트럼프가 하노이에서 자신이 너무 터프했다고 걱정하기 시작했다고 느꼈다. 그건 여러 방식으로 드러났다”고 적었다. 예컨대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언급하면서 “우리는 워게임에 10센트도 써선 안 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그해 3월21일 재무부가 발표한 북한 관련 제재를 뒤집을 것도 요청했다. 당시 재무부는 북한의 제재 회피를 도운 혐의로 중국 해운회사 2곳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고, 북한과 불법 환적을 한 의심을 받는 북한 및 제3국 선박 95척에 대해 주의보를 갱신해 발령했다. 이는 당시 미 행정부의 강력한 대북 제재 의지로 해석됐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튿날 트위터에 “이같은 추가적인 제재를 취소할 것을 오늘 명령했다”고 적었다. 트럼프가 이렇게 한 것은 북한을 의식했기 때문이라고 볼턴 전 보좌관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 캐리비안 지역의 지도자들과 만나러 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볼턴 전 보좌관을 불러내 재무부 제재를 취소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볼턴 전 보좌관은 이에 반대했고,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도 전적으로 볼턴 전 보좌관에 동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제재 취소를 명령했다는 자신의 트위트는 “오직 한 사람의 청자(audience)를 위한 것이다. 다른 것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책에 “그(트럼프)는 김정은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던 것”이라고 썼다. 당시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이 ‘대통령이 왜 이런 트위트를 날렸는지에 대해 뭐라고 말해야 하냐’고 묻자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김정은을 좋아하고, 이런 제재는 불필요하다”고 대답했다. 샌더스 대변인은 당시 실제로 기자들에게 그렇게 답변했다.
하노이 노 딜 이후 4월11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이뤄진 한-미 정상회담 얘기도 길게 소개돼 있다. 이 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세기의 정상회담을 위해 타이밍, 장소, 형식에서 극적인 접근을 촉구하면서 판문점이나 미 해군 군함에서 북-미 정상이 만날 것으로 촉구했다고 볼턴 전 보좌관은 적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의 발언을 끊고, 다음번 북-미 정상회담은 실질적인 합의를 도출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책에서 “합의 없이 한 번 만나는 건 문제가 안 되지만, 누구도 두 번을 그냥 걸어나오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적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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