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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존 볼턴 회고록 파장

볼턴 책 보면… 文은 '박치' 트럼프는 '음치' 김정은은 '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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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백악관과 장단 못맞추고 낙관적 전망만

트럼프, 혼자서 소리 높이다 北에 협상 전략 노출

김정은, 협상 상황 파악 못해 플랜B도 없이 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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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판문점에서 만난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북한 김정은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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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23일 출간할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났던 방’을 보면 북핵 협상의 혼란상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준다.

볼턴의 책에 나온 문재인 대통령은 중재자를 자임했지만 미·북 양측 어디도 장단을 못맞추는 ‘박치’의 모습이었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본인의 소리만 높이는 최강 ‘음치’였다. 회고록 속 북한 김정은은 정권의 명운을 건 협상에서 상대의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고, 제대로된 협상 전략도 없는 ‘길치’같은 모습으로 묘사된다.

◇文, 분위기 파악 못하는 ‘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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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통화하는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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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턴 회고록을 보면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으로 일관한다.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을 한달 정도 앞둔 2018년 5월, 북한은 한미 연례 연합공중훈련인 ‘맥스 선더’를 문제삼아 한국을 비난했고, 미국에 대해선 일방적인 핵포기를 강요하면 정상회담을 재고하겠다고 협박한다.

북한의 이 같은 협박에 미국은 이미 회담 취소 가능성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싱가포르에 오기로 했던 북한 선발대가 만남을 약속했던 5월17일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때 협상 취소가 잠정 결정됐고 트럼프 대통령은 트윗으로 이를 공개하기로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이를 올리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5월22일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다. 트럼프는 이 자리에서 “싱가포르 회담이 열릴 확률은 25%”라며 넌지시 취소 가능성을 알렸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낙관적인 전망을 피력하며 “그럴 가능성은 제로(0)”라고 말했다. 백악관 내부의 기류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문 대통령이 한국으로 돌아간 5월24일,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호전적인 발언을 문제삼아 회담 취소를 전격 발표한다. 물론 이후 북한이 회담을 지속하자는 메시지를 보내면서 싱가포르 회담은 결국 열린다.

문 대통령은 또 하노이 미·북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열린 지난해 4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판문점 또는 해군 군함 위에서 3차 미북 정상회담을 적극 주장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의 말을 끊으며 “다음 정상회담에선 실질적인 합의를 이루기를 바란다”고 거부했다.

◇트럼프, 혼자 떠드는 ‘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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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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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스스로를 ‘협상의 달인’이라고 부르지만 황당하게도 싱가포르 정상회담 전 북측에 스스로 자신의 카드를 보여줬다. 2018년 6월1일 북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은 북한 김정은의 친서를 들고 백악관을 찾았다. 당시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도발적 언행을 이유로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취소를 선언했다 번복한 직후였다.

볼턴에 따르면 김영철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 비핵화와 관련 어떤 새로운 것도 말하지 않았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연합훈련을 줄이고 싶고, 이 훈련이 얼마 비싸고 도발적인지’를 말했다. 볼턴은 이를 ‘최악의 상황’이라고 평가하면서, 미국의 최고 사령관이 한반도의 군사 대비태세가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북한에 알려줬다고 했다.

이런 우려는 곧바로 현실이 된다. 북한 김정은은 뒤이어 열린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한미 연합훈련을 줄이기를 원한다고 했고, 트럼프는 즉시 “한미훈련은 돈과 시간낭비다. 불만스럽다”며 한미훈련 취소를 결정했다. 외교·안보 당국자는 갑작스러운 취소 선언에 경악했다. 볼턴은 트럼프 대통령이 “나는 수다쟁이(talker)다”라며 “나는 말하는 걸 좋아한다”고 언급한 것은 거론하며, 트럼프의 혼자 떠드는 ‘수다 본능’이 협상을 망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군사위협도 허풍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8월 북한이 괌 인근에 장거리 미사일 발사해 한반도 위기가 고조됐을 당시 트위터에 ‘장전 완료(locked and loaded)’라고 쓰며 북한에 군사위협을 했다. 그러나 볼턴은 “미국이 새로운 군사적 준비를 하고 있다는 아무런 가시적 증거가 없다”고 했다.

◇김정은, 협상 방향 모르는 ‘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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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에서 계단을 내려오는 북한 김정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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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턴의 책에서 김정은은 1차 정상회담이 열린 싱가포르에서도, 2차 정상회담이 열린 하노이에서도 미국의 협상 전략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미국은 ‘언제든 걸어나갈 수 있다’는 계획을 짜고 하노이 정상회담 전에 회담 결렬시 발표할 문구까지 미리 준비해갔다.

볼턴은 하노이 회담 내내 “영변 외에 추가로 내놓을 것이 없느냐”는 트럼프 대통령과 “영변이 북한에 얼마나 큰 의미인지 아느냐”는 김정은의 문답이 반복됐다고 전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을 제거할 수 있겠느냐고도 제안했다. 그러나 김정은은 “한걸음씩 가면 궁극적으로 전체 그림에 도달할 것”이라고 이를 거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만약 영변을 받고 제재 해제하는 제안을 받아들이면 미국에선 정치적 파장이 엄청날 것”이라며 “내가 대선에 패배할 수도 있다”고 했다. 김정은은 영변 하나만 내놓으면 트럼프가 양보할 것이라고 착각했지만, 트럼프는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볼턴에게 전화를 걸어 “(북한이) 영변 이외에 플랜B(대안)이 없었다는 점에 놀랐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나 안그래도 화가 나 있는 김정은에게 “비행기로 북한까지 바래다 주겠다”는 황당한 제안까지 한다. 김정은이 “그럴 수 없다”고 하자, 트럼프는 “상당한 ‘그림’이 될 것”이라고 행복하게 말했다고 볼턴은 전했다. 김정은은 하노이에서 4500㎞를 3박4일간 기차로 달려 북한으로 돌아갔다. 김정은으로선 모욕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워싱턴=조의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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