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원칙 위반, 신의 훼손”…정의용, 이례적 강경 입장문
미에 법적 대응 요청…한반도 정세 악화에 서둘러 ‘선긋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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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에 대해 “사실을 크게 왜곡했다”며 ‘적절한 조치’를 취해달라는 입장을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전달했다. 청와대가 다른 나라 전직 고위 관료의 회고록에 정면 대응하며 ‘적절한 조치’까지 요구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북·미 비핵화 협상 교착과 남북 긴장 고조로 한반도 정세가 불안정한 마당에 볼턴 회고록 내용이 상황을 더욱 꼬이게 할 수 있다고 우려해 청와대가 서둘러 선긋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은 22일 춘추관 브리핑에서 볼턴의 회고록 <그것이 일어났던 방>에 대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입장을 전했다. 정 실장은 볼턴 전 보좌관의 카운터파트였다.
정 실장은 “볼턴 전 보좌관은 그의 회고록에서 한국과 미국, 북한 정상들 간의 협의 내용과 관련한 상황을 자신의 관점에서 본 것을 밝힌 것”이라며 “정확한 사실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 또 상당 부분 사실을 크게 왜곡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주관적 해석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어 “정부 간 상호 신뢰에 기초해 협의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외교의 기본 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향후 협상의 신의를 매우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면서 “미국 정부가 이러한 위험한 사례를 방지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 실장은 또 “이러한 부적절한 행위는 앞으로 한·미동맹 관계에서 공동의 전략을 유지·발전시키고 양국의 안보 이익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심각하게 저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윤 수석은 “정 실장의 이 같은 입장을 어제 미 NSC에 전달했다”고 소개했다.
윤 수석은 청와대 공식 입장도 밝혔다. 그는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한·미 정상 간의 진솔하고 건설적인 협의 내용을 자신의 편견과 선입견을 바탕으로 왜곡한 것은 기본을 갖추지 못한 부적절한 행태”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미국에 요구한 ‘적절한 조치’는 법적 조치를 포함하는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의 참모들은 비밀준수 의무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런 것을 포함해서 허위사실에 대해 미국이 판단해서 할 일”이라고 했다.
청와대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왜곡됐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팩트체크’ 자체가 민감한 정보 유출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볼턴 전 보좌관이 회고록에서 ‘지난해 남·북·미 정상의 6·30 판문점 회동 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이 동행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주장한 데 대해 “당시 볼턴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당시 볼턴 보좌관은 판문점 회동에는 빠지고, 대신 몽골 울란바토르 일정에 참석했다.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강경파’인 볼턴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는 관측이 나왔다.
이 관계자는 볼턴 전 보좌관이 문재인 대통령을 ‘조현병 환자’에 빗댄 데 대해선 “그(볼턴) 자신이 판단해봐야 할 문제”라며 “본인이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싶다”고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으로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 회동 등의 실무에 관여한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실무 책임자로서 팩트에 근거해서 말한다”며 “볼턴 전 보좌관의 주장은 사실관계에 부합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청와대의 이례적 강경 대응이 한·미 행정부 간 마찰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정반대다. 백악관의 ‘볼턴 깎아내리기’에 청와대가 합세한 모양새다.
정제혁 기자 jhj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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