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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누스바움이 말하는 ‘세계시민주의’의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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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계시민주의 전통: 고결하지만 결함 있는 이상

마사 누스바움 지음, 강동혁 옮김/뿌리와이파리·1만8000원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심해지고 아시아계 혐오 현상도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피부색과 언어의 차이를 넘어 인류는 하나라는 ‘세계시민주의’의 이상이 위협받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이 쓴 <세계시민주의 전통>은 세계시민주의가 탄생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 ‘고결한 이상’의 전통을 고찰하고 여기에 내장된 결함을 고찰하는 책이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 견유학파의 대표자인 ‘거리의 철학자’ 디오게네스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디오게네스는 출신지가 어디냐는 질문을 받고 ‘코스모폴리테스’ 곧 세계시민이라고 한마디로 답했다. 누스바움은 바로 여기서 세계시민주의의 서막이 열렸다고 말한다. 디오게네스는 그리스 남성이면서도 자신의 혈통이나 유래를 밝히지 않았다. 그러면서 “자신을 세계의 시민이라고 지칭함으로써 사람들을 서로 구분하는 출신지, 지위, 계급, 성별 같은 특징보다는 공통된 인간성에 초점을 맞추는 정치 혹은 그런 정치에 대한 도덕적 접근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 책은 이렇게 디오게네스에서 시작해 로마 공화정 말기의 정치가·철학자 키케로의 <의무론>을 논의의 토대로 삼아 세계시민주의의 이념적 초석을 살핀다. 이어 스토아학파가 주창한 세계시민주의의 명과 암을 대조한 뒤, 근대 초기의 국제법 학자 후고 그로티우스의 생각을 검토한다. 그로티우스는 국가 간에는 어떤 도덕적 관계도 없다는 홉스의 주장에 반대하고, “국제관계가 인간성 존중이라는 도덕적 규범에 토대를 두고 있어야 한다는 키케로-스토아학파의 이념”을 지지했다. 마지막으로 누스바움은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의 사상을 살핀다. 스미스는 ‘제약 없는 자유로운 시장의 옹호자’로 오해돼 왔지만, “물질적 재분배에 대한 국가적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가장 쓸모 있는 기여를 한 사람”이었다.

이 책은 이런 학자와 학파를 거쳐 세계시민주의가 보편적 이상으로 발전했지만, 그 이상에는 결함도 있음을 강조한다. 세계시민주의는 인류의 물질적 불평등 문제에 충분한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또 이민이나 시민권의 조건에 대해서도 깊이 이야기하지 않으며 종교적 다원주의를 충분히 존중하지도 않는다. 나아가 누스바움은 세계시민주의가 ‘이성적 인간’만을 일차적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생태 위기에 봉착한 자연 동물이나 인지장애가 있는 인간들을 배려하지 않는다는 점이야말로 특히 주목해야 할 결함이라고 지적한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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