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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경주시청 감독·선배의 절대군림…‘팀닥터’ 월급까지 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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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창단부터 10년 넘게 독식

입단 결정권 등 쥐고 선수들 위협

메달리스트 고참도 ‘실세’로 지목

“가장 많은 폭행 주도…정말 악질”

숙소 소유권…팀 운영 개입 정황도


한겨레

2일 오후 경북 경주시 경주시체육회 사무실에 나타난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감독의 모습. 경주/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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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전·현직 선수들은 팀 내 폭행을 주도한 건 감독과 ‘고참 선수’ ㄱ이라고 입을 모았다. 팀을 창단하고 이끌어온 이들이기에, 절대적인 존재였다는 것이다.

5일 경주시청팀 전·현직 선수들의 말을 종합하면, 김아무개 감독은 2009년 창단 때부터 팀을 맡아, 10년 이상 감독직을 독식했다. 입단 여부 결정권을 쥐고 선수 생명을 좌지우지했다. 특히 창단 초기에는 경주시청팀이 사실상 국내 유일 트라이애슬론팀이었기 때문에 권력이 더욱 막강했다. 그는 이런 권력을 바탕으로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선수들을 폭행했다고 선수들은 입을 모았다. 경북 트라이애슬론계에선 ‘경주시청팀은 원래 폭력적인 팀’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었다.

■가장 두려운 존재는 ‘메달리스트’ 선배

<한겨레>가 취재한 경주시청 전·현직 선수들이 입을 모아 지목한 또 한 명의 실세는 고참 선수 ㄱ씨다. 이들은 ‘가장 폭력을 많이 행사한 것 역시 이 고참 선수’라고 했다. 꼭 처벌받아야 할 사람으로도 주저 없이 해당 선수를 지목했다. 그만큼 선수들에게 직접적인 폭력을 많이 가했던 것으로 보인다.

ㄱ선수는 국내 트라이애슬론계에서 독보적인 성적을 내는 선수로, 감독조차 그의 눈치를 봤다고 한다. ㄹ씨는 “쉽게 말하면 돈줄이다. 돈줄을 어떻게 건드릴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ㄹ씨는 ㄱ선수에 대해 “학창시절에도 선수를 때리고 이간질하는 일이 심했다. 피해자가 한두명이 아니다. ㄱ이 빠지면, 이 사건의 퍼즐이 맞춰지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숙현 선수와 함께 훈련했던 ㅁ씨는 ㄱ선수에 대해 “정말 악질이다. 후배들 괴롭히고, ‘빠따’라고 하죠. 엄청나게 때린다. 정말 심하다. 제가 듣기론 숙현이도 그렇게 맞았다고 했다. 꼭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ㄱ선수가 팀 운영에 깊숙이 관여한 정황도 있다. 현재 경주시청팀이 사용하고 있는 경북 경산의 빌라가 ㄱ선수 소유라는 것이다. 언론 보도를 보면, 남녀 선수들이 3층과 4층, 2개 호실을 사용하는데, 경주시체육회가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65만원씩을 내고 있다고 한다.

ㄱ선수는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따며 한국 트라이애슬론에 첫 메달을 안겼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트라이애슬론 혼성릴레이 은메달을 차지하기도 했다. 현재 그는 폭행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폭력적인 팀 분위기에 트레이너도 변해”

경주시청 전·현직 선수들은 ‘트레이너가 실세’라는 주장을 반박했다. 오히려 폭력적인 팀 분위기 속에서, 트레이너도 변해갔다는 설명이다.

트레이너는 김 감독의 고향 선배로, 팀에 들어오기 전에 경산에 있는 한 내과의원 물리치료실에서 일했다. 그는 어떤 자격증도 없는 ‘사이비 의료인’이었다. 다만 그의 마사지는 경북 지역 운동선수들 사이에서 ‘효과가 좋다’는 입소문을 탔다. 특히 트라이애슬론팀은 숙소가 병원 근처에 있어 이곳을 더욱 자주 찾았다고 한다.

트레이너는 2013년 ‘팀 닥터’라는 직함을 달고 팀에 합류했다. 정식 고용이 아닌 프리랜서 형태였다. 월급을 준 건 다름 아닌 선수들. 트레이너는 이들에게서 1인당 많게는 매달 100만원 안팎의 현금을 받아갔다.

다만 그가 처음부터 선수들을 폭행한 건 아니다. ㄷ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트레이너가 처음 왔을 땐, 폭력은 물론 선수단 운영에도 일체 관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감독과 고참 선수의 폭력을 보면서, 트레이너도 분위기에 물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선수들이 트레이너에게 돈을 낸 것도 감독과 고참 선수가 무서웠기 때문이다. 이들은 마사지를 받지 않는 선수를 “몸 관리를 하지 않는다”며 압박했다. 선수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트레이너에게 돈을 내야 했다고 한다.

선수들은 폭력 행사의 주범이 트레이너인 것처럼 여겨지는 상황을 ‘꼬리 자르기’며 우려하고 있다. 현재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 중 혐의를 인정한 건 트레이너뿐이다. 경주시체육회는 “감독과 선수들의 폭행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트레이너는 현재 지병인 암이 재발해 치료를 받고 있다고 알려졌다. 그는 이를 이유로 경주시체육회 조사에 응하지 않고 있다.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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