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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6 (목)

‘차별금지법’ 향한 일각의 우려 [정지혜의 빨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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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약⑨

세계일보

정의당 심상정 대표 등이 지난 29일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차별금지법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과 장애, 나이, 언어, 성별 정체성 등에 따른 모든 형태의 차별을 금지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지난달 29일 발의됐다. 다음날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 입법을 권고했다. 차별금지법은 2007년부터 7차례나 입법이 시도됐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21대 국회에서의 8번째 발의는 입법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지난달 23일 국가인권위원회가 공개한 국민인식조사(전국 성인 1000명 대상)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88.5%가 한국 사회 차별에 대응하기 위해 차별 금지를 법률로 제정하는 방안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정의당의 법안 발의 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차별할 수 있는 자유란 없다”, “차별과 폭력으로 혐오하고 배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다” 등의 지지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하지만 동시에 ‘#차별금지법-반대한다’는 해시태그 운동도 활발했다. 관련 뉴스 댓글에도 부작용을 우려하는 의견이 줄을 이었다. 그동안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주축은중 성 소수자에 반대하는 보수적인 기독교 진영으로 알려져 왔지만, 다른 이유로도 입법에 대한 염려는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이들을 ‘차별주의자’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진 법이라도 독소조항이나 보완의 여지는 있으며, 차별금지법처럼 필연적으로 자유를 제한하게 되는 경우는 법제화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

◆모호한 법안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해결책 원해

먼저 차별금지법의 성격이 추상적이고 모호하다는 의견이 있다.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란 개념이 명쾌하지 않기 때문이다. 간접 차별, 심리적 고통을 주는 행위 등도 처벌 기준에 포함했는데, 기분이나 감정이라는 주관적 영역에 좌우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로 인해 정당한 비판조차 위법으로 틀어막힐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차별 판단의 기준이 모호한 상황에서 차별 행위자에 대해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도록 한 것도 논란이 되는 부분이다.

미국의 경우 민권법을 통해 인종, 성별로 인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지만 어떤 발언이든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며, 이를 국가가 나서서 법으로 처벌하지는 않는다. 사회 문화적으로 혐오 발언이 용인되지 않는 분위기를 형성하고 스스로 책임지게끔 한다. 다른 사회 구성원에게 피해를 주었다면 민사 소송을 통해 정신적 피해 보상과 모욕에 대한 합의 등을 진행하는 식이다.

차별금지법이 ‘과잉 입법’이란 지적과도 연결된다. 모든 국민에게는 헌법에 근거해 ‘평등권’이 보장된다. 개별적 차별금지법도 양성평등기본법, 남녀고용평등법, 장애인차별금지법, 연령차별금지법, 난민법, 기간제법 등 20개 내외가 있다. 사법 체계 안에서 이것이 언제나 정당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형사, 민사 처벌 과정을 다듬는 것이 관건이지 차별금지법을 더하는 것이 해결책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미 있는 법부터 차별 없이 시행하라”고 이들은 요구한다. OECD 국가 중 한국의 대국민 사법 신뢰도는 수년째 최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이다. 차별 여부를 결정하는 주체를 믿지 못하겠는데 새로운 법이 생긴들 얼마나 신뢰할 수 있겠느냐는 호소다.

‘모든 차별을 금지한다’는 두루뭉술하고 포괄적인 법안보다 각 소수자의 현실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보다 구체적인 법안 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원칙의 제도화, 비정규직 문제, 양성평등채용제 확산, 스토킹 처벌법 등 오랫동안 사장돼 왔거나 고질적인 솜방망이 처벌 논란을 불렀던 의제를 각각 진척시키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존재에 대한 포용 강요한다는 반감도

이번에 발의된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또 다른 논쟁은 성별 정체성,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자까지 대상에 포함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것이다. 이 법안이 초래할 사회적 혼란에 대한 우려다.

일례로 현재 우리나라는 성 전환 수술을 하지 않고도 법적으로 성별을 변경하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적법성 논란이 제기돼 왔다. 아직 사회적으로 충분히 논의되지 않은 주제를 법안에 포함시키는 것이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과자를 차별금지법에 포함한 것 역시 논쟁의 소지가 있다. 차별금지법 통과 후에도 성범죄자 취업 제한, 시설 이용 금지 조치 등은 기존대로 유지된다고 하지만 적지 않은 이들이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심리적 장벽이 있다”고 호소한다. 차별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가는 방식이 아니라 ‘법’으로 강제해 모든 존재를 포용하라는 것은 강압적인 느낌이 들어 불편하다는 지적이다.

이것은 전과자의 차별받지 않을 권리 만큼 일반 시민의 안전 보장에 대한 요구도 중요하다는 목소리이기도 하다. 특히 가해자 재범방지 방안 및 처벌 강화에 대한 요구가 거세진 최근의 사회 분위기와도 결이 맞지 않아 여론의 반감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한 언론사가 국회의원 300명에게 차별금지법 제정 관련 입장을 익명으로 물었는데 206명이 입장 표명을 꺼렸다는 보도가 있었다. 찬반 의견을 밝힌 인원보다 더 많은 110여명이 ‘생각이 정립되지 않았다’, ‘잘 모르겠다’, ‘심도 있게 검토하고 의견을 표명해야 한다’, ‘성 소수자 문제에 대한 반발 등을 생각하면 판단이 서지 않는다’ 등의 이유로 무응답 처리를 했다고 한다.

민심에 민감한 국회의원들이 선뜻 입장 표명을 하지 못하고 조심스러워하는 것은 차별금지법을 향한 사회의 팽팽한 찬반 대립 상황을 반영한다. 여당인 민주당도 아직 입장을 밝히지 않는 등 차별금지법에 미온적이라는 평가다.

‘세상의 모든 차별을 금지한다’는 명분은 이견의 여지 없이 좋지만, 도덕과 달리 법을 만든다는 관점에서는 세부적으로 따져볼 것이 많다는 의미가 아닐까. 차별금지법에 대한 모든 의견에도 차별 없이 귀를 기울일 때다.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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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혜의 빨간약’은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이 그랬듯 빨간약을 먹고 나면 보이는 세상의 ‘불편한 진실’을 예민하게 분석해보는 코너입니다. 다루었으면 하는 주제가 있다면 제보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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