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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박원순 서울시장 사망

국내 첫 성희롱 소송 변호인, 그가 박원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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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첫 성희롱 소송 승소 이끌어

"나는 페미니스트"외치던 그가 성추행 고소당해

9일 실종 신고가 접수된 박원순 서울시장은 전날(8일) 전직 비서를 성추행했다는 이른바 '미투 의혹'으로 전날 형사 고소됐다. 그러나 박 시장은 그동안 “페미니스트(여성 인권 주의자)”를 자처했고 주변으로부터 '여성·인권 변호사'로 불려왔다.

박 시장이 여성 인권 변호사로 이름을 알리게 된 건 1993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제기된 성희롱 법률 소송인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 사건 변호를 맡은 것이 결정적 계기다.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 사건은 서울대 우모 조교가 A 교수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고 고발한 사건이다. 피해자를 대리했던 박 시장은 6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A 교수가 우 조교에게 500만원을 지급하라는 최종 판결을 이끌어냈다.

이 판결을 계기로 성추행, 성폭행뿐 아니라 성희롱도 명백한 불법 행위라는 사회적 인식이 생겼고, 성희롱의 개념이 실정법에 도입되는 계기가 됐다. 박 시장은 이 사건의 변호인 자격으로 한국여성단체연합회(여연)가 주관하는 제10회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받았고, 이 상금을 여연에 기부했다. 박 시장이 서울시 홈페이지에 직접 쓴 소개란에도 "조작된 공안사건의 피해자, 대학의 성폭력 피해자, 노동운동을 하다 기소된 인권 변호사 등을 변호했다"고 쓰여 있다.

박 시장은 재수 끝에 서울대 사회계열에 입학했다가 1975년 5월 학내시위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서울대에서 제적됐다. 이후 그는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한 뒤 1980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여성·인권 변호사'로 불리며 2011년, 2014년, 2018년 연속 3번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박 시장은 작년 11월 서울 국제돌봄엑스포에 참석해 "저는 페미니스트"라며 "3년 전 '82년생 김지영' 책을 보고 눈물을 흘렸고 절망감이 들었다"고 했다. 이어 "현재 대한민국에서 육아와 돌봄은 오로지 개인과 가족, 특히 여성의 부담. 공공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줄곧 여성을 응원했다. 2011년 서울시장 첫 당선 이후 여성 친화적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왔다. 2017년 1월 '서울시 여성리더와 함께 하는 신년회'에선 박 시장은 "여성다움이 '원순다움'"이라며 "여성 중심, 노동 중심의 세상을 만들겠다. 좋은 세상은 가장 고통 받는 사람들이 중심이 된 세상"이라고 밝혔다. 여성 친화형 리더가 되겠다고 말하는 자리였다.

또 박 시장은 지난 2018년 5월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예비후보로 등록한 뒤 “(성폭력은) 예방하는 게 중요하다”며 “사후에는 회복할 수 없는 피해가 생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성희롱이냐, 아니냐를 판단할 때는 피해자의 관점에서 봐야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성희롱, 성폭력 교육을 받는 게 중요하다”라고 했다.

박 시장은 2000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여성 국제전범 법정'에서 남북공동검사단 남측 대표 검사로 참여해 "한반도는 10만명 이상이 군대 위안부로 동원된 최대 피해국"이라며 일본 정부를 기소했다. 여성 국제전범 법정은 일본군의 위안부 동원 만행을 알리고 일본 정부에 책임을 묻기 위해 국내·외 시민단체가 조직했다.

박 시장은 지난해 6월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서울지회 창립 20주년 기념식에선 "이제 우리 사회가 우먼 파워, 소프트 파워의 주인공인 여성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특히 서울시는 여성들이 마음놓고 일하도록 하기 위해 보육과 돌봄으로부터 해방해야 한다는 본질적인 문제를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 여성의 날 등 여성 관련 이슈가 나올 때마다 여성 대상 범죄를 규탄했다.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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