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30일까지 예정됐던 임기를 채웠다면 11년 8개월여간, 일수로는 자그만히 3900일간 재직한 ‘가장 오래 재임한 서울시장’으로 이름을 남길 수 있었다. 그러나 2020년 7월 9일 실종 신고가 된 그는 결국 10일 유명을 달리한 채 발견됐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무상급식에 반대하며 시장직을 걸고 주민투표를 벌였다가 물러난 뒤 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박 시장은 나경원 당시 한나라당 후보를 제치고 당선됐다.
공직선거에 처음 도전한 정치 초년생이었지만, 그는 정계 입문 전부터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실제 그는 1994년 참여연대 설립을 주도했으며 1995년부터 2002년까지 이 단체에서 사무처장으로 일하면서 한국 시민운동을 진화시켰다. 1995년 사법개혁운동, 1998년 소액주주운동, 2000년 낙천·낙선운동 등 굵직한 시민운동마다 그의 이름이 남아 있다.
그 전에는 이름날리는 인권변호사로도 활동했다. 학생운동으로 구속돼 서울대에서 제명된 뒤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그는 1982년 사법연수원 12기 수료와 함께 검사로 임용됐다가 1년만에 박차고 나와 ‘인권변호사의 전설’로 불리는 고 조영래(1947∼1990) 변호사와 함께 일했다. 부천서 성고문 사건, 미국 문화원 사건, 말지(誌) 보도지침 사건 등의 굵직한 사건의 변론을 담당했으며, 1990년대 중반에는 ‘서울대 성희롱 사건’의 변호인 중 한 명이었다.
서울시장 취임 후에는 서울시정의 틀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 전 시장의 남은 임기 2년 8개월을 넘겨받은 박 시장은 “디테일에 능하다”는 평가처럼 세세한 부분까지 사안을 꼼꼼하게 챙겼고, 시민사회단체 출신 인물들을 대거 서울시로 데려와 시정 곳곳에 배치했다.
정몽준 당시 새누리당 후보의 도전을 받은 2014년 6월 4일 지방선거에서는 수성에 성공하며 서울시장 자리를 지켰다.
2018년 6월 14일에는 자유한국당 김문수 후보와 바른미래당 안철수 후보를 제치고 3선에 성공하기도 했다.
“지지율에 개의치 않는다”고 말하던 박 시장은 청년·복지·환경에 꾸준히 관심을 쏟았고, 취약계층 보호에도 집중했다.
2011년 10월 26일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 야권 단일후보가 서울 종로구 안국동 선거 캠프에서 서울시장 당선이 확정되자 환하게 웃는 모습. [사진 매경DB] |
박 시장이 마지막으로 직접 발표한 정책은 지난 8일 ‘서울판 그린뉴딜’이었다. 8일 저녁에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긴급회동으로 그린벨트 해제 관련 논의를 해 평소처럼 ‘일벌레’다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다음날인 9일 오전 박 시장은 이미 공지했던 일정까지 모두 취소하고 잠적했다. 이날 오후에 딸의 실종 신고를 받고 북악산 일대 수색에 나선 경찰에 의해 10일 0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숨진 채 발견됐다. 박 시장은 최근 전직 비서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추행 혐의 고소 건은 박 서울시장이 10일 숨진 채로 발견됨에 따라 ‘공소권 없음’으로 관련 경찰 수사도 종결된다.
[이미연 기자 enero20@mkinter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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