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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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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최초 K팝 걸그룹…영국판 블랙핑크 ‘KAACHI’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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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ACHI(가치)’가 떴다. 유럽 최초의 케이팝 걸그룹이다. 데뷔 곡 뮤직비디오가 유튜브에서 단 60일 만에 조회수 1000만을 돌파했다. 이만하면 웬만한 한국 아이돌 이상의 돌풍. 멤버 구성은 세 명의 영국인과 한 명의 한국인. ‘영국의 블랙핑크’로도 불리는 이들의 비상이 심상치 않다.

15일 런던에 있는 가치의 네 멤버, 준서(20) 다니(21) 니콜(21) 코코(26)와 실시간 화상 통화로 인터뷰했다. 멤버들은 “오랫동안 케이팝을 동경하기만 했는데 직접 케이팝 그룹 멤버로 데뷔하고 팬들의 관심까지 받게 되니 믿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영국의 케이팝 그룹이라니…. ‘가치’는 그 태생부터가 ‘한국의 브릿팝(british pop) 그룹’이라는 말보다도 낯설다. 가치의 기획·제작자는 한국인 이혜림(모니카 리) 프런트로(Frontrow) 레코드 대표. 외국계 회사 직원, 아리랑TV PD로 활동하던 이 씨는 글로벌 창업 설명회에 갔다가 영국의 기업 환경에 대해 듣고 타고난 모험심을 발휘, 2016년 런던에서 스타트업을 차렸다. 처음에는 음악 유통과 퍼블리싱을 하며 유럽과 한국의 작곡가를 연결하는 일에 몰두했다. 마침 케이팝의 인기가 급등하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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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를 찾은 이혜림 프런트로 레코드 대표(가운데)와 영국 런던에서 실시간으로 화상 연결한 스크린 속 ‘가치’ 멤버들 왼쪽부터 다니, 준서, 니콜, 코코.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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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기업 인프라가 좋은 런던을 허브로 유러피언 케이팝 그룹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했지만 아무도 투자하려 들지 않았어요. 직원이 네 명뿐인 회사이지만 직접 해보기로 했죠. 인디 밴드처럼요.”(이혜림 대표)

이 대표의 뇌는 지난해 10월, 운명적으로 ‘손발’을 찾아냈다. 댄스 경연대회에 갔다가 준서와 니콜의 춤과 에너지에 반해버린 것. 알고 보니 둘은 6년간 케이팝 커버댄스 팀 ‘UJIN(유진)’으로 활약하며 런던의 톱클래스 춤꾼으로 유명했던 터다. 둘의 친구인 다니를 들인 뒤 11월부터 트레이닝 과정에 들어갔다. 이화여대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하고 런던에서 현대무용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한 코코(본명 도연수)는 프런트로의 직원 겸 안무가로 들어왔다가 마지막 순간에 가치의 멤버로 합류했다. 라인업 완성.

“원래 가수가 되겠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지만 댄스팀 활동을 하며 퍼포먼서로서 다음 단계에 대해 고민하던 차였어요. 그때 ‘가치’를 만났죠.”(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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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명은 ‘같이(together)’와 ‘가치(value)’를 함께 뜻한다. 이 팀은 여러모로 선입견 깨기를 즐긴다. 이름만 보면 한국 멤버일 것 같은 준서의 본명은 루스 고메스. 스페인계다. 댄서로서 ‘천사’란 한국어 예명으로 활동하다 가치에 들어오며 준서로 변형했다. 데뷔곡 ‘Your Turn’에서 한국어 가창을 맡은 것도 코코가 아닌 준서.

멤버들은 제각각 어린 시절 우연히 소녀시대, 빅뱅, 샤이니 등을 보고 케이팝에 빠졌다. 특히나 춤이 좋았다.

“케이팝 춤에는 모든 스타일과 장르가 혼재해요. 상업 무용과 순수 무용, 힙합과 현대예술이 구분 없이 섞이는 게 매력이죠.”(니콜)

가치는 서구 팝과 케이팝의 황금비율을 실험하고 있다. 케이팝의 미학을 추구하되 생활면에서는 런더너(Londoner)의 특성을 유지하려 한다.

“런던에서 지내며 개성을 존중하는 사회적 환경에서 큰 감명을 받았어요. 두 문화의 장점을 합쳐 더 나은 모델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개개인의 삶을 존중하면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갈 거예요.”(코코)

헤어와 분장 등 시각적 측면에서는 ‘현지 조달’이 어렵지만 최대한 케이팝 스탠더드에 맞추려 노력하고 있다. 합숙하지 않고 각자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하지만 일주일에 하루는 런던 오벌 지역의 댄스 스튜디오에 모여 춤, 노래, 랩을 연습하고 온라인 한국어 강의를 함께 듣는다. 아직은 “떡볶이!”(니콜) “같이!”(준서) “합시다, 러브!(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대사)”(다니) 정도를 좋아하는 한국말로 꼽지만 다음 곡에서는 멤버들이 직접 한국어 작사에 참여하는 게 목표다.

가치는 10월쯤 발표할 두 번째 곡 준비에 한창이다. 멤버들에게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언젠가 만약에 큰 성공을 거둔다면 어디서 공연을 하고 싶으냐고.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과 서울 잠실주경기장 중에 딱 한 무대만 골라야 한다면.

“음…. 잠실에서 공연을 하고…” “전 세계에 생중계한다면…” “최고겠죠!” “그보다 먼저 한국 TV 가요프로그램에 딱 한 번만 출연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아요.”

약속한 듯 이렇게 답한 뒤 멤버들이 서로의 웃는 얼굴을 바라봤다. 하이파이브를 하는 네 멤버의 밝은 에너지에서 케이팝적 반짝임이 스쳐갔다. 짧지만 분명하게.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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