뤼터 네덜란드 총리 주도로 공짜 지원금 줄이고, 대출금 늘려…
마르크 뤼터(53) 네덜란드 총리가 17일부터 닷새 동안 열린 EU(유럽연합) 정상회의에서 새로 얻은 별명이다. 회의 내내 뤼터는 "안 된다" "양보 못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재정이 부실한 이탈리아·스페인 등에 거액의 코로나 경제회복기금을 지원하려는 EU 계획에 반대 입장을 일관되게 표시했다. 뤼터는 '재정 모범 4국(Frugal Four)'으로 불린 네덜란드·스웨덴·오스트리아·덴마크를 대표하는 좌장으로 활동했다. 평소 온화한 이미지의 그가 '돈 퍼주기'를 자제하자는 결기를 보여주자 로이터통신은 그를 'EU의 부기맨(아이들을 겁주는 귀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는 왜 강경한 태도를 취한 걸까.
21일(현지 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에서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가 웃고 있다. 그는 닷새동안 이어진 정상회의에서 거액의 코로나 경제회복 기금을 각국에 공짜로 지원하려는 EU의 계획에 반대 입장을 일관되게 표시해 ‘미스터 노 노 노’라는 별명을 얻었다. /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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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인은 오래전부터 근검절약을 강조하는 칼뱅주의가 몸에 배어 있다. 뤼터는 그중에서도 나랏돈 씀씀이를 최소화하는 긴축 정책을 지향하는 우파 정당인 자유민주국민당을 이끌고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남유럽 '베짱이 국가'들을 위해 네덜란드인이 낸 세금을 쓰고 있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이런 여론이 점점 힘을 얻으면서 내년 3월 총선을 앞두고 넥시트(Nexit·네덜란드의 EU 탈퇴)를 주장하는 네덜란드인도 늘어나고 있는데, 이를 의식해 뤼터가 전례 없이 단호한 태도로 나왔다고 AFP통신은 보도했다.
자유무역으로 번성한 네덜란드는 그간 EU에서 영국과 더불어 영미식 자유주의를 강조해왔다. 사회주의 전통이 있는 독일·프랑스가 환경보호 등의 이유를 들어 규제 강화를 추구하면 영국과 네덜란드가 함께 반기를 들어 규제 수위를 낮추는 식이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네덜란드의 '단짝'인 영국이 브렉시트로 EU 무대에서 사라졌다. 기업 자유를 중시하고 긴축을 강조하는 네덜란드가 이 때문에 자기 색깔을 더 분명하게 표현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뤼터의 전방위적인 압박은 효과가 있었다. EU 정상회의는 애초 코로나 경제회복기금으로 7500억유로(약 1030조원)를 조성하면서 각 회원국에 5000억유로는 갚지 않아도 되는 보조금으로 주고, 2500억유로만 갚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뤼터가 "보조금을 줄여야 한다"고 끝까지 물러서지 않으면서 회의는 닷새 동안 이어졌고, 정상들은 21일에야 합의안을 만들었다. 최근 20년 사이 최장 시간 회의였다. 합의안엔 뤼터의 입장이 상당 부분 반영됐다. 보조금은 3900억유로로 줄이고 대출금을 3600억유로로 늘렸다.
뤼터는 30대에 글로벌 생활용품 회사인 유니레버에서 근무했다. 2010년 43세에 총리에 올라 10년째 재임 중이다. 15년째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다음으로 유럽에서 둘째 장수 총리다. 미혼인 그는 대학 졸업 직후 구입한 아파트에 아직도 살고 있고, 중고 승용차를 몰고 있다. 지난 5월 요양원에 살던 어머니가 숨졌을 때 뤼터는 자신이 내린 봉쇄령으로 해당 요양원 접근이 어렵게 되자 임종을 포기하기도 했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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